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의 모든 일에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실상 대부분의 일은 얼마나 적절한 시스템을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회사에서의 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가 어떤 일을 꾸준히 해나가기 위해서도 자기만의 시스템, 루틴,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운동이든, 글쓰기든, 악기 연주든, 유튜브든, 그 밖의 어떤 일이든 무언가를 계속해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열정, 열의, 에너지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힘을 버티고 지탱해줄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흔히 공부에서는 자기만의 계획과 루틴이 중요하다는 데 대부분이 동의한다. 무작정 공부해서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로 ‘무작정’하기만 해서 특정 영역의 수험 공부를 잘 해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자기가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서 어떤 단계들을 달성시켜 나가는 것, 스스로를 반복되는 형식 속에 ‘집어넣는 것’이 공부 잘하기의 관건이기도 하다. 인생의 다른 일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
나는 무엇을 하든 자신의 에너지 자체는 너무 믿지 않는다. 나는 너무 잘 질리고, 너무 들쑥날쑥하며, 쉽게 권태와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에는 나의 에너지 기복과 무관하게 나를 ‘집어넣을’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한다. 글쓰기에 관하여 마감을 계속 만든다든지, SNS나 블로그 업로드 루틴을 만든다든지, 뉴스레터를 발행한다든지, 글쓰기 모임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계속 글을 쓸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에너지는 그에 맞추어 할 일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유연한” 시스템 만들기라는 생각도 든다. 너무 시스템적이기만 하면 지나치게 메말라진다. 유연할 여지가 없으면 그것대로의 어떤 매너리즘에 빠져든다. 마치 재미없는 로봇이나 기계가 되어버린 것처럼, 할 일을 반복적으로 하게 될 뿐이다. 그런 일은 스스로도 견딜 수 없는 데다, 에너지를 생성시키기 보다는 갉아먹게 된다. 그래서 시스템을 만들되 변수나 유연성을 집어넣을 구석을 만들어야 한다.
말하자면 나 자신이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해진 루틴 안에서 글을 쓰되,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는 여지를 둬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어떤 과목의 공부를 하되, 더 하고 싶은 다른 공부가 있다면 순서를 바꾸거나 조절할 여지를 둘 필요가 있다. 시스템에 복종하되 한편으로는 내 ‘에너지의 뉘앙스’에 따라 변형시킬 수 있는, 말하자면 아이언맨의 수트 비슷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유발 하라리 또한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가장 다른 점은 ‘유연한 협력’이라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이 인간의 문명 건설에서 핵심이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유연한 협력을 다시 말하면, 유연한 시스템이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서 그것은 인생 전체에 개입한다. 사랑과 다정함에도 형식이 필요하다. 인간관계에도 유연한 규칙이 필요하다. 내가 어떤 일을 꾸준히 해내는데도 계속 힘을 생성시켜줄 시스템이 필요하다. 병들지 않고 계속 자기중심을 잡아나가는 데도 인생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기도나 신앙, 주기적인 명상이 필요할 수 있다. 그 모든 게 시스템이다.
3.
삶은 내가 어떤 시스템들을 만들어 나가느냐로 정의된다. 나는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스템, 공부를 할 시스템, 글을 쓰는 시스템, 육아와 사랑을 할 수 있는 시스템,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 같은 것들을 만들며 살고자 하고 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나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내 상태에 따라 시스템을 조금씩 유연하게 변형시켜 가면서 몇 개의 톱니바퀴가 인생에서 잘 굴러가게 하는 것. 그게 거의 전부이기도 한 셈이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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