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월 이후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2~5%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0.7%p 차이로 석패했다. 우리의 질문은 2가지다.
- 첫째, 왜 갑자기 막판에 결집했는가?
- 둘째, 막판 결집에도 불구하고 왜 패배했는가?
우리는 첫 번째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 2030여성의 막판 결집 때문이었다. 이준석-윤석열에 대한 반감과 N번방을 추적했던 ‘불꽃’ 활동가 박지현 씨의 합류와 호소력이 막판 2030여성의 결집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두 번째 질문 던진 사람도 많지 않고, 답변도 빈약하다.
두 번째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유권자 구성 때문이다. 2022년 대선에서 유권자 구성은 ① 2030세대(32%) ② 4050세대(38%) ③ 607080세대(30%)였다. 2030세대에서 남녀가 ‘반까이’를 하면 어떻게 될까? 4050세대 유권자 비중이 38%이고, 607080세대 유권자 비중이 30%이기 때문에 고연령자의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을 감안해도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졌다. 왜?
다시 말해, 민주당의 중요한 패인(敗因) 중에는 4050세대의 이탈이 있었다. 4050세대의 이탈과 유사한 현상이 실은 서울 지역의 패배다. 대선 기간 내내, 서울은 정권교체 여론의 진원지였다.
4050세대의 동원은 왜 약화됐는가? 다르게 표현해서, 4050세대의 이탈은 왜 발생했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 좌편향적 부동산 정책 때문이었다. 더 크게는 좌편향적 경제정책때문이었다.
누구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자신을 ‘업데이트’하기 위함이다. 더 강한 민주당, 더 유능한 민주당, 이후에라도 성공하는 통치의 경험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2.
부동산 정책은 크게 ① 세금 ② 대출 ③ 공급의 세 덩어리로 나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세금’은 주로 상대적 부유층에 해당한다. 나이로 치면 50대~70대가 해당한다. 반면, 20~40세대에게 특히 민감한 것은 ‘대출’이었다.
문재인 정부,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공급과 대출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부동산 세금, 그중에서도 종부세(종합부동산세)에 논의를 집중하기로 한다. (부동산 세금은 취득 단계의 취득세, 보유 단계의 종부세와 재산세, 처분 단계의 양도소득세로 구분된다)
결론부터 말해, 문재인 정부에서 종부세는 ‘정권교체 촉진세’였다. 종부세는 정책의 정합성을 위해서도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치적-정무적 관점에서도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종부세를 폐지하고 재산세와 통합하는 게 바람직하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현재 1주택자 종부세 폐지를 주장한다. 그런데, 이는 지금 시기에 매우 소극적인 대응이다. 종부세 자체를 폐지하고, 재산세와 통합하는 게 훨씬 깔끔하고, 그게 정공법이다.
3.
종부세의 결정적 문제점은 이도 저도, 아닌 짬짜면 & 잡탕밥 성격의 세금이라는 점이다. 현행 종부세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5가지 서로 다른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①보유세 ②부동산 가격안정세 ③부유세 ④다주택자 규제세 ⑤지역균형발전세. 문제는 5가지 취지가 전부 짬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첫째, 보유세로서의 종부세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유세는 국세가 아니라 지방세다. 왜냐하면, 보유세의 철학 자체가 지역의 행정 인프라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보유세를 ‘국세’로 매기는 경우는 한국의 종부세 이외에 거의 없다.
둘째, 종부세는 부동산 가격안정세의 취지를 갖는다. 2018년 대비 2021년의 3년 동안 주택분 종부세의 증가배율은 (무려) 14.3배였다. 원론적으로 보유세가 옳은지, 거래세가 옳은지, 소득세가 옳은지는 토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3년에 14.3배가 상승하는 것은 명백하게 부당하다. 그런데, 3년에 14.3배가 올랐다. 도대체 왜?
부동산 가격이 2배 가까이 뛰는데, ‘세금’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비유하면, 반도체 수출이 대박을 쳐서 상위 10%에 해당하는 삼성전자 노동자들 소득이 급상승하자, 불평등 축소의 일환으로 법인세를 경기변동 상황에 맞춰 올렸다 내렸다 하는 상황에 비견할 수 있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도 법인세를 ‘소득불평등 완화’의 일환으로 1년 만에 올렸다, 내렸다 하는 나라는 없다.
셋째, 종부세는 부유세(富裕稅) 성격을 갖는다. 문제는 서울에 21억 아파트 한 채 있는 경우와 지방에 7억 아파트 3채 있는 경우의 종부세 부과율이 20~30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서울 21억, 1주택’과 ‘지방 7억, 3주택’의 종부세는 확연히 다르다. 서울 1채 부자는 지방 3채 부자보다 종부세를 약 1/20~1/30만큼 덜 낸다. 종부세의 세계관은 부유세인데, 실제로는 ‘엉망진창’ 부유세인 셈이다.
넷째, 종부세는 다주택자 규제세 성격을 갖는다. 대한민국에서 자가 비율은 약 55%이고, 전월세 비율은 약 45%다. 전월세 주택이 공급된다는 것은 누군가 2채 이상의 다주택자여야만 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민주당의 정책적 목표는 무엇인가? 전월세 주택의 전면 폐지가 궁극적인 정책목표가 아니라면, 다주택자를 적폐(積弊)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종부세는 지역균형발전세 성격을 갖는다. 종부세는 국세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유세가 국세인 경우는 거의 없다. 흔히 보유세로 유명한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은 대부분 ‘지방세’다. 보유세의 취지 자체가 지역의 행정 인프라에 대한 댓가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 실리콘밸리의 팔로알토 지역은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다. 2층 단독주택이 200억~300억원 한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보유세가 훨씬 높다. 그 이유는 자신이 낸 높은 보유세가 경찰, 도로, 학교 등의 지역 인프라와 서로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적 결정도 자신들이 한다. 비유하면, 서초동 주민들이 자신들의 재산세 비율을 자신들이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의 종부세는 국세이면서, 누진세이면서, 부담 능력과 연동된 응능세(應能稅)이면서, 지역 인프라와 무관하다. 당연히 조세저항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4.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주택분 종부세의 총액은 다음과 같다.
▴2017년(3,878억원) ▴2018년(4,432억원) ▴2019년(9,524억원) ▴2020년(1조 8,418억원) ▴2021년(5조 7000억원)
- 2018년 대비 2021년 주택분 종부세의 증가배율은 14.3배이다.
- 2019년 대비 2021년 주택분 종부세의 증가배율은 5.7배이다.
- 2020년 대비 2021년 주택분 종부세의 증가배율은 3.2배이다.
(공산주의 국가, 독재국가, 전제정을 제외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3년 안에 14.3배가 증가하는 세금의 사례가 있었을까? 이렇게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세금을 더 걷는 것은 그 자체로 부당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공통으로 잘못한 것은 ‘고작 2%’라고 합리화했다는 점이다. 2%는 몇 명일까? 100만명이다. 세금은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퍼센테이지(%)’를 논거로 제시했다.
어떻게 세금의 정당성이 ‘퍼센테이지(%)’일 수 있는가? 2%이면 아무렇게나 걷어도 되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더더욱 잘못한 것은 2% 내외의 소수 부자들에게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세계관을 공공연히 주장했다는 점이다. (※ 이재명 후보는 국토보유세를 주장하면서 핵심 논거로 걷는 사람은 10%이고, 혜택은 90%가 본다는 점을 제시했다.)
2021년 종부세 대상자는 100만명이었다. 이 중에서 50만명이 서울이었다. 종부세 대상자 50만명은 전체 서울 인구를 기준으로 보면 약 5%(50만명/950만명)가 된다. 서울의 총 주택 수는 350만채다. 종부세 대상자 50만명을 가구 단위로 나눠보면 14.2%가 된다. 가구당으로 표현하면 7가구당 1채가 된다. (※ 물론, 종부세는 개인을 기준으로 부과한다. 그래서 가구 단위가 정확한 비교는 아니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비교한다.)
5.
7개의 그림-그래프-표를 첨부한다.
3.9 대선에서 서울지역 부동산 가격과 윤석열 득표율은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줬다. 해석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 서울의 중산층 이상 부유층이 계급투표를 했다.
- 종부세 등 조세저항에 대한 심판투표를 했다.
실제로는 둘 다 맞는 말일 것이다. 다만, 두 가지 팩트의 인식이 중요하다. 첫째,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투표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윤석열을 찍었다는 것이다. 윤석열을 찍은 서울지역 유권자 전부는 원래 ‘적폐’여서 민주당이 표를 못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관계없다. 그렇지 않다면 뭔가 반성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이 부자이든 아니든, 상대방이 2%이든, 1%이든, 상대방이 100만명이든, 50만명이든, 10만명이든, 3년에 14.3배를 올리는 세금은 부당한다는 것이다. 3년 동안 14.3배 올리는 세금에 대해 조세저항의 심리를 갖는 것은 너무너무 당연한 일이다.
6.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윤석열은 정치 초보다. 평생 검사로 살았던 사람이다. 윤석열은 대선 캠페인 기간 내내, 자기 지지층이 누군지도 잘 몰랐다. 선거가 끝나는 날까지 중도 확장 캠페인은 거의 없었다.
1987년 대선 이후, 보수정당 계열의 대선 후보 중에서 윤석열만큼 약체였던 후보는 없었다. 후보 경쟁력 관점에서도 그랬고, 캠페인 관점에서도 그랬다. 윤석열은 실언의 왕이었고, 쩍벌남이었고, 모르는 것 투성이였고, 비전도 없었고, 정책도 없었다. 2012년 박근혜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처럼 ‘중도 확장’의 감흥도 전혀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윤석열에게 졌다. 윤석열은 2027년에는 다시 출마하지 않는다. 윤석열은 1987년 이후 한국 선거 역사상 보수정당 계열의 최약체 후보였기 때문에, 2027년에는 ‘더 쎈 놈’이 대선후보로 출마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이 0.7%p 격차의 패배에 안주할수록, 민주당의 재집권은 멀어질 것이다.
민주당은 86 운동권 세계관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정책을 남발하여 정권을 빼앗겼다. 이를 혁신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나이가 203040세대인 또 다른 청년 운동권으로 ‘화장술’을 발휘할 경우, 민주당은 이후에도 패배하게 될 것이다.
종부세는 정권교체 촉진세다. 종부세는 폐지해야 한다. 정책적 정합성 관점에서도 폐지가 옳다. 정무적-정치적 관점에서도 폐지가 옳다. 종부세에 담긴 보유세의 철학은 재산세와의 통합을 통해 실현하면 된다. 종부세의 세계관에는 86세대 운동권 철학의 낡은 지꺼기인 계급적 적대감과 로빈훗적 사고방식이 묻어 있다.
종부세는 참여 정부 시절에도 실패했다. 부동산 가격이 2배 가까이 오르는데 ‘세금’을 통해 가격을 잡으려 했다. 문재인 정부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 부동산 가격이 2배 가까이 오르는데 ‘세금’을 통해 가격을 잡으려 했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가, 그 어떤 민주주의 국가가, 어떤 정책 책임자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동산 보유세 폭등을 통해 잡으려고 한다는 말인가?
민주당의 혁신은 ‘실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간직하되, 경제문제의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누가 더 참된 운동권인지, 누가 더 센 주장을 하는지, 누가 더 참된 진보인지 다투는 정치를 그만해야 한다. 86세대 운동권을 203040세대 청년 운동권으로 바꾸려는 행태 역시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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