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과 탄생, 죽음과 멸망과 같은 반대되는 개념들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늘 현재를 살아간다. 지난가을 초입쯤 불어온 서늘해진 바람, 꽃향기, 계절의 변화, 높아진 하늘이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게 했다. 나 자신의 발전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부단히 치열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의 끝이 갑자기 찾아온다면 어떨까? 이 세상이 과연 천년만년 계속될 수 있을까?
‘마음이 잔칫집에 머무는 자보다 상갓집에 머무는 자가 지혜롭다’는 말처럼 죽음과 끝을 숙고하는 것은 깊은 깨달음을 얻게 한다. 하지만 ‘죽음’보다 막연하고 감조차 잡히지 않는 것이 ‘세상의 끝(모든 것의 멸망)’이다. 적어도 내 삶이 끝나기 전까지는, 또한 내 자식의 자식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믿기에 생각해볼 여력이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가 대부분이다.
다행인지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며 언젠가는 세상의 끝이 올 거라는 말을 들어왔고 ‘세상의 끝’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 적이 꽤 있다. 상상 속에는 공허함, 메마름, 삭막함, 무(無), 칠흑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무시무시한 슬픔과 공포를 넘어선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만약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때가 정말 언젠가 찾아온다면, 우리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장기적’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고작 몇 년에서 몇십 년 후의 일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가 얼마나 길지, 대체로 어떤 형태를 띨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현재 주어진 시간의 흐름대로 몸을 내맡기고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또한 우리의 잠재력을 실현할 방법, 감수해야 할(혹은 제거해야 할) 위험, 발달시켜야 할(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기술을 모른 채 인류에게 해가 될 위험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나는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로 질문을 던지고, 다른 관점을 생각해보게 하고, 사고의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책은 정말 훌륭한 책이라 생각한다. 토비 오드의 책 『사피엔스의 멸망』은 단순히 우리 주변의 삶과 죽음뿐 아니라 세대를 초월하는 전 지구적 공동체의 삶으로의 사유를 확장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생소한 개념과 용어들에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다짐 없이는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지금껏 거론된 ‘세상의 종말’에 관한 많은 음모론도 떠올리며 과연 지구의 멸망이 가능한 일인가 상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인류가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대비와 인류 잠재력에 대한 희망을 논한다는 점에서 마지막까지 완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인류 미래 전체를 위협하는 위험에 무관심한 것은 신중함이 부족해서이다. 지금 세대의 이익을 후세대의 이익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인내심이 부족해서이다. 미래의 중요성을 아는데도 미래를 지키는 일을 우선시하지 않는 것은 자기규율에 실패해서이다. 우리가 뒷걸음질에 치혀 미래를 포기하거나 미래를 무가치한 것으로 단정한다면 희망과 끈기가 부족하고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감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 토비 오드, 『사피엔스의 멸망』
우리들의 눈부신 기술 혁명이 과연 인류에게 유익만 가져다주었을까? 지금의 기후변화, 전 세계적 전염병의 창궐 같은 현상을 과연 지구 멸망의 징조로 고려할 수 있을까? 한정된 지구의 자원과 공공재를 앞으로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세상의 끝’을 생각해볼 때 우리가 가져야 할 희망과 끈기는 어떤 것일까? 우리는 어떤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인류를 위한 공동선에 참여할 수 있을까?
위험 정량화
위험에 대한 대비에는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의 종류를 파악하고, 파악된 위험들의 상대적 크기나 중요성 등을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다른 위험의 크기를 숫자로 엄격히 나타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위험의 상대적 크기나 일어날 확률을 따져보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대비하고 노력할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필요하다.
위의 제시된 표에 의하면 자연적 위험의 확률보다는 인공적 위험의 확률이 월등히 높다. 100년 안에 인공적 위험으로 인해 재앙이 인류를 습격할 전반적 확률이 6분의 1이라니 놀라우면서도 섬뜩하다. 특히 저자는 앞으로의 ‘주요 위험의 그림 5가지’로 핵전쟁, 기후변화, 기타 환경피해, 인공적 전염병, 비정렬 인공지능을 꼽는다.
1. 핵전쟁
단 한 번의 핵폭발이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다. 특히 수소폭탄은 폭발 시 태양 가운데(섭씨 1,500만 도)보다도 온도가 높아질 수 있어서 이로 인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생성해 낸다고 한다. 핵전쟁의 심각한 결과는 폭발로 인한 거대한 연기 기둥이 솟아오르며 그을음이 성층권까지 올라가며 시작된다. 이로 인해 태양광이 차단되고, 지구의 온도와 습도를 낮추고, 세상이 캄캄해져 전 세계 식물들이 자라지 않아 모든 인류가 기아에 허덕이는 핵겨울이 지속된다.
핵 개발로 인해 인류의 파괴력은 막강해졌지만 이에 대한 대비는 불완전하다. 핵전쟁의 전략적 판세의 변화와 소비에트 연방 붕괴, 새로운 강대국의 대비구도 형성 등의 정치적 변화는 불안정한 상태로 지속된다. 기술이나 사람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 핵전쟁이 발발할 뻔한, 어처구니없는 일촉즉발의 순간도 많았다.
2. 기후변화
산업혁명의 결과는 우리에게 눈부신 기술의 진보와 편리함을 선사해주었지만 서서히 지구를 망가뜨리는 지구 온난화라는 결과물을 동시에 남겼다. 지구 기후는 섭씨 약 1도 상승했고, 해수면은 23cm상승했으며, 해양 산성도는 0.1pH 강해졌다. 많은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온실효과는 이미 이상기후로써 여기저기서 관측된다.
극단적인 기후 가능성인 탈주 온실효과가 나타나면 기온이 상승된 대기에 수증기를 머금은 따듯한 공기가 많아지고 강력한 온실가스인 수증기로 인해 또다시 대기 온도가 상승한다. 또한 습한 온실효과로 대기 온도가 상승해도 바닷물이 끓지 않아 상승된 온도를 낮추지 못하는 현상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지구온난화로 인해 빠른 속도로 융해 중인 북극 영구동토층의 빙하에는 지금껏 인류가 배출한 탄소의 2배 이상이 응축되어 있다. 빙하는 태양광을 반사해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빙하가 녹는다면 이 또한 대기 온도를 높이는 주범이 된다.
지구온난화 자체가 인류 절멸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지만, 기온상승이 또 다른 기온상승을 야기하기에 피해는 심각할 수 있다. 또한 높은 기온은 생물 다양성을 크게 해쳐 생태계를 붕괴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3. 기타 환경 피해
인구과잉, 주요자원고갈, 생물 다양성 손실 등이 기타 환경적 위험으로 꼽힌다. 하지만 전 세계적 추세인 핵가족화로 인해 1960년 이후부터 줄곧 인구는 급감했다. 또한 대표적인 자원인 물 부족의 문제의 대부분은 불공평한 배분에서 비롯되며, 화석연료, 광물자원 등이 없이도 인류 문명은 유지될 수 있다. 생태계의 생물 다양성이 붕괴했을 때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은 실제로 불분명하다.
4. 인공적 전염병
우리의 행동이 전염병 가능성을 높이고 그 피해를 증폭해 위험을 악화한다는 점에서 전염병은 인공적 위험으로 간주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코로나 팬데믹의 주범은 자연과 야생서식지까지 침범하며 꾸준히 활동무대를 확장해 생태계의 균형을 위협하는 인간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근원지는 우한의 화난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판매된 인간이 포식한 야생동물로 추정된다.
또한 1924년에 캘리포니아에서 대유행한 페스트는 쥐와 같은 설치류에 사는 벼룩(매개숙주)을 통해 전염되는데, 지금까지도 꾸준한 페스트 감염자가 보고된다. 평소 페스트균은 숲에 사는 설치류, 기후, 벼룩을 옮기는 매개체에 의해 일정하게 보존되며 그 사이에서 생태학적인 균형을 이룬다. 그런데 급작스러운 강수량 증가처럼 균형이 깨질 만한 기후변화나 설치류 개체 수 증가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 페스트균은 다른 동물로 퍼져 전염성과 병독성을 드러낸다.
바이러스는 예전부터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점점 더 심각한 사태로 유행하는 바이러스 대유행병은 욕심와 이기심으로 생태계를 위협하는 인간에게 보내는 자연의 경고이다.
5. 비정렬 인공지능
지난 10년간 인간의 뇌 구조와 비슷한 인공신경망을 본뜬 머신러닝, 딥러닝의 발전은 인공지능 분야의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현재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다음 세기에 개발될 가능성은 약 2분의 1로 추정된다. 우리의 미래를 상속받는 것은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모든 일을 노동자보다 능숙하면서도 낮은 비용으로 해낼 수 있을 시기에 대한 예상은 2061년까지 50%, 2025년까지 10%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벌써 적잖은 직업을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현상이 관찰된다. 이는 다만 먼 이야기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인공지능 연구를 당장 규제할 필요는 없지만 무작위적 개발보다는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의 알맞은 용도에 활용할 수 있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간만이 지닌 복잡하고 미묘한 가치를 인공지능에게 빼앗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위험 대비책
위험의 불안정한 상태를 일컫는 상태위험은 자연위험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소행성과 혜성 충돌, 슈퍼 화산 폭발, 초신성 폭발, 감마선 노출 위험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상태위험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 새로운 기술 및 사회제도로 전환하면서 일어나는 전환위험이다. 여기에는 혁신적인 범용 인공지능의 개발과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문명으로 전환하며 나타나는 기후변화 등이 포함된다.
이는 전반적인 기술 진보를 서두르는 것이 비합리적임을 암시한다. 존재 안보를 이루면서도 누적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전체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실현할 최고의 방법은 상태위험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속도를 높이면서, 가장 큰 전환위험을 극복할 선견지명, 신중함,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다.
- 앞의 책
‘인류 미래 수호’라는 원대한 질문과 주제 속에서 과연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내 직업에서 인류 수호(존재 위험 해결)를 위한 일을 찾아보다가 지금 내 분야에서 영향력이 크지도 않고 내 몫의 일을 하기에 급급한 초라한 내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보니, 내년 과제로 개발할 헬스 케어 기기의 콘셉트에 이러한 개념을 도입하면 좋을 것 같았다. 잘 진행되어 개발과 양산까지 갈 경우 인류와 자연을 연결하는 가치관이 반영되어 보급과 함께 작은 영향이나마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내가 쓰는 소셜미디어의 글이나 논문 등은 내가 없더라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읽히고, 누군가의 사고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 사람들에게 내 글이 인용되고 전해졌을 때 부끄럽지 않은, 지구를 보호하고 인류의 공동선을 촉구하는 가치관이 담긴 유익한 글을 남겨야겠다. 그러기 위해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부단히 더 공부하고 경험하고 숙고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나는 ‘정알못’이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치, 국제 정세임에도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앞으로는 인류 수호와 관련된 문제들을 주시하면서 관련 정보도 소홀하지 않아 현명하고, 책임감 있으며,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무엇보다 대중교통 이용하기, 짧은 거리는 걷기, 음식 쓰레기 줄이기, 일회용 비닐과 종이컵 사용 줄이기 등 절약하는 사소한 습관들을 몸에 배게끔 해야겠다. 한정된 자원을 지금 내가 낭비한다면 이후에 어떤 무시무시한 대가가 기다릴지 생각하며 경각심을 잃지 않아야겠다.
위협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취한 행동이 무척 유용할 때가 있다. 따라서 조기 행동은 레버리지 효과가 크지만 허사가 될 가능성도 크다. 강력하지만 정확도는 떨어진다. 우리가 위협이 다가오기 훨씬 전에 행동할 계획이라면 근시안적 시각을 경계하며 레버리지 효과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 앞의 책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근시안적인 좁은 시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전 세계 사람, 우리 이전과 이후의 모든 세대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오늘 아침 식사를 데우기 위해 사용한 전자레인지, 출근길에 이용한 전철과 버스, 종일 사용하는 노트북, 입은 옷, 하다못해 정수기에서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물까지 우리가 누리는 모든 건 기술적 진보를 이루기 위한 많은 사람의 노력이 담겼다.
우리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많은 지식이 담긴 책과 정보 또한 이전 세대가 계승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공유하며 발전시켜나간다. 우리의 삶은 그저 이루어진 게 하나도 없으며 내가 누리는 모든 것에 많은 사람의 노력과 피땀이 담겨 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구성원의 일환으로 살아가며 인류를 위한 어떤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가?
우리는 미래의 윤곽만 알뿐 실체는 거의 모른다. 미래의 실체는 후손들이 만들어갈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위험 시대를 통과해 벼랑세를 헤쳐나가 안전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이다. 그리해 자손들에게 그들의 미래를 기록할 수 있도록 역사의 페이지를 선사하는 것이다.
- 앞의 책
『사피엔스의 멸망』으로부터 내가 얻은 강력한 메시지는 인류는 벼랑 끝에 서있다는 ‘경고’와, 그럼에도 우리가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고 신중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면 벼랑 끝을 벗어나 지구와 공존하고 인류에게 유익한 선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과 소명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분명 인류 수호를 위한 어벤져스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잠재력뿐 아니라 인류의 잠재력도 꽃피울 힘이 있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깊고 넓은 시각과 품어야 할 용기, 지속해야 할 끈기의 방향과 이유를 부여한다. 우리의 지혜로운 생각과 용기 있는 움직임이 인류 수호라는 원대하고 찬란한 폭풍을 일으킬 작은 날갯짓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원문: Dandelion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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