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며 :
2021년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읽은 가장 “별로인 책”이다. 그는 과학자도 저널리스트도 아니다. 그냥, 어느 한 쪽을 강하게 부정하고 다른 한 쪽을 강력히 지지해서 이득을 얻는 장사꾼이다. 이 책 모두가 헛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동의할 수 있는 주장도 있고 생각은 다르나 합리적 접근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악의가 가득 찬 극우 PC즘을 느낄 수 있었다.
2. Not bad point
지구는 둥글다. 다만, 근현대 문명의 수혜를 크게 입은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갈린다. 제국주의 시대 혹은 1,2차 세계대전 전후 식민지를 보유했던 국가와 식민 지배를 당했던 국가로 갈리기도 한다. 전자는 아주 잘 먹고 잘살고, 후자는 못 먹고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위태롭다.
그런데, 갑자기 전 지구를 약탈해왔던 선진국들이 기후변화를 외치고 탈석탄을 중심으로 탈 화석연료를 주장하고 값비싸고 비효율적인(저자 주장) 태양광, 풍력을 설치하자고 말한다. 많은 후진국, 개발도상국은 석탄은커녕 아직 숯, 나무 중심의 바이오매스에 의존하고 있는데… 꿈과 같은 석탄을 쓰는 일을 죄악으로 여긴다.
사실, 토지 이용과 에너지 효율 그리고 기후 및 환경을 생각하면 전통적인 바이오매스에서 벗어나 석탄을 활용한 전기를 쓰는 게 이롭다.
후진국의 상황은 혼돈이다. 그러나 사람의 열망은 비슷하다. 더럽고 위험한 삶의 환경에서 탈피하는 일. 말끔한 옷을 입고 내 집과 이웃, 길거리의 청결함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국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 상황에서 지구를 엉망진창으로 망친 국가들에서 나오는 기후 논의는 불편하다.
일단, 후진국을 먹고살 만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일부 환경주의자들이 죄악시하는 대형 인프라는 악이 아닌 미덕이다. 어떤 곳은 석탄 발전소가 (환경적으로도) 필요하고 어떤 곳은 수력 댐의 건설이 필요하다. 송전, 배전 등 대형 인프라가 가져다주는 혜택이야말로 에너지 접근성과 보편성을 확대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주의를 표방하고 자연에서 나오는 것을 아주 적은 가공을 거쳐 사용하면 환경적인 것이라 생각하지만 ‘플라스틱’이 코끼리의 상아를 대체하면서 오히려 코끼리의 목숨을 지켰다. 고래 역시 그렇다. 그린피스가 고래 보호를 열심히 한 덕분 같지만 결국, 인류가 더 효율적인 에너지원인 석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오히려 지구를 보호한다.(물론, 이 지점에서도 플라스틱 사용이 너무나 과도한 것은 아주 큰 문제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지만)
그리고, 환경주의자, 특히 기후 종말론을 외치는 사람들의 과장은 지나친 면이 있다. 기후위기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멸망하는 것은 아니다. 2050년 거주불능 지구와 같은 과장은 오히려 현실 세계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던지면서 공감보다는 짜증과 ‘어쩌라고’식의 태도를 불러 일으킨다. 환경주의자들은 기후 위기를 거듭 외치는데 저자는 이는 과장되었으며 2도, 3도 넘어도 문제는 생기겠지만 그렇게 극심한 절망적인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3. Too bad point
책 뒷면을 가득 채운 찬사들. 정말 유명인들이다. 문제는 기후나 에너지 전문가보다 그냥 다른 업계의 유명인들이 다수다. 똑똑하다고 알려진 사람들,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사람들의 명성을 책팔이에 이용하겠다는 의도다. 그리고 목차를 보면 이 책의 목표가 선명히 보인다. 에너지 관련 서적은 거의 읽지 않고, 이 책만 읽고 결론을 내린다면 정말 ‘바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환경주의자들이 싫다. 그들을 저격하겠다. 아, 참. 환경주의자들, 특히 행동주의자들이 핵 발전을 싫어하는데 지구를 구할 기술은 원자력 발전밖에 없다. 원전이 최고란 말이다. 태양광과 풍력?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토지나 왕창 차지하고 자원 광물 소비도 극심하며 새들도 죽이고 중금속도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편향된 사람들이 무진장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겠다는 생각과 깊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정치인이 의도를 가지고 쓴 책보다 더 허술하고 편향적이며 사실에 기반해 있지 않다. 참고 문헌이 정말 많은데, 인용이 객관성을 확보하는 게 아니다. 일부의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자신의 논지에 맞는 것만 골라서 쭉 늘어놓는다. 학문적인 책을 표방했으나 지적 성실성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냥, 어떻게 하면 똥 같은 소리를 그럴싸하게 할 수 있을까를 이 책을 보면서 크게, 자주 한숨 쉬면서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기후변화의 위험을 강조하는 일을 넘어 지나친 과장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과장이 오류가 되고 오류가 거짓이 돼서 발생하는 부작용 역시 크기 때문이다.
2050년, 기후변화 위기가 3도를 넘어 4도~5도가 되었을 때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극한적 위기가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 지역은 극심한 피해를 입으나 그렇지 않는 곳도 존재할 것이다. 다만 식량 위기와 대규모 난민 발생, 정치적 갈등 심화는 하나로 연결된 세계에 큰 충격을 줄 것이다.
이 책은 일단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환경주의’와 기후변화 운동의 최선두에 서있는 운동가들을 까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들을 ‘순수성’은 없으며 자본과 정치, 자기 모순으로 가득한 세력으로 폄하한다. 기후변화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역시 과장되었으며 유일한 대응책은 아주 풍부한 원자력 에너지밖에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에너지 산업의 역사와 기술, 시장에 대한 기반 지식과 기후변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나름의 의미 있는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조금은 있다. 그러나 수 년 전 읽은 리처드 뮬러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보다 훨씬 더 나간 기분이다. 뮬러의 책도 미래를 이야기할 때, ‘단정 짓는’ 어투로 이미 사실과 어긋난 책이 되어서 대통령이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 돼버렸는데… 이 책은 양서만을 읽어야 하는 정책가와 정치인들에게는 독이 될 책이다. 전문가 그룹에서 극우PC즘을 탐색하는 차원과 환경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자성하는 수단으로는 의미가 있다.
물론,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도 에너지를 포함한 기본 인프라가 필요하며, 소득과 산업이 발전하며 전통적인 바이오매스(숯과 나무)와 석탄을 지나쳐 가스, 수력의 활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일부의 친환경 추구가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수용할 지점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는 완전히 비효율적이고 말이 안 되는(비상식적인) 수단이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수단으로 원자력만을 강조하는 일에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기술 – 사회 – 시장 – 정책(정치)이라는 4개 축에서의 균형으로 나타나는 결과를 부인하고 특정 기술의 특장점만을 취사선택하는 일이다.
4. 소결
이 책을 읽지 마라. 필자 같은 에너지 잉여나 읽으면 되는 책이다. 이 책 한 권 들고 어디 가서 아는 척은 절대 하지 마라. 해로운 책이다. 다만, 정책 단위를 논의하고 다양한 의견들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논의의 도구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저자에게 한마디 한다면, “당신이나 착각하지 말아라.”
덧 1.
이 책의 저자는 “핵무기 역시 평화를 위해서 개발되었고, 전쟁 억제라는 훌륭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수차례 강조한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원자력 발전은 최고라는 주장을 외친다. 블룸버그가 제시한 ‘레드 시나리오’보다 더 극적인 미래를 지향하는 셈이다.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방식으로는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무엇이든 과한 주장의 끝은 허풍과 거짓으로 귀결되기에 십상이다. 이 책은 원자력 산업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득보다는 실이 될 것 같다. 실제로, 원자력 산업 초기 지나친 기대와 낙관은 궁극적으로 산업이 위기에 빠지게 되었을 때 큰 걸림돌이 되었다.
덧 2.
어떤 에너지원이든 신성시할 필요는 없다. 설령, 절대적인 무언가로 추앙받은 시절이 있었을지라도 언제든지 상황은 변화할 수 있다. 현실주의자로 이 책을 보면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결국, 원자력 이상론자가 쓴 책이고 현재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원자력 업계 옹호자이자 컨설턴트로 고객을 위해 큰 똥을 싼 셈이다. 현재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하나에 얽매일 때 오히려 다른 것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폄하하게 된다. 이 현상은 ‘지식의 저주’ 혹은 ‘현상 유지 편향’이라 볼 수 있는데, 이 책의 저자도 동일한 실수를 저지른다. 개인적으로 100% 재생에너지 세계를 외치는 스탠포드의 제이콥슨 교수를 전문가보다는 운동가로 본다. 이 저자는 원자력 측면에서 제이콥슨 교수와 비슷한 위치에 서 있는 느낌이다. 물론, 근거는 더 어설프고 태도는 더욱 불량하다.
원문: 김선교의 페이스북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