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0대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얻은 표는 79만 9천여 표, 19대 대선 201만 표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역대 최악의 대선 성적은 고스란히 지방선거로 이어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책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짚어보려 한다.
2.
정의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정책 ‘패스트 팔로워’의 성격을 띤 정당이었다. 마치 수입상처럼 유럽에서 확립된 복지 제도를 대표 정책으로 내세웠고, 디테일의 문제는 있었지만 대중과 다수당의 수용성이 높았다. 반면 근래 정의당의 대표 정책은 성격이 달라졌다. 좋게 보면 도전적인 ‘퍼스트 무버’인데, 통계로 보면 부실한 개연성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심 후보의 승부수였던 ‘주 4일제 임기 내 완료’ 정책을 보자. 주 32시간은 OECD의 풀파임, 파트타임 구분선인 주 30시간과 비슷하다. 한데 2020년 OECD 평균 파트타임 비중은 14.2%에 불과하다. 34시간 이하까지 더해도 20.3%에 그친다. 풀타임 임금근로자의 주당평균 ‘평소근로시간’을 보면, 가장 짧은 덴마크가 37시간이고 그 밑으로 총 13개국이 40시간 미만을 기록한다. 나머지는 대체로 40~41시간 사이에 있고, 한국은 자영업을 포함한 취업자의 ‘실근로시간’ 기준 44.4시간이다.
※ ‘평소근로시간’은 평소 이 정도 시간을 일한다는 응답으로부터 측정되며, 실제 이 정도 시간을 일했다는 ‘실근로시간’과 다소 다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평소근로시간이 살짝 더 길다. 예를 들어 캐나다 풀타임 취업자의 경우 0.5시간 내외의 차이가 있다.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한참 짧은 나라들조차 주 4일제와는 거리가 먼 노동시간 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노동시간을 줄인 것은 주 4일제가 아니라 시간당 임금과 생산성은 높이고 직종 및 성별 격차는 낮춤으로써 장시간 노동의 필요를 줄였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실증분석이 보고하듯 노동시간의 단축은 생산성 향상의 유인이 된다. 하지만 이로부터 한국의 주 4일제 도입이 생산성 폭발을 가져온다고 추론하기엔 비약이 심하다. 현재 주 4일제는 일부 국가의 몇몇 사업체에서 시범적으로 해보는 것이 전부이다. 한국의 노동시간을 줄여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그 방법이 주 4일제라면, 1층을 짓지도 않고 2층을 올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느 나라든 노동시간 축소의 핵심은 장시간 노동의 통제이다. 연간 근로시간이 OECD 평균 정도인 캐나다의 2021년 주당 노동시간을 보면, (평소근로시간 기준) 41~49시간의 장시간 취업자가 5.1%를 차지한다. 50시간 이상의 초장시간은 6.5%이다.
반면 한국은 (실근로시간 기준) 54시간 이상의 취업자만 11.1%이고 45시간 이상으로 넓히면 30.2%에 달한다. OECD 평균 정도의 노동시간 국가와 비교했음에도 한국의 장시간 취업자가 말도 못 하게 많다.
1,000여 만 명에 달하는 이들 장시간 취업자에게 주 4일제는 10~20시간 이상 주당 노동시간이 감소하는 것으로 현실에선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희망 사항일 순 있어도 실현 의지가 담긴 정책으로는 보기 어렵다.
3.
심 후보는 2013년 저서에서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진보정당은 사회의 절박한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권을 통해 사회를 실제로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심 후보가 속한 진보정당은 실제 개선보다는 문제 제기에 주안점을 두게 된다. 주 4일제처럼 문제 제기형 정책이 전면에 나선 것은 2020년 총선에서도 동일했다.
정의당의 총선 1호 공약은 모든 20세 청년에게 3천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기초자산제였고, 3호 공약은 국회의원·공공기관·민간기업의 최고 임금을 최저임금의 5배·7배·30배 이내로 제한한다는 최고 임금제였다. 주 4일제와 마찬가지로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도는 높지만, 국제적으로도 수용성이 낮고 현실 적용보다는 파격성에 초점이 있는 정책들이다.
특정 정책을 한국에서 먼저 하는 게 문제는 아니다. 전례가 있는 정책만 하려 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잘 자랄지 의심스러운 실험실의 종자 같은 공약이 남발되면 정책 충성도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요즈음처럼 양당 대립이 격화될수록 (혹은 성별 대립이 양당 대립으로 수렴될수록) 소수정당에겐 정책 충성도가 중요하지만 정의당은 지반이 약한 정책들을 내세워왔다.
4.
한편, 주 4일제에 대한 주요 비판으로 휴식의 양극화가 제기된다. 은행 등 일부 좋은 직장에선 가능할지 몰라도 취약 지대의 여건은 그대로일 것이므로 시간당 임금이나 여가에서 불평등이 확대된다는 지적이다. 정의당은 대응 방안도 함께 제시했지만, 주 4일제의 실현 상황을 현실적으로 가정하면 일리가 있는 비판이다.
이 같은 비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 단축의 실현 계획을 제대로 세웠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정의당의 정책 역량이 후퇴한 이유를 알려준다. 노동시간을 성공적으로 줄이려면 주 4일제가 아니라 한국의 오랜 구조적 난제들을 총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오랜 난제라는 말에서처럼 이전에도, 이후에도 정책적 해결이 쉽지 않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노동시간 단축과 병행해야 할 격차 축소를 위해서는 부유층뿐 아니라 중상위층의 임금 하향도 필수이다. 소폭도 아니고 대폭 삭감이다. 일부 업종 고연차의 경우 반토막보다 더 줄더라도 국제적으로 이상하지 않다. 한국의 상위 노동시장은 도저히 돌아가기 어렵다 싶을 만큼 높은 임금 및 기업복지가 공고화됐다. 임금 삭감보다는 대규모 증세가 훨씬 효율적이지만 정책적 해결이 난망하기는 매한가지다.
저숙련 서비스업의 저임금도 구조적으로 만성화된 문제이다. 서비스 물가 상승 및 생산성 향상, (망할 기업은 망하게 두는) 구조조정, 고숙련 일자리의 증대 등을 통해 풀어야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돌봄 등 공공과 연계된 저임금 서비스업의 경우 세금 인상 및 과감한 세출 조정으로 임금 인상을 도모할 수 있지만 증세는 언감생심 세출 개혁부터 장벽이 높다.
최저임금으로 돌아가는 중소 제조업 또한 그 상당수가 산업 고도화, 즉 구조조정의 대상이니 노동시간 단축 및 임금 인상이 그만큼 어렵다. 가파른 연 공급제는 격차 축소를 위해서라도 응당 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일체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저임금 일자리는 온건한 호봉제나 경력에 따른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
또 한편으론, 연공급을 폐지하는 대신 직무급이나 성과급으로 격차를 벌리는 ‘불평등 합리화’ 흐름에도 제동이 걸려야 한다. 이렇듯 격차 완화는 연공급의 재설계라는 과제에 더해, 직무급이나 성과급의 역작용까지 막아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다.
페미니즘의 측면에서 보면, 성평등과 여성 권익이 가장 높은 나라들의 여성 고임금은 한국에서 이중 노동시장의 수혜를 보는 여성들만치 높지 않다. 정의당을 비롯한 여성주의 진영에서는 차별 타파를 명분으로 남성 대비 낮은 여성의 임금을 무턱대고 문제 삼지만, 남성보다 덜할 뿐 상위 노동시장의 여성 역시 과한 수혜를 입고 있다. 정의당은 이 같은 성평등 난제에 대해 직언이라도 할 수 있을까?
5.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의 대표 정책들은 당장의 수요에 부응하며 대중성이 높았다. 다수당의 입장에서도 소수당의 원안보다 정책을 축소하며 재정 부담을 덜 수 있고 사회구조를 탈바꿈하는 것도 아니므로 높은 수용성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곶감’들은 이 당, 저 당에서 거의 다 빼먹었다. 보육을 강조하는 건 모두 마찬가지고 ‘그 오세훈’ 시장은 유치원까지 무상급식을 시행한다. 한국은 복지 가짓수로만 보면 복지 선진국이며, 이제는 재정 부담을 키우거나 낡은 구조를 허물고 새로 구축해야 하는 난제들이 펼쳐져 있다. 정의당으로서는 선명성과 현실성, 대중성을 갖춘 정책을 내기가 그만큼 어려워진 셈이다. 이런 제약 속에 정의당은 주 4일제 등 선명성으로 승부를 걸었지만, 낡은 사회구조에 무력해진 ‘N포 국민’은 정의당의 비전에 냉담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의 위기가 정의당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정의당에서 해법을 내지 못하는 난제들은 거대 정당들도 어쩌지 못하는 일들이다. 문재인 정부는 주 52시간 상한제·최저임금 1만원·비정규직 정규직화·광주형 일자리 등 부분부분 개혁에 나섰지만 사회의 틀을 바꾸려는 의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윤석열 정권의 경우 노동시간 증가와 최저임금 하향에 열의를 보이고 있어 퇴행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귀족노조 만악론’과 ‘직무급 및 성과급 우월론’, ‘노사 자율’을 기치로 개악과 개혁을 섞으려 할 때, 이를 넘어서는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논의들이 분출한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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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위기는 정치 자체의 한계도 드러낸다. 한국 정치의 문제 해결 능력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정의당의 위기인 것이다. 기실, 한국에서는 뭐가 됐든 으레 정치를 통한 해결을 요구하지만, 노동시간과 격차를 가장 성공적으로 줄인 나라들은 법정 최저임금 인상 같은 정책적 해법이 아니라 산업별 최저임금 단체협약 같은 비정책적 해법을 가지고 있다. 기본기부터 부족한 한국의 정치가 노동운동의 취약함을 딛고 구조적 난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애당초 부질없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마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등을 돌릴 수 없다. 단순한 당위가 아니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가변성 때문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역동적인 세계가 바로 한국 정치 아닌가. 당장 지방선거만 보아도 이전 선거에서 압승했던 민주당이 언제 그랬냐는 듯 참패를 당했다. 불과 4년 만에 압승과 참패가 뒤집히는 격변을 보며 ‘다이내믹 코리아’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온 나라를 뒤흔든 탄핵 시위는 역동적인 한국의 완벽한 증거였다.
한국 특유의 역동성은 사실상 유일하게 기대를 걸 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그 전에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한국 정치의 격변은 ‘가짜 역동성’이다. 촛불이 모여 탄핵을 하든, 선거 승자가 누구이든 낡은 구조에 속박된 삶은 늘 그대로였다. 평범한 이들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게끔 고착된 한국은 역동성이 아닌 무기력으로 가득 찬 사회다.
한국 사회를 탈바꿈시키려면 죽어버린 역동성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는 곧 불평등과의 싸움에서 역동성이 무기가 돼야 한다는 의미이다. 불평등처럼 정말 싸워야 할 전장에서 한국 특유의 역동성이 그 진가를 발휘할 때, 비로소 더 나은 사회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문: 장제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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