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읽었던 변양균 전(前)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제철학의 전환』 서평을 뒤늦게 올린다. 책은 매우 얇다. 약 230쪽이다. 목차는 총론과 각론으로 구성돼 있다. 총론에서는 ‘케인즈식 수요 확대’에서 ‘슘페터식 공급확대’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밝힌다. 각론에서는 한국에서 슘페터식 성장정책을 위한 정책수단의 개요를 밝힌다.
각론은 ▴노동의 자유 ▴토지의 자유 ▴투자의 자유(=자본의 자유) ▴왕래의 자유에 관한 정책수단들을 소개한다. 슘페터에게 혁신이란 새로운 결합을 의미한다. 새로운 결합은, 생산요소가 자유롭게 결합할 때 활성화된다. 목차가 ▴노동 ▴토지 ▴자본 ▴국민국가(해외부문)의 자유로 구성된 이유이다. 목차의 구성에서부터 논리 체계의 완결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나는 애초 변양균의 책을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근데 책을 펼치자마자 내 맘에 쏙 드는 문장을 만났다. 책의 시작 부분이다.
국가 정책을 실제로 시행하는 데는 목표와 수단의 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목표가 더 중요할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수단이 더 중요하다. […]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생을 국가기획과 경제정책 업무에 종사했다.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모아, 향후 경제정책의 수단들을 관통하는 철학을 이 책에서 제시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철학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 7–13쪽
변양균의 이 단락을 읽고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책에 나온 ‘집 그리기’와 ‘집 짓기’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신영복 선생님이 통혁당 사건으로 감옥에 있을 때, 감옥 안에서 알게 된 목수가 집을 그리는 순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는 보통 집을 그릴 때 지붕→집 몸통→창문처럼 위에서부터 아래 순서로 그린다. 그런데 목수는 바닥을 다지고→집 몸통을 올리고→지붕을 얹는, 아래에서 위 순서로 집을 그렸다.
전자(前者)를 ‘집 그리기’라고 표현하고, 후자(後者)를 ‘집 짓기’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후자의 그림 순서가 전자와 달랐던 이유는 실제로 집을 지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먹물(지식인)의 관념적인 접근이 아니라, 실천의 세계를 마주했던 노동자의 집 짓기였다.
목표와 정책수단의 관계도 유사하다. ‘문제제기형 접근’을 주로 했던 사람은 목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제해결형 접근’을 주로 해본 사람은 정책수단을 주목하게 된다. 목표와 수단에 대한 위와 같은 인식은 오랜 관료생활, 청와대 정책실장, 기획예산처 장관 등을 했던 경험에서 묻어나온 내공이다.
문제 제기보다 솔루션을 주요 내용으로
일반적으로 경제 정책을 다룬 책을 보면 실태자료는 있지만 솔루션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예컨대 불평등에 관한 책이 있으면 불평등에 관한 실태자료들이 왕창 소개되고, 그래서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식으로 끝난다. 대기업-중소기업 격차와 관련된 책들의 경우, 격차에 관한 실태자료가 왕창 나오고, 그래서 중소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책 분량이 400쪽이면 350쪽 정도가 실태고, 나머지 50쪽은 당위적 방향성만 언급하고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본인도 대안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차를 연결한다고 기차가 되지는 않듯, 문제 제기를 많이 한다고 문제해결 방안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둘은 관련되어 있되, 완전히 별개의 세계이다.
『경제철학의 전환』의 분량은 약 230쪽인데, 대부분이 솔루션에 관한 내용이다. 내가 과문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솔루션이 책 내용의 대부분인 경우는 정말이지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그러니까 『경제철학의 전환』은 ① 경제정책 관련 책 중에, ② 솔루션이 중심 내용이고, ③ 총론과 각론이 같이 있는, 매우 독보적인 책이다.
변양균은 케인즈는 ‘단기+수요 이론’이며, 슘페터는 ‘장기+공급 이론’이라고 본다. 타당한 구분법이다. 각론의 내용을 요약하면,
- 3장 노동의 자유는 덴마크와 네덜란드처럼 유연안정성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사회복지와 노동유연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 4장 토지의 자유는 수도권 규제 완화를 통해 투자유치를 강화하고, 토지공급에 대한 규제를 풀어 지가(地價)를 낮추자는 것이다.
- 5장 투자의 자유(=자본의 자유)는 모험적인 창업 및 혁신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 6장 왕래의 자유는 한국이 해외의 유능한 인재를 수용할 수 있도록 ‘개방형 통상국가’로 거듭나자는 것이다. 미국의 뉴욕과 캘리포니아 같은 나라, 혹은 과거 전성기 시절의 네덜란드 같은 나라를 만들자는 취지이다.
위와 같은 정책제언들은 지금,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니라 ‘공급 측 혁신을 위한+장기적인+정책과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디테일하게는 보완이 필요하겠지만, 큰 틀에서 대체로 동의하는 내용이며, 『경제철학의 전환』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다.
복지와 기업 경쟁력
『경제철학의 전환』 중 특히 인상적인 내용은 복지와 기업 경쟁력을 연결해 논리를 전개하는 부분이다. 사회보장제도가 덜 발달해 기업이 종업원의 복지를 책임지는(=기업복지) 방식인 미국 제너랄모터스(GM) 사례를 든다. 자동차 1대당 노동자들에게 1,400달러(약 160만 원)의 복지비용이 추가로 지불되었다. 그만큼 기업 경쟁력에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반면 독일의 BMW는 이를 사회복지로 해결한다.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기업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국제적인 무역협정에서는 보조금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복지지출의 경우, 당당하게 무역협정의 속박 없이 지불할 수 있는 장점을 갖게 된다(68–69쪽).
이런 문제의식은 R&D를 다루는 부분에서 예산의 재배분으로 이어진다. 한국 경제성장은 의도적으로 불균등 발전전략을 채택했다. 수출 및 중화학공업과 연동된, 재벌-대기업에게 자원을 몰빵해주는 방식이었다. 이게 선별적 산업정책의 실체였다.
재벌-대기업에 대한 선별적 산업정책은 민주화 이후 조세감면제도와 R&D 지원제도로 형태가 변경된다. 재벌-대기업의 R&D에 대해 정부가 조세감면 및 직접적인 형태로 지원해준다.
이에 대해 변양균은 노동에 대한 무차별적 지원으로 지원형태를 변경하자고 제안한다. 그게 바로 국민의 기본수요 충족 및 고용안전망이 된다. 즉 사회복지 확충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매년 지불되는 R&D 예산 19조 원은 ‘복지확충’으로 전용이 가능한 예산이 된다.
국민의 기본수요 충족, 고용안전망 등의 복지확충이 기업경쟁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국 경제성장의 역사적 발전단계와 연결해서, ① 대기업에 대한 직접지원 → ② 대기업 R&D 간접지원 → ③ 노동에 대한 무차별적 지원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국제적인 무역협정의 세계적 추세와 연결해 매우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114–119쪽).
한계와 아쉬운 점
『경제철학의 전환』의 한계를 짚어보자면 장기라는 접근법이 내포하는 정치적-정책적 한계에 관한 부분이다. 실제 정책 일선에서 장기(長期)는 언제나 ‘단기(短期)의 합’으로만 존재한다. 게다가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4년 중임제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즉 외생변수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정책과제를 인수분해해서 단기화’해야만 한다.
예컨대 변양균이 제언한 ‘장기+공급 정책’이 10년 세월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 선후경중(先後輕重)을 정리해줘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기에 ‘임기 5년 안에 할 수 있는 것’과 ‘임기 5년 안에 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케인즈의 유명한 말인 “장기에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테제와 별개로, “장기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정치의 정책 시계가 그런 것처럼.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를 통으로 간과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유연안정성 모델을 실제로 추진하려면, 노동이 단일하지 않음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사실 ‘자본의 이중구조’와 연동된 것이다. 노동의 이중구조와 자본의 이중구조를 동시에 고려한 정책적 대안은 “독점에게는 경쟁촉진을, 과당경쟁에게는 안전망을~”이라고 집약할 수 있다.
조직된 노동 상위 10%와 (미조직 노동인) 노동자 일반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정책적 해법도 그렇게 봐야 하고, 일을 풀어가는 순서 역시 이를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으로 노동자 다수의 지지와 엄호를 받으며, 유연안정성 모델을 추진할 수 있다. (순서를 잘못 풀면 정치적 반발에 직면해서 욕만 먹고 개혁은 좌초할 것이다.)
노사정 대타협 모델에 회의적
변양균은 노사정 대타협 모델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한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노사정 대타협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코포라티즘 모델이 오히려 ‘특수한’ 역사적 전제조건하에서 가능했던 것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1950년대–1960년대, 일국적 금융통제가 가능하고, 복지국가는 덜 발달해서 주고받을 게 많고, 포드주의 자본주의였기에 노동의 균질성이 강하고, 조직노동의 계급적 대표성이 높고, 조직노동의 이해관계와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던 시점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근본적으로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만일 코포라티즘이 가능했던 사회적-경제적-역사적인 조건이 달라졌다면, 우리는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양균은 그런 의미에서 노사정 기구가 아니라 정부 주도로 노동개혁을 추진한 사례를 주목하며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사례를 언급한다(224–227쪽). 이들 나라의 사례 역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확대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조직노동의 이해관계와 노동계급 일반의 이해관계는 일치하지 않는다. 한국이 예외가 될 수 있는지 여부는, 더 지켜볼 문제이다. 분명한 것은, 노사정 대타협을 신봉하는 교조주의자가 돼서는 안 된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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