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화의 방법이란 사실 들어주기의 방법이라 믿고 있다. 좋은 대화가 들어주기와 말하기로 이루어진다면, 대략 80% 정도는 들어주기의 지분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얼마나 좋은 말을 해줄지는 대화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얼마나 상대의 말을 잘 들어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좋은 대화의 경험이라는 것도, 대개는 상대로부터 얼마나 대단한 말을 들었느냐보다도 자기 스스로 얼마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느냐에 따라 좌우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 ‘들어주기’라는 것이 무조건 상대가 말만 하고, 나는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건 아닌 듯하다. 그보다 어떤 적극적인 제스처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략 ‘들어주기’란 공감, 질문, 침묵 정도로 이루어져 있지 않나 싶다.
세상에는 분명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잘 들어준다는 것은 가만히 잘 참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상대로부터 진솔한 이야기, 진심, 상대가 정말 하고 싶은 어떤 말들을 이끌어낸다는 뜻인 것이다. 그리고 보통 그런 들어주기에 익숙한 사람은, 들어주는 일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
공감은 그냥 ‘맞아, 그래’만 반복하는 것보다도, 상대의 심정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대개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진짜 심정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이 분노하는지, 슬픈지, 아픈지, 기쁜지, 즐거운지 미리 다 알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럴 때 상대의 마음이랄 것을 잘 들여다보고 ‘그래서 참 슬펐겠구나’ ‘되게 화가 났겠다’ ‘정말 기뻤겠다’라고 적극적으로 파악해서 상대의 감정을 지적해주면, 상대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고 공감받았다고 느끼곤 한다.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일이란 사실 상대가 스스로의 감정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질문은 상대가 가지고 있는 방어기제를 무너뜨리면서 상대가 말하게 한다. 대개 우리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누구도 나의 이런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내가 말해봐야 지루하기만 하고 타박만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지점들이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말을 하다가도, 그만두고 멈추기 마련이다.
들어주고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일이란, 그렇게 상대가 멈춘 지점을 알아채고 그에 관해 물어보는 것이다. 그저 몇 가지 질문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달한다. 물론 나의 질문이 무례가 될 위험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에 닿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은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무례에 대한 사과만으로 그를 용서하고, 다시 사랑한다.
침묵은 대개 내가 쓸데없는 말들을 자제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쓸데없다는 것은 주로 알량한 자존심, 혹은 상대에게 우월감을 드러내고 싶은 순간이나 자만심 같은 것에 뿌리내리고 있는 말들이다. 그런 말들은 상대의 말을 틀어막는 차단벽과 같다. 상대와 마주 앉아 있는 목적이 적어도 나의 우월감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대화나 좋은 관계라면, 무엇이 그에 기여하는지 기억해야 한다.
대개 내가 당신보다 잘났고 나를 우러러 봐주길 원하고, 나의 잘남이 어떠냐 같은 마인드는 대화보다는 경쟁·과시·전시의 마인드이다. 이런 마인드는 대개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는 게 나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주로 글쓰기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일이 있을 때는 가능하면 들어주고, 서로에게 좋은 대화를 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굳이 할 필요 없는 말들을 많이 걸러내고 가능하면 상대의 말이 내게 무척 가치 있는 것이라 믿으면서, 상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실제로 대화 자체가 즐거워진다. 내가 이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간다는 그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좋은 대화란 그런 것이라 믿고 있다. 또한 좋은 대화란, 곧 좋은 관계와 다르지 않고 말이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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