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는 직장인들의 ‘아웃사이더’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모아 보도자료 형식으로 발표했다. 직장인 1,402명에게 질문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37.4%, 즉 10명 중 3.7명꼴로 자신을 직장 내 아웃사이더로 여김이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은 33.0%에 해당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57.1%로 나타나 결과적으로 현재 자신이 아웃사이더라고 응답한 사람 중, 내심 아웃사이더가 되길 원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진 이들의 비율은 무려 90.1%에 달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9.9%에 불과했다.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다
직장 내 개인주의, 혹은 ‘다양성’의 발로가 심상치 않은 듯하다. 집단주의 문화의 향기가 짙었던, 불과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개인 > 조직은 성립할 수 없는 구도였다. 개인은 집단의 일부가 되어야 했고, 집단의 번영과 존속을 위해 스스로를 감추거나, 기꺼이 희생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개인주의 바람이 분 지 꽤 오래고,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
직장 내 풍속도 역시 많은 변화를 겪는 것으로 보인다. 부모님 세대 때 ‘퇴사한다’ 하면 주위에서 연민 어린 시선을 받을 가능성이 컸지만 이제는 박수받을 가능성이 부쩍 커졌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쇠퇴하고, 자신의 적성과 흥미, 혹은 여타의 개인적/환경적 변수에 따라, 경제활동을 시작한 사회초년생은 사회적 은퇴 시기에 다다를 때까지 최소 몇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일을 경험해보며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처음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여기던 시절에는 ‘이직,’ ‘퇴사’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상당했지만, 이제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의 하나로 자리 잡아 가는 분위기다. 심지어 자신의 가치관 따라, 흥미 따라 살아가는 삶에 대한 동경이 사회적으로 줄을 잇다 보니 ‘이직,’ ‘퇴사’라는 단어에 ‘쿨함,’ ‘당당함,’ ‘행복,’ ‘소확행,’ ‘욜로’ 등의 세련된 이미지들까지 붙었다.
수직적 위계질서나 더 밀도 있는 규모에서의 단합, 협동심 등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관료제 직장이라면 지금의 이 아웃사이더 현상이 반갑지 않을 것이다. 자기 할 일만 다 하고 쏙 퇴근하는 풍토가 고착화되면, 조직으로서 존재하기에 가지는 고유의 장점인 협력적 효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을 우려할 것이다. 그런 직장에서라면 아웃사이더 현상을 일종의 ‘문제’로 여기려 할 것이다. 다음 스텝은 안 봐도 비디오다. 직원들이 왜 직장(일)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지 걱정할 것이고, 어떻게 하면 협동심과 애사심을 길러줄지 고민할 것이다.
가령 아시아타임즈의 기사에서는 직장 내 아웃사이더 증가 현상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규정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왜 아웃사이더가 안 좋은지 설명하는 데 적지 않은 지문을 할애하며, 그것을 해결할 ‘방안’을 논한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직장 내 아웃사이더 증가 현상이 마냥 부정적인 결과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사실 전제부터 위태롭다. 직장 내 아웃사이더 증가가 어째서 반드시 직장 내 협업의 감소 및 효율성 저하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가? 다르게 생각하자면, 이는 협업의 소멸이 아니다. 단지 협업이 이뤄지는 방식과 목적이 기존과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 옳다.
수직적이고 몰개성적이며 질보다는 양으로 밀어붙이던 기존의 방식 대신 수평적이며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한편, 양보다는 팀원 개개인의 고유 역량에 따른 업무 분배 및 시너지 효과를 유도하는 형태의 협업. 적당히 책임감과 의무를 나눠 가지기에 그것에 개인이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부담이 덜 하기에 역설적으로 더 자유분방하고 홀가분한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형태의 협업.
그러한 새로운 형태의 협업이 가능해지기 위한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것이 기존의 방법보다 효율 면에서 더 낫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 사장님에게나 직원들에게나 좋은 일이다.
한편, 사장님의 행복 공식과 직원들의 행복 공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 또한 직장 내 아웃사이더 증가 현상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직원들의 개성을 자르고 하나의 목표로 일치단결할 것을 강요하면 어쩌면 사장님이 행복하고 직장이 배를 불리는 결과를 누릴 수는 있어도 직원의 입장에서는 성취감도 잠시일 뿐 피폐함과 공허함, 그리고 막대한 피로와 스트레스성 질환을 고된 노력의 결과로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다.
그런 면에서 ‘회사가 잘 되는 길’과 ‘내가 잘 되는 길’을 어느 정도 구분하고, 아웃사이더를 자청하며, 알아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려는 신(新) 직장인들의 모습은 어리석고 철없다기보다는, 야무지고 현명한 처사로 여겨져야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직장인들이 행복의 참 의미를 깨우쳤다
행복은 유보될 수 없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우거나 희생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다수의 심리학 연구 결과가 공통적으로 들려주는 교훈이다. 먼저 나중에 행복하려면 지금 고생하고 벌어둬야 한다며 잦은 야근, 회식, 경직된 조직문화, 날 괴롭히는 직장 내 인간관계 등 다 참으려 하면 나중에는 행복 찾아 나설 체력이 남아날 수 없다. 상처뿐인 영광이다.
행복은 지금 내게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선을 다해 즐길 때 찾아오는 것이다. 나중에, 나중에 하다가 인생 즐기는 법을 까먹기라도 하면 어찌할 텐가. 노후가 되어 즐겁게 웃으며 떠올릴 추억 하나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면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또한 행복과 가까운 심리학적 개념으로는 ‘자기(self-)’ 시리즈가 주로 거론된다. 자존감, 자기 효능감, 자기 가치감, 진정한 자기 등등. 그런데 ‘아웃사이더’가 되지 못하고 직장에만 끌려다니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자아가 실종된 상태에서는 행복을 찾아 나설 수 없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복이겠는가. 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직장 내 아웃사이더, 즉 자기 행복 공식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존재와 그 태도는 소중하다. 어떤 일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부디 ‘아웃사이더’들과 ‘사장님’들이 훌륭한 타협점을 찾아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