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써야 더 중요해지는 거야.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였다. 조가 자매들의 삶을 다룬 소설을 출간하면서 당대에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라고, 별 볼 일 없는 것이라고 비하하자 그녀의 여동생 에이미가 말해주는 대사다. 계속 쓰면 그것이 중요한 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영화 전체에서 이 말 만큼 공감한 말이 없었다.
영화에서의 맥락은 그 시대의 문단에서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이야기에 대해, 계속 쓰면 중요한 이야기가 된다는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삶 전체에 적용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계속하면 그것은 세상에도, 나에게도 중요한 것이 된다.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면 그것이 곧 중요한 것이 된다. 반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중요해지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자기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도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 사람들, 그리하여 세상에서도 중요한 것을 한다고 받아들여지고, 스스로도 중요한 사람이 된 사람들을 보면 거의 예외가 없다. 나는 그들이 내 곁에 있던 때를 잘 기억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별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너무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게 아닌지, 뭐하러 그런 걸 하는지, 그럴 바에야 세상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어떨지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던 사람들은 이제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옆에서 뭐라 하든 자신이 계속 하던 것들을 중요하고도 소중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대략 이십여 년쯤 주위 사람들을 지켜보다 보니, 그만큼 명료한 진실도 없다고 느끼게 된다.
조도 처음에는 당대 문단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편집장이 잘 팔린다고 말하는 글을 썼다. 그것이 ‘자기의 진짜 글’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러나 여동생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자기가 꼭 써야만 한다고 믿는 그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 곁에 조가 있다면, 나 또한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계속 그 이야기를 쓰라고, 그녀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면 좋겠다고 말이다.
무언가를 계속 해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이기는 것은 ‘계속한 사람’이다. 남는 것도 ‘계속한 사람’ 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헛수고 그만해, 더 온당한 길을 찾아가, 그는 이제 슬럼프에 빠졌어, 그의 가치는 다했어, 그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아, 그는 망가지고 있어.
그런 말들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할 시간이 삶에는 있다고 믿는다.
사실 삶에는 정답이 없어서, 주변의 조언이나 평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도 있다. 자기 고집이나 망상에 빠져 있을 때라면 현실적인 조언들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때때로 중요한 것은 그런 말들과 싸우는 곳에서만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무엇이 망상과 자기 고립에 빠지는 과정인가? 그걸 구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역시 계속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진심으로 지지해주는 몇몇 사람들의 손끝에 의지하여 계속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대개 계속한 것은 시대를 뒤바꿀 만큼 엄청난 무엇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그 속에서 내 삶을 증명하는 고유한 무언가만큼은 남긴다고 믿는다.
가치는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역시, 내가 만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내려 마시는 커피가, 매일 저녁마다 나서는 아이와의 산책이, 매일 밤마다 읽었던 성경의 몇 줄이, 매일 새벽 녹음했던 몇 분의 녹음이, 매일 썼던 몇 장의 글들이, 매일 사진 찍었던 집 앞의 담벼락이, 매일 뛰었던 강가가 대체할 수 없는 어떤 고유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역시 계속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는 빛과 같은 것이다.
계속하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삶의 어떤 계단이 있다. 삶이란 그 계단을 오름으로써 자기의 것이 되고 신비로운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