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B씨는 몇 해 전, 현재의 직장에 갓 입사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취직이 결정됐을 때, 주위에서는 칭찬과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B씨는 그런 열렬한 반응에 머쓱하면서도 자신이 결국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남들 보란 듯이 멋지게 대기업에 입사한 자신이 그렇게 대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 직장을 다닐 때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차고 넘쳤다. 자신도 회사의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당당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들어 벅찼고, 한동안은 회사 로고만 봐도 애사심이 솟았다.
그러나 그것도 다 지난 일일 뿐이다. B씨를 버티게 하는 것은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 그로 인해 갖는 안정감이다. 회사의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기는커녕, 지금 내가 맡아오고 있는 이 일이 결국 무엇을 위한 일인지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된 지도 오래다.
회사 로고를 본다면? 심드렁하다. 그냥 늘 봐 왔던 그거다. 신입사원 교육 받을 때 회사 소개 부분이 나오면 ‘좋은데’ 다닌다는 생각에 애사심이 생겼는데, 지금은 아무리 그런 비슷한 내용을 봐도 그런 기분이 들 것 같지 않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 충만한 사원들을 희망한다. 일터를 가정으로 여기고 직장 선후배를 가족처럼 소중히 여겨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족이기에 가질 수 있는 그 무한한 책임감과 애착으로 회사 발전에 이바지해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기업들에서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일명 ‘회사 뽕’을 주입하려는 여러 시도들을 한다.
회사의 역사와 발전 과정, 가치와 비전이 담긴 자료를 교육·배포하거나 괜찮은 사업 성과가 났을 때 그 자랑스러운 소식을 꼭꼭 공유하곤 한다. 세상 살기 퍽퍽한 요즘은 때때로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세상에 이곳만한 데가 어딨냐며, 바깥은 지옥이라며, 이 괜찮은 조건의 직장을 정녕 포기하겠느냐며 넌지시 압박한다.
그러나 요즘 직장인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그러한 회사의 노력들이 비록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이곳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넘어 회사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는 상태까지 도달시켜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회사에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길 원한다면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주길 원하고 있다. 회사 자랑 말고, ‘조건’으로 말이다.
몇 개월 전 있었던 잡코리아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54.4%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하였다(38.9% – 별로 느끼지 못한다, 15.6% – 전혀 느끼지 못한다). ‘회사 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로 낮은 연봉 수준, 워라밸이 없는 근무환경, 만족스럽지 못한 복리후생 등이 가장 높은 응답을 기록했다.
재미있는 것은, 자부심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워라밸이 보장되는 근무환경’, ‘높은 연봉 수준’, ‘만족스러운 수준의 복리후생’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 「직장인 절반 이상 “회사에 자부심 못 느껴”…이유는 ‘낮은 연봉’」(뉴시스, 2018.06.05)
과거에는 ‘평생직장’ 개념이 상대적으로 강했다. 그래서 애사심을 고취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식 교육이 효과적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좋든 싫든 내가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한다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정당화·합리화를 시도하기 마련이다. 즉, 기왕이면 내가 헌신하고 있는 회사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인지부조화(심리적 불편감) 해소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취업 한번 잘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경력 관리가 중요해졌고,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다른 직장으로 넘어가는 문제가 몹시 중요해졌다. 그 과정에서 회사, 조직의 안녕을 위해 자신을 섣불리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자발적 아웃사이더’들도 증가하고 있다. 아예 직장인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직장을 다니다 퇴사하고 가게를 꾸리거나, 프리랜서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낯선 요즘 세대들에게 애사심 교육은 그리 효과적인 것 같지 않다. 차라리 경쟁사 대비 더 우수한 연봉, 복리후생, 근무 환경 등을 보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떡 하나 더 줄 수 있는 곳이 최선이다. 그에게 충성심이란 우선 시장기를 추스린 후에야 가질 수 있는 후순위 정신이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이 필자의 다른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