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이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2021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로 선정됐다. 한국은 2014년~2019년까지 6년 연속 1위를 했다. 2020년에 독일이 1위를 하고, 2021년에 한국이 다시 1위를 탈환했다.
블룸버그 혁신지수는 주요 60개국을 대상으로 ▴R&D 집중도 ▴특허활동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성 ▴첨단기술 집중도 ▴교육 효율성 ▴연구집중도 등 7개 부문을 평가해 100점 척도로 매년 산출한다. 왜 한국은 ‘가장 혁신적인 나라’로 평가받게 됐을까?
예컨대 R&D 집중도와 특허, 제조업 부가가치, 첨단기술 집중도의 경우 한국 대기업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하이닉스, LG전자, 포스코 등이 한국의 R&D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한국 대기업의 R&D 투자는 ‘국제비교 자료’를 봐도 다른 나라에 비해 적극적이다. 한국의 R&D 투자 관련 국제비교 자료를 보면, 정부 차원에서도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높고, 민간 기업에서도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높다. 기업+정부를 합계한 ‘국가’의 R&D 역시 높을 수밖에 없다. 정부 R&D의 경우 상용화되지 않는 ‘장농 특허’도 많고 비효율성도 만만치 않다.
기업 분야 R&D는 가성비도 매우 높다. 그 이유는 한국의 제조업 분야 대기업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상황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적극적인 R&D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인당 GNI 기준으로 G7 국가인 이탈리아를 제쳤다. 인구와 1인당 GDP를 종합한 국가 GDP 기준으로는 러시아, 캐나다,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8위~10위권에 들어가게 됐다.
2.
최근 출판된 책에서는 이를 ‘추월의 시대’라는 말로 표현했다. 한국은 어떻게 하다가 선진국을 따라잡는, 추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한국 대기업과 기업가들의 역할이다. 한국 대기업 창업주들과 2세~3세들은 높은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다고 봐야 한다. 이병철, 정주영, 신격호, 구인회 같은 1세대는 물론이고, 이건희와 정몽구로 상징되는 2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즉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역사적 과정을 추적해보면,
- 첫째, 박정희가 주도한 기업의 대규모화 촉진 정책이 결정적으로 중요했고,
- 둘째, 1980년대 초반, 이건희-이병철이 삼성그룹 전체의 명운을 걸고 도전한 반도체 투자가 상징하듯, 혁신지향적 기업가 정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 셋째, 장기영·김정렴·오원철·김재익으로 상징되는 한국 관료들의 우수함이 종합적으로 작동했다.
크게 보아 한국의 정치권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대체로 혁신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구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현재 문재인 정부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IT 산업 활성화, 노무현 정부의 FTA 추진, 문재인 정부의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지원,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지원, 디지털 뉴딜이 모두 같은 맥락이다.
3.
한국 근현대사 150여 년은 식민지, 외세의 개입, 분단, 한국전쟁, 절대빈곤, 군사독재, 민주화의 시대를 살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3대 트라우마’를 간직하게 됐다. ①식민지 트라우마, ②북한-빨갱이 트라우마, ③군부독재 트라우마가 그것이다.
식민지 트라우마는 좌·우를 막론한 국민 모두의 공감대를 갖고 있고, 북한–빨갱이 트라우마는 보수·60대 이상 세대의 트라우마가 됐고, 군부독재 트라우마는 진보·86세대의 트라우마가 됐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는 외부를 향해서는 ‘증오’의 형태로 표출된다. 우리가 ‘증오의 정치’를 접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보수도, 진보도 다 열심히 살았다. 관료도, 기업인들도, 정치인들도 나름 다 열심히 살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처음 수립된 1948년부터 현재 2021년까지의 총 기간은 73년이다. 이 중에서 보수 정부가 59년을 집권했고, 진보 정부가 14년을 집권했다.
59년을 집권한 보수 정부가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거꾸로 14년을 집권한 진보 정부가 엉망진창으로 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업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한국 관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한국의 정치, 기업인, 관료가 아무 과오도 없고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벌은 여전히 개혁의 대상이고, 정치권도 혁신해야 하고, 관료체계도 혁신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한국은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보수·진보 정부를 가졌었고,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기업가들을 가졌었고,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관료 집단을 가진 나라이다. 물론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칼 슈미트가 잘 정리했듯, 샤츠 슈나이더가 잘 정리했듯, 정치는 ‘‘갈등축’을 매개로 하는 적과 동지의 구별’이 중요한 산업이다. 정치권이 전선을 긋고, 싸움을 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약간 거리를 두고 큰 시야로 볼 때 한국의 근현대사는, 한국의 20세기는 ‘트라우마의 역사’이기도 했지만 역경에 맞서 도전하고 하나씩 하나씩 성과를 만들어낸 ‘성취의 역사’이기도 하다. 박정희가 그랬고, 정주영-이병철-이건희가 그랬고, 김대중-노무현이 그랬다.
20세기를 살았던, 한평생 고생만 하시다 가신 우리 엄마를 포함해서 대한민국의 민족해방·근대화·산업화·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그들 모두의 열정, 눈물, 도전과 성취의 결과물이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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