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느끼는 시대의 분위기가 있다. ‘가성비의 종말’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현상이다. 가성비 중심의 소비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 말해졌던 시대는 어느덧 저물고 있는 것 같다.
휴가를 위해 숙소를 검색하다 보면, 가격과 상관없이 가장 전망과 룸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숙소들이 먼저 사라진다. 대개는 비싼 숙소부터 예약이 일찍 찬다. 마지막에 남는 건 소위 ‘가성비 좋은 숙소’들이다. 샤넬 등 명품은 없어서 못 파는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중저가 브랜드들은 점점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대개 핫플레이스라는 곳들의 가격을 들여다보면, 한 끼에 일 인당 몇만 원은 족히 내야 하는 곳들이다. 무엇이든 싸고 가성비 좋은 것보다는, 오히려 비싼 것들이 더 인기가 많다.
비싼 것은 희귀하고 드문 경험을 준다고 여겨진다. 비싼 것들 앞에서, 비싼 것들과 함께, 비싼 것에 속하여 찍는 사진은 그래서 SNS에 올리기 좋은 것이 된다. 비싼 것이 남들과 나를 차별지어준다고 믿는 것이다.
가능하면 근사한 사진을 남겨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곳, 스스로가 전시품이 되기 좋은 값비싼 공간, 자기를 돋보이게 해줄 비싼 명품 등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도 커진 시대라는 게 체감된다. 실제로 청년 시절은 ‘가난한 시절’이라는 상식과 무관하게도, 청년 세대의 값비싼 소비에 대한 비중은 부쩍 늘었다고 한다. 다들 값비싼 경험 하나를 갈망하며, 그런 경험은 반드시 SNS에의 전시를 동반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과거보다 더 ‘부자’가 되었다는 건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더 이상 돈을 아껴서 모은다는 개념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의 소비랄 것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전시할 일 없고, 남들에게 보여줄 일 없는 시간은 적당한 소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이 시대 소비사회의 핵심적인 부분이 아니다. 일상이나 생활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다 핵심은 어느덧 삶의 기분이나 기쁨에서 핵심이 된 ‘플렉스’ 문화이다. 싸게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우는 있어도, 더 이상 기쁨을 주지 않는다. 가성비를 따져 싸게 얻는 것은 더 이상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돈을 아껴서 모은다, 가성비 좋은 소비를 하여 저축을 한다, 적게 쓴 것이 자랑이고 부러움이다, 이런 관념들이 몰락해가는 것은 우리 시대의 ‘도박 정신’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청년 세대는 더 이상 코인이나 주식이 아니면 자신에게 희망이 없다고 믿는다. 부동산 폭등으로, 근로 소득의 가치는 바닥을 기게 되었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쫓아갈 수 없는 벽이 삶에 들어섰다는 걸 안다. 연봉 1억씩 받아서 매년 5천만원씩 저축해도 서울의 저가 아파트 하나를 사려면 20년이 걸린다. 아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건 환상에 가깝다고 믿게 된 것이다.
차라리 그보다는 당장에라도 자기가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의 전시 경험을 얻고 싶어 하는 게 이 시대의 정신이 되었다. 그러면 적어도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얻고, 잠시나마 자신감을 회복하며, 자기 삶도 남들의 삶 못지않은 화려함에 속한다고 믿을 수 있다. 차라리 그런 경험들을 좇는 게 낫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저 환상이고 이미지일 뿐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이 ‘가성비 시대’의 몰락이라는 것은 점점 더 환상밖에 남지 않아가는 시대의 한 단면이기도 한 셈이다. 가성비가 현실이라면, 화려한 소비는 그것을 덮는 환상이다. 그래서 우리 시대를 ‘환각의 시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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