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와세다 대학교 박상준 교수가 쓴 『불황터널』은 1990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다룬다. 총 7장, 분량은 약 300페이지이다. 장별로 5개 정도의 작은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체감 분량은 더 짧다. 책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이다.
- 일본 장기불황의 특징 & 장기불황(디플레이션)의 원인 (1장~3장)
- 아베 노믹스 3개의 화살(장기성장, 재정, 통화)에 대한 상세 설명 (4장~6장)
『불황터널』은 일본경제 입문서로 강력히 추천할만한 책이다. 현시점에서, 일본의 경제불황과 아베노믹스를 공부하는 것은 아래 2가지 측면에서 유용성이 있다.
첫째, 일본은 1929년 대공황 이후, 세계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디플레이션’을 겪은 나라이다. 일본경제의 디플레이션을 공부하면, 디플레이션의 위험성, 발생 과정, 전개, 대책, 예방법에 관한 정책적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일본 디플레이션 연구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대응수립’에 큰 도움을 줬다. 일본경제는 아주 훌륭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고 있다.
둘째, 일본은 2006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가 됐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더 빠르다. 한국은 2017년 ‘고령 사회’(14%)가 됐고, 2026년 ‘초고령 사회’(20%)가 될 예정이다. 약 20년을 텀으로 “일본은 한국의 미래”이다.
2.
일본식 장기불황의 시작은 주가 → 지가(地價) → GDP(성장률)의 순서로 나타났다. 주가는 1990년대부터, 지가는 1991년부터, 성장률은 1992년 0.3%, 1993년부터 -0.2%로 추락했다.
낮은 성장률이 일본식 장기불황의 핵심은 아니다. 유럽과 미국의 성장률도 낮다. 1992년~2010년 일본의 연평균 1인당 GDP는 0.6%였다. 같은 기간 프랑스는 1.0%, 독일은 1.1%, 미국은 1.6%였다. 유럽 및 미국과 구분되는, 일본식 장기불황의 특징은 3가지이다.
- 성장률의 급격한 둔화이다. 1974년~1991년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3.6%였다. 그런데 1992년~2010년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0.6%였다. 1/6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 디플레이션이다. 디플레이션은 실제로 ‘마이너스 물가’가 실현되는 경우이다. 1995년~2012년 기간 동안 월평균 소비자 물가지수(CPI)의 평균은 -0.1%였다. 실질임금도 인하됐다. 부동산 가격지수는 반 토막이 됐다. 무려 18년에 걸쳐 디플레이션, 마이너스 물가가 작동했다. 놀라운 일이다.
- 유동성 함정이다. 유동성 함정은 금리가 너무 낮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먹히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유동성 함정은 대공황 시기 케인즈가 제시한 개념이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유동성 함정이 실제로 작동되는 나라는 없었다. 일본이 처음이자 동시에 유일한 경우이다. 교과서에서만 존재하던 디플레이션과 유동성 함정이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살아있는 케이스 스터디라면, 1990년대 이후 일본은 디플레이션의 살아있는 케이스 스터디가 되었다. 박상준 교수의 『불황터널』을 토대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관전 포인트들을 꼽아볼 수 있다.
- 디플레이션의 발생원인
- 유동성 함정의 작동 메커니즘
- 아베노믹스, 3개의 화살에 대한 기본 이해
- 인구 고령화가 복지비 지출과 정부 재정에 미친 영향
- 소비세 인상이 민간소비와 경제성장률에 미친 영향
- 정부 부채 규모가 GDP 210% 수준으로 과다함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채무 불이행’에 빠지지 않고 있는 이유
- 고이즈미와 아베에 의한, 재정정책과 양적완화의 실제 효과
- 일본의 시행착오가 한국경제에 주는 시사점
- 이렇게 대략 8가지 관전 포인트를 꼽아볼 수 있는데, 하나씩 살펴보자.
3.
첫째,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왜 발생했는가? 일본에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한 원인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주식과 주택의 엄청난 거품 붕괴
- 디플레이션 ‘기대’ 형성으로 인한 소비위축
- 유동성 함정으로 인한 정책수단의 소진
- 엔고로 인한 원자재 및 천연자원의 수입 물가 하락
- 고령화 시대의 고용-연금 불안으로 소비 위축
- 높은 기업부채 비율(400%)과 부실채권(GDP의 8%)으로 인한 기업의 투자여력 제약
이 중에서 ‘디플레이션 기대’에 한해 살펴보자. 디플레이션 기대(expectation)가 한번 형성되면 경제주체들은 ‘물가가 앞으로 더’ 내려갈 것으로 예상(기대)하게 된다. 현재 1만원인 상품이 내년에는 9500원으로 ‘더 싸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럼 개별 주체는 소비를 유예하게 된다. ‘나중에’ 소비하는 게 더 이익이다.
즉, 디플레이션 기대 형성 → (향후) 물가하락 예측 → 소비 위축 → 생산자들의 생산위축 → 경기침체 → 디플레이션 기대형성의 악순환을 거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을 디플레이션 스파이럴(Deflation Spiral)이라고 표현한다.
①~⑥ 원인 중에서 ‘한국 경제’에도 해당하는 것은 ⑤고령화 시대의 고용-연금 불안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소비위축)이다. 다른 것들은 한국경제에 해당하지 않는다.
둘째, 유동성 함정의 작동 메커니즘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이 먹통이 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 소비자와 기업가들이 장래 경제 상황에 대해 ‘매우 비관적’으로 예측하는 경우다. 앞에 말했던 ‘디플레이션 기대’가 형성된 경우다.
- 이미 금리가 ‘제로금리’에 가까운 상태다. 통화정책을 통해 금리를 더 이상 내릴 여지가 없는 경우다. (p.78~p.81)
기업가에게 실제로 중요한 이자율은 실질 이자율이다. 등식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실질이자율 = 명목이자율 – 기대 인플레이션율
만일 은행대출 금리가 2.5%인데, 인플레이션이 2.0% 발생할 경우 (물가인상이 반영된) ‘실질’ 이자율은 0.5%에 불과하게 된다. (2.5% – 2.0% = 0.5%)
반대로, 은행대출이 2.5%인데, 디플레이션이 -1.0% 발생할 경우 (디플레이션이 반영된) ‘실질’ 이자율은 3.5%가 된다. (2.5% + 1.0% = 3.5%)
일본에서 마이너스 물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990년대가 아니라, 2000년대~2012년 기간이다. 90년대는 95년, 99년만 마이너스였고, 2000년대는 2000년~2002년, 2004년~2005년, 2009년~2012년에 걸쳐 (총 9년간) 마이너스였다. 2000년~2012년 기간 평균 CPI(소비자물가지수)는 -0.24%였다.
90년대를 경과하며 일본 사람들에게 ‘디플레이션 기대’가 형성됐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로 삼는 것은 은행-은행 거래에 부과되는 콜 금리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콜금리는 0.5%를 초과한 적이 없다. 당시 일본의 대출 금리는 평균적으로 2.5%였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1.0%였다.
이 경우, 기업가 입장에서 ‘실질’ 이자율은 (명목이자율 2.5%보다 더 높은) 3.5%가 된다. 중앙은행의 정책금리(콜금리)는 0.5%였지만, 기업가 입장에서 실질 금리는 3.5%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무력화되는 이유이다.
셋째, 아베노믹스와 3개의 화살을 정리해보자. 먼저 ‘3개의 화살’이란 명칭의 유래가 재밌다. ‘3개의 화살’은 동화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베가 태어난 고향인 조슈번(야마구치현)의 번주였던 모리 모노타리 가문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3개의 화살은 각각 다음과 같다.
- 대담한 양적완화
- 기동적 재정정책
- 장기 성장전략
다르게 표현하면, ①통화정책 ②재정정책 ③구조개혁 정책이다. 이 중에서 ‘대담한 양적완화’가 가장 중요하다.
대담한 양적완화의 핵심은 장기 국공채 발행이다. 일본 정부가 ‘10년 만기 국공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이를 매입하는 것이다. 양적완화(=장기 국공채 발행)를 사용하는 이유는 국공채 발행을 통해 민간에 통화를 공급하고 인플레이션 유도·유동성 함정으로 제약된 통화정책의 대체수단 증세를 피하는 우회수단으로 볼 수 있다.
대담한 양적완화와 기동적 재정정책은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담한 양적완화의 실제 내용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공채 발행인데, 결국은 정부의 재정부담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 뒤에 다시 다루겠지만, 일본의 재정부담 확대는 ‘경기부양’으로 인한 것보다 ‘고령화에 대한 정책실패’의 성격이 더 강하다)
장기 성장전략은 ‘3개의 화살’의 숫자를 맞추는 공자님 말씀 성격이 강하다. 기술력 강조, 미래산업 육성, 기업구조조정, 규제완화 등이 해당한다. 예컨대, 한국에서도 2015년 논란이 됐던 ‘원샷법’ 등이 해당한다.
4.
인구 고령화가 복지비 지출과 정부 재정에 미친 영향이다. 결론부터 말해, 일본 정부는 인구 고령화 대응에서 ‘정책 실패’를 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를 포함, 한국의 진보성향 정치세력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인구 고령화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책실패 핵심은 ‘미래는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경직성 복지를 과도하게 확대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세금은 덜 걷히고, 복지지출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상황이 발생했다.
먼저 조세수입을 살펴보자. 일본 정부의 1990년 조세수입은 60조 엔(한화 약 600조 원)이었다. 그런데, 거의 20년이 지난 2009년의 조세수입은 39조 엔(한화 약 390조 원)이다. 20년이 지났는데, 오히려 64%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복지비 지출을 보자. 복지비는 전체 세출의 32%를 차지한다. 정부지출의 증가로 늘어난 국채 잔고는 약 356조 엔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공공사업 증가액은 59조 엔이고, 사회보장관계비로 증가한 금액이 230조 엔이다.
늘어난 국채 356조 엔 중에서, 사회보장관계비 230조 엔과 덜 걷힌 조세수입 20조 엔을 합치면, 70%에 달한다. (230조 엔+20조 엔/356조 엔 = 70%)
여기서 일본의 고령화 속도와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 사회’라고 한다.
일본의 고령화는 1970년(7%), 1994년(14%), 2006년(20%)를 거쳤다. 일본의 경우, 고령화 사회 → 초고령사회까지 36년이 걸렸다. 한국은 2000년(7%), 2017년(14%), 2026(20%)가 예정되어 있다. 고령화 사회 → 초고령사회까지 26년이 예상된다.
일본경제는 1990년~1991년에 버블이 붕괴됐다. 버블은 붕괴되고, 성장률은 제로에 가깝고, 물가는 마이너스에서 맴돌았다. 그런데 고령화는 급속도로 진행됐다. 1994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었고, 2006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었다. 현재는 약 30%에 달한다.
버블붕괴, 물가하락, 성장률의 정체로 인해 추가되는 세입은 없는데, 고령화로 인한, 복지비의 과다한 설계가 경제 전체에 엄청난 하중(荷重)을 주게 됐다. 그 결과 정부 부채가 급증했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위험을 국가가 방치할 수는 없다. 문제는 세입-세출의 균형, 현세대-후세대의 균형, 공정과 효율의 균형을 동시에 달성하는지이다.
‘부담-복지’의 관계를 중심으로 복지국가를 구분하면, 저부담-저복지, 중부담-중복지, 고부담-고복지이다. 저부담-고복지 같은 것은 없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저부담-중복지 국가에 해당한다. 일본의 사회보장성 지출 비율은 23.1%로 OECD 평균 21.6%보다 약간 높다. 반면, 일본의 조세수입 비율은 28.6%로 OECD 평균 34.4%에 비해 6%포인트 낮다.
위의 그림을 보면, 일본은 추세선에 비해 위쪽에 존재한다. 세금은 OECD보다 적게 걷고, 복지는 OECD보다 많이 베풀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비의 재원조달 방 보니 재정적자 규모가 매우 크다. 세계 1위이다. 재정위기를 겪었던 그리스보다 심각하다. 아베노믹스의 대담한 양적완화와 기동적 재정정책>은 ‘증세 회피’에 대한 우회로(迂廻路) 성격이 짙다.
다섯째, 일본에서 ‘소비세 인상’이 민간소비와 경제성장률에 미친 영향도 매우 흥미롭다. 일본 소비세 역사를 정리해보면, 1989년 3% 도입, 1997년 5%로 인상, 2014년 8%로 인상, 2019년 10%로 인상(*최근)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소비세는 ‘부가가치세’이다. 모든 거래에 10%가 붙는다. 박정희 정부 시절, 1976년 7월부터 시행됐다. (※ 박정희의 부가세 도입은 이후 1979년 부마항쟁의 간접적 계기가 된다) 일본은 1989년에 처음으로 소비세를 도입했다. 1989년은 플라자 합의 이후, 거품경제의 전성기이며, ‘버블’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이때 도입된 소비세는 3%였다. 1990년대 초반 일본 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 50% 내외에 불과했다.
거품은 꺼지고, 성장률은 정체되고, 물가는 마이너스가 되고, 세금은 오히려 덜 걷히고, 고령화는 급속하게 진행됐다. 1997년, 2014년, 2019년에 걸쳐 ‘소비세 인상’을 시행했다. 아베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권은 ‘소비세 인상’과 함께 내각이 물러나야 했다. (한편으로, 그걸 알고서도 소비세를 인상하는 게 ‘일본 정치’의 저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소비세 인상 이후 민간소비와 경제성장률의 영향이었다. 아래 그림은 2013년 1월 아베노믹스 전후, 2014년 4월 소비세 인상(5%→8%) 전후 기간에 GDP 성장율의 변화를 보여준다.
2013년 3월~2014년 1월까지는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2차 양적완화가 시행된 시기이다. GDP 성장율이 0.2%에서 2.5% 수준으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GDP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푹 꺼지는 2014년 2월~2015년 1월까지는 소비세 인상 직전~직후 기간이다. 소비세 인상이 4분기에 걸쳐 민간소비 위축과 경제성장률 저하로 직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일본의 저부담-중복지 상황과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안할 때, 소비세 인상을 안 할 수는 없다. 증세·국채 발행·복지제도 합리적 재정비·노동시장 활성화를 동시에 하는 수밖에 없다.
5.
정부 부채 규모가 (2014년 기준) GDP 210% 수준이 넘을 정도로 과다함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왜 채무 불이행에 빠지지 않는 것일까? 혹은 그리스처럼 재정위기를 겪지 않는 것일까?
일본은 전체 예산의 23%를 이자 갚는 데 사용하고 있다. 세입의 37%를 국채발행으로 조달하고 있다. 핵심은 일본 정부에 대한 신뢰이다. 그럼, 사람들은 왜 일본 정부를 신뢰하는 것일까? 살펴볼 지점은 두 가지이다.
① 첫째, 일본통화 ‘엔’이 국제외환시장에서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엔(円)은 ‘위기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상승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2011년 동북 대지진, 2008년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쇼크, 2016년 중국의 증시 폭락, 2019년 8월 세계적인 주가 폭락 시기에도.
위의 그림은 미국 금융위기 전후(2007년~2009년) 시점에, 원화와 엔화의 변동을 보여준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상승하고, 엔화 환율은 오히려 하락한다. (다르게 말하면, 원화 가치는 하락하고, 엔화 가치는 상승한다) 왜 일본 엔화는 ‘안전자산’으로 취급받는가?
그 이유는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규모의 대외 순자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금융자산은 939조 엔이다. 한화로 약 9290조 원인데, 거의 1경 원 수준에 근접한다. 와우, 대단한 규모다. 일본의 총부채는 596조 원이다. 대외 순자산 규모가 총부채보다 더 많다.
대외순자산 중에서도 순 금융자산의 규모는 343조 엔이다. 약 3.5조 달러다. 일본은 3.5조 달러 규모의 순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반면 (2015년 기준) 중국은 2.3조 달러, 한국은 1,450억 달러의 순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② 둘째, 일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부채/자산 구조>와 관련이 있다. 일본 국채는 누가 보유하고 있을까?
위의 그림은 일본 국채 보유자 현황(2015년 9월)이다. 일본 국채는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28%·은행권 32%·보험 22%·연기금+공적연금 10%·해외 5% 등이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 보유 비율은 5%에 불과하다. 일본 은행의 보유가 많고, 나머지는 일본 내 금융기관인 것이다. 그리고 일본 내, 금융기관의 돈의 최종 출처는 일본 국민들의 저축에 기인한다.
위는 일본 금융자산의 구성(2015년)을 보여준다. 순자산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일본에서 순자산이 플러스인 집단은 가계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비금융 민간기업, 정부 모두 ‘마이너스’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해외 자산이 마이너스인 것은 해외 부문이 일본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일본이 대외 순 금융자산을 갖고 있다는 말과 같다.
6.
고이즈미와 아베에 의한, 재정정책과 양적완화의 실제 효과는 어땠을까? 일본에서 양적완화는 두 차례 실시된다. 1차 양적완화는 고이즈미 정권 시절에 실시된다. 2001년~2006년 기간이다. 2차 양적완화는 아베가 두 번째로 수상을 하게 된 2013년이다.
박상준 교수는 ‘아베 신조’에 관한 일본 국민들의 4가지 반응을 소개한다. 아베노믹스의 국민적 동의기반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P.125~P.127)
- 유형-①, 아베의 정치 처신도 싫고, 아베노믹스도 싫은 경우
- 유형-②, 아베의 정치 행보는 싫지만, 아베노믹스는 좋은 경우
- 유형-③, 정치-사회 이슈는 무관심, 아베노믹스는 기대하는 경우
- 유형-④,는 정치 이슈도, 경제 이슈도, 아베의 열렬한 지지자인 경우
박상준 교소가 소개하는 4가지 유형에 따르면, 결국 3/4종류의 사람들이 아베노믹스에 대해 긍정적 기대를 갖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일본에서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디플레와 싸우려는 대담한 시도 자체가 높이 평가받고, 청년 취업을 포함해서 고용 사정도 개선됐다.
양적완화는 결과적으로 통화량을 늘려 엔저 현상을 유도했고, 일본 제품의 수출에 큰 도움이 됐다. 수출 역량이 강한 일본의 대기업(+종사자들)이 특히 아베 노믹스의 혜택을 많이 봤다.
내가 더욱 놀랐던 것은 아베의 집념이다. 아베는 2006년에 수상을 했다. 그때는 온통 민족주의 이슈, 개헌 이슈에 집중했다. 그러나 아베는 1년 만에 실각하게 된다. 우여곡절을 거쳐 2012년에 2차 아베 내각을 꾸리게 된다. 6년의 기간 동안, 정치적 시련을 겪은 상태였다. 이때 아베는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은 자주적 개헌을 하려면, 국민들이 관심 있는 경제문제에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생각이 다른 우파 버전이지만, 아베는 막스 베버가 말했던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막스 베버가 말한 소명 개념의 본질은 자신이 너무너무 하고 싶은 단 한 가지(소명의 완수)를 위해, 나머지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절제, 타협, 양보하는 것이다.
아베는 자기가 하고 싶은 개헌을 위해, 일본 국민들이 가장 관심이 많은 경제문제에 대한 해법을 준비한 것이다. 그게 바로 아베노믹스이며, ‘3개의 화살’이다. 소명을 향한 집념, 한국 정치인들이 아베 신조에게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7.
일본의 디플레이션, 아베노믹스가 한국경제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두 가지를 꼽자면 고령화와 복지와 연동된, 재정적자 문제이다.
첫째, 고령화이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고령화는 그 자체로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변수가 아니다. 인구량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령화는 세금-복지비를 매개로 정부 재정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대 경제에서 ‘정부’는 이미 매우 비중 있는 경제주체이다. 고령화는 가족, 사회복지, 노동시장을 포함하는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비롯해서, 노후건강, 노후 돌봄(요양), 노후 커뮤니티를 포괄하는 이슈이다.
둘째, 복지와 연동된, 재정적자 문제이다. 박상준 교수는 한 챕터(5장-5)를 할애해서 한국의 정부 부채 한계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다. 판단의 기준점이 중요한데, 박상준 교수는 순자산의 주체와 규모를 꼽는다. 일본은 가계가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가계의 순 금융자산은 GDP의 250% 규모이다. 한국 가계의 순 금융자산은 GDP의 약 110% 규모이다.
2015년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모두 544조 원이다. 99%가 국채발행 채무다. 이중 한국은행 보유분은 3%에 불과하다. 일본은행 28%와 대비된다. 한국의 경우, 외국인 보유는 13%(63조 원) 규모이다. 박상준 교수는 정부의 신뢰도, 정부의 순 대외자산, 순 금융자산 등을 고려할 경우, 한국은 정부 부채가 GDP의 80~90%에 근접해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것으로 본다.
8.
마지막으로, 박상준 교수의 『불황터널』에서 아쉬웠던 점인데, 아베노믹스 2기에 대해서는 전혀 소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노믹스, 3개의 화살>은 1기와 2기로 구분된다. 2013년에 시작된 ‘3개의 화살’은 1기 아베노믹스이다. ①대담한 양적완화 ②기동적 재정정책 ③장기 성장전략이다. 2015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된 이후, 아베는 아베노믹스 2기 정책을 추가로 발표한다. 대표 구호는 ‘1억 총활약 사회’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3개의 화살’이 발표된다.
- 희망을 만드는 강한 경제
- 꿈을 잇는 육아 지원
- 안심과 연결되는 사회보장
이는 일본의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대책이며,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용이하도록 육 아지원을 강화하고,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 때문에 직장생활을 그만두는 사람들을 위해 양로시설의 대폭 확충을 발표한다. 약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이직을 없애겠다는 포부다.『불황터널』의 1쇄는 2016년 5월에 나왔다. 아베노믹스 2기는 2015년 9월에 발표됐다. 의지만 있었으면, 부분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베노믹스 1기는 주로 ‘거시경제학 이슈’를 포괄한다. 반면 아베노믹스 2기는 노동·보육·사회복지·노후 돌봄·노후소득 보장 정책에 해당한다. 경제 정책이라기보다는 노동-사회정책의 성격이 더 강하다.
박상준 교수가 경제학을 업으로 하기에 아베노믹스 1기를 소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노동-사회정책의 성격이 강한 아베노믹스 2기는 소개하는 것은 부담이 됐을 수 있다. 이해는 충분히 가지만, 아베노믹스 2기에 대해서도 한 챕터 정도로 소개해주면 더 좋았을 듯싶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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