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나부랭이에 불과하나 일반 대학원에서 그래도 심리학을 연구해 본 입장에서 돌이켜보면, 심리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쪼잔’한 사람들이다. 사랑, 헌신, 이타, 동정, 윤리, 인내, 공격성, 감정 등등을 논할 때 심리학자들은 이들의 1) 개념적 정의가 뭔지, 2) 측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몇 날 밤을 새우며 싸울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나 역시 그 프레임을 놓기가 도통 어려움을 실감한다).
왜 그럴까? 심리학은 기본적으로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본능적으로 잘 믿지 않는다. 어려워하며, 애매해하고, 생생하고 확실한 것에 차라리 더 눈길을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과학’ ‘측정’ ‘명료화’ ‘교차검증’ 등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며 자신들의 연구 주제에 보다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사소한 차이가 심리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예기치 못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이해하는바, 모든 연구의 첫 단추인 개념을 정의하는 과정에 무엇보다 엄청난 공을 들인다(이는 심리학 학술대회장을 가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동료들의 연구를 볼 때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어떻게 정의했는지’, ‘어떻게 측정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실제로 현대 심리학이 출범하고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왜 연구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눈에 안 보여도 존재’함을 증명하는 데 또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눈에 안 보여도 존재’하는 그것이 우리 삶에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증명하는 데 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에서는 어떨까? 특히 크고 작은 돈이 직접 오가며 대체로 급박하게 흘러가는 비즈니스 세계와 심리학자들의 갖춘 ‘깐깐함’은 지향점도, 맥락도 다르다. 어쩌면 아카데미 안팎의 차이, 이론과 응용의 차이, 고집과 타협의 차이라고 봐도 크게 다른 설명은 아닐 듯하다. 나는 인성검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니 채용 인성검사를 예시로 설명해야겠다.
대부분의 인성검사에서는 ‘타협’을 한다. 깐깐함을 어느 정도 내려놓은 채, 쉽고 간결한 하나의 지표(index)로 책임감을 말하고, 인내심을 말하고, 팀워크를 말하고, 정직성을 말하고, 외향성을 말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학술적 엄밀함을 요구한다는 게 무리라는 건 안다. 하지만 적절한 줄다리기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가끔 나는 이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 복잡다단한 심리적 개념이 저러한 단 하나의 지표로 환원될 수 있는가?
이 글에서는 특히 ‘팀워크’의 애매함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팀워크는 채용 인성검사의 단골 요소이다. 웬만한 인성검사에 다 들어간다. 그만큼 인성검사의 고객, 즉 기업들의 입장에서 볼 때 팀워크만큼 보편적이며 또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팀워크라는 개념이 사실 단 하나의 지표로 나타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만만한 개념은 아닌 듯하다.
팀워크 46점(3등급)
A지원자의 팀워크 ‘T점수/등급’이다. 이 지표가 있으면 ‘같은 기준으로 측정’했음을 전제로 할 때 A지원자가 전체 규준 대비 어느 위치쯤에 있는가를 파악할 수는 있다. 각 기업에서는 나름의 기준에 따라 컷 포인트를 잡을 것이고, 기준 서열 미만에 해당하는 응시자를 탈락시킬 것이다.
중요한 건 줄 세우기 그 자체가 아니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줄을 세웠는지를 ‘깐깐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실 위의 저 팀워크 점수/등급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의미는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음의 자료에는 그간 학자들이 팀워크를 어떻게 다뤄왔는지가 간단히 정리되어 있다.
포인트는 두 가지다. 1) 팀워크에 대한 정의는 하나로 합의될 것 같지가 않다. 한 눈에 봐도 학자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름을 알 수 있다. 2) ‘팀워크’라는 이름 아래에 숨어 있던 세부 요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의사소통, 대인관계, 문제해결, 신뢰, 몰입, 유연함, 리더십, 과감성, 목표 달성 등등 갖출 건 다 갖춘 모양인지라(?) 팀워크 하나만 제대로 측정하면 될 뿐 굳이 종합 인성검사가 필요 없을 지경이다.
팀워크는 일종의 복합개념이다. 그런 이유로 본질을 따져 묻기를 좋아하는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팀워크 같은 느슨한 개념은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다. 도대체 팀워크 안에 ○○은 왜 들어가는가(혹은 ○○은 들어갈 수 있는데, XX는 왜 안 들어간 건가, 기준이 뭔가)? 팀워크 안에서 다뤄지는 ○○과, 일상의 대인관계에서 다뤄지는 ○○은 어떻게 다른가? 팀워크가 여러 하위 요인들의 합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면, 굳이 팀워크라는 개념을 따로 둬야 할 이유가 있나? 그냥 나눠서 하나하나 다루면 안되나? 다른 어떤 개념들과도 구별되는, 팀워크만의 고유한 특성은 도대체 뭔가? 질문이 한가득하다.
따라서 나는 팀워크를 한 줄 요약하는 데 회의적이다. 저 복잡한 구성요인이 쉽사리 고유한 구인(construct)으로 응집되어 하나의 점수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팀워크를 여러 하위 요인으로 세분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음의 예시를 보자.
두 개의 인성검사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팀워크’ 하나의 요인으로 다루는지, 여러 하위 요인으로 세분화하여 점수를 제공하는지 여부다. 타입A의 경우, 지금까지 설명했던 바와 같이 ‘팀워크’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타입B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팀워크를 대인관계, 설득력, 리더십, 이타심, 양보 등으로 팀워크를 나눠놓았다. 자 이것으로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새로운 문제가 또 생긴 듯하다. 기존의 요인들과 팀워크 하위 요인 간 구분이 어려워졌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 ① 외향성과 ⑤-(1) 대인관계는 뭐가 다른가? 만약 두 점수의 방향이 일치/불일치하면?
- ③ 리더십과 ⑤-(3) 리더십은 뭐가 다른가? 만약 두 점수의 방향이 일치/불일치하면?
- ④ 관용성과 ⑤-(4) 배려는 뭐가 다른가? 만약 두 점수의 방향이 일치/불일치하면?
보다시피 요인 간 교통정리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비슷한 두 요인 점수가 너무 비슷하게 나오면 굳이 두 개의 요인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두 요인 간 차별성을 만들자니 엄밀한 개념 정의 및 구인타당도 확보의 어려움이 따른다. 향후 인성검사 변인을 IV로 두고 회귀식이라도 세운다 치면 다중공선성의 문제를 맞닥뜨릴 가능성이 커진다.
인성검사에서 다루는 팀워크는 제한적이다
인성검사에서 측정하는 팀워크는 우수한 팀워크를 만드는 데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1) 의사소통 상의 큰 문제점이 있는가? 2) 자기 생각만 앞세우는 독단적인 모습이 있는가? 3) 공동의 목표를 인식하고 있는가? 등 기본 소양, 자질을 점검하는 정도로 조심스럽게 활용한다면 충분히 그 쓰임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단 앞서 언급했듯 타 요인과의 구분이 모호해질 수 있으므로 차별성을 확보하는 직관적, 통계적 노력은 꼭 필요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위 내용들을 갖췄다 해서 저절로 우수한 팀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팀으로서, 개인이 해내지 못할 위대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분명 그 이상의 +α가 더 붙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 +α는 팀원 ‘당사자’ 간의 핏(fit), 그리고 환경 요인의 서포트다.
특히 요즘같이 애자일 조직 문화가 대세라면, 그래서 프로젝트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분위기라면 애초에 지금까지 다뤄왔던 ‘팀워크’라는 개념은 낡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람이 만나 그만큼 다양한 합이 발생하고 시너지가 난다. 내외부 환경은 계속 변화하며 새로운 과제에는 새로운 배경을 지닌 팀원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팀워크에 대한 진단 기준도 어느 정도 맞춰가야 하지 않을까. 수천, 수만 명을 줄 세워 팀워크 점수를 매기기보다는 ‘팀’에 주목하며 팀 내에서의 역동(dynamic)을 추적하는 것이 지금 시대에 부합하는 팀워크일지도 모르겠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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