박동훈 부장(이선균 분)은 건물 설계 및 진단 전문회사인 삼안E&C 안전진단 팀의 부장이며 건축구조기술사이다. 아내는 변호사고, 아이는 영국 유학 중이며, 부드러운 성격으로 후배들에게 신망이 두텁다. 사업하다 망해서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 살고 있는 형, 마흔이 넘어서까지 영화판을 전전하다 제대로 자리를 못 잡은 동생 때문에 골치가 아프지만 그럭저럭 욕심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복잡한 상황이 벌어진다. 회사에서는 사장과 전무 간의 정치 싸움 속에서 생겨난 뇌물 폭로 사건에 얽히고, 가정에는 아내가 자신의 회사 사장과 불륜을 하고 있다. 설상가상 파견 계약직 소녀 이지안(이지은 분)은 사장 쪽의 사주를 받고 그를 도청하면서 여러 공작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 복잡한 배경 속에서 삶이 너무 힘든 스물한 살의 소녀와 인간에 지친 마흔다섯 살 중년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서로를 성장시킨다는 게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줄거리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자신을 도청하고 상품권도 빼돌려 위험에 빠뜨리게 한 존재인 이지은을 채용한 것은 아이러니하게 이선균 자신이다. 안전진단팀 경영 지원을 도울 인력이 필요했고, 파견 회사의 간부는 이력서 뭉치를 이선균에게 내밀었다. 경력과 학력, 자격증으로 꽉꽉 채워진 이력서 속에서 이선균은 무심코 이지은의 이력서를 고른다. 잘하는 게 ‘달리기’ 딱 하나 써 있는 그 이력서를.
얘로 하죠.”
어? 얘요? 다른 괜찮은 애들도 많은데 왜요?”
그냥… 달리기가 빠르다네요.”
부장님,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깁니다.”
이선균이 아이유를 뽑은 것은 적절한 채용이었을까? 조직심리학자 헌터는 채용 평가 도구의 타당도에 관한 연구에서, 채용 평가 방법에 따라 채용된 사람의 이후 업무 성과가 다르다는 이론을 말하면서, 그 타당도를 제시한다.
가장 예측 타당도가 높닸던 것은 평가센터였다. 평가를 위해 전문적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검증한 방식으로 채용했을 때 그 타당도는 64%가 되었다. 뒤이어 인지능력 검사가 25%, 행동 면접이 10%, 신체검사 자료는 9%, 경력조회는 6% 정도의 타당도를 보여주었다.
반면 이선균이 이지은을 뽑을 때 사용한 방식은 단순 경력조회로, 그 타당성은 6%에 불과한 정도이다. 그조차도 이력서를 통한 경력 체크를 했을 뿐이고, 이후 최소한의 절차로서 면접이나 인지능력 검사 등은 시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타당도가 매우 떨어지는 채용 방식을 쓰면서, 그마저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엉뚱한 기준으로 뽑은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훗날 이선균은 상무가 되기 위한 압박 면접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상대측으로부터 ‘스펙이 최악’인 아이유를 뽑은 것에 대한 질타를 받는다.
이력서가 깨끗해, 여기 보여요? 달리기, 나는 달리기 쓰는 애 처음 봐. 아무것도 없는 애를 왜 뽑았습니까? 스펙 좋은 애 다 제쳐두고.
파견직들을 보면 스펙 좋은 친구들은 이직률이 높아서 경영지원에 필요한 정도의 업무능력을 가진 사람이 오랫동안 일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뽑았고, 그 친구는 영민하고, 생색내지 않고 좋은 사람입니다.”
스펙이 떨어지는 게 오히려 파견직 경영지원 업무를 하기에 적절하다는 이선균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채용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달리기는 적절성의 근거와 더욱 거리가 멀다.
많은 리더들은 직관적으로 의사 결정을 한다. 당시의 느낌이 그랬다,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왠지 그럴 것 같았다며. 직관적 의사결정은 결정권자 개인의 만족도를 높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기 기분에 맞춰 결정을 했으니.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 결정에 꽤 큰 확신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이 조직 직원을 뽑는 의사결정에 적절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조직은 ‘왜 그러한 결정을 했는가’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근거가 없는 결정은 절차적 공정성의 시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즘처럼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청년실업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나의 아저씨>는 좋은 드라마다. 그러나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감동한 리더들이 이력서에 적혀 있는 특이한 경력, 경험에 꽂혀 직원을 채용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채용은 정말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뽑아야 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기준점을 가지고 모든 지원자들이 공평하게 평가받는 시스템 속에서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경영지원 업무가 정말로 필요했고, 이지은보다 잘 해낼 자신도 있었지만 불공정한 채용 방식으로 탈락한 수많은 이름 모를 이력서에게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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