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윤석열 후보가 경북 유세에서 매우 자극적인 발언들을 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해 “좌익 혁명 이론과 북한 주체사상 이론을 배운” 집단이며, “국가와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이번 주 발표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를 5~10% 앞서고 있다. 발표 조사의 약 1/3은 ‘오차 범위를 넘어’ 이재명 후보가 앞서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10월 10일 선출되고, 윤석열 후보는 11월 5일 선출됐다. 윤석열 후보가 선출된 지 약 60일 정도 됐다. 그간 윤석열 캠프가 했던 일들을 복기해보자.
- 김종인, 김한길, 김병준을 동시에 영입했고, 김종인은 이후 사퇴했다. 김종인 사퇴 뉴스가 2주간 도배됐다.
- 그 뒤 또 2주간은 이준석의 1차 사퇴 파동이 터졌다.
- 12월 3일 금요일, 울산 합의가 이뤄졌다. 티격 태격하던 4주간 약 10%의 지지율이 빠졌다.
- 12월 20일 월요일. 윤석열 캠프는 신지예를 영입했다.
- 12월 21일 화요일. 이준석은 조수진 최고위원과 티격태격 싸우다가 선대위원장과 홍보위원장을 사퇴했다. (*이준석의 2차 사퇴 파동)
- 12월 26일 일요일. 삼프로TV에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나란히 출연했다.
- 여러 종류의 실언들이 있었다. 가장 압권은 대학생 강연에서 “여러분들의 미래에는 앱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발언이었다.
- 12월 28일 수요일. 윤석열은 경북에서 ‘좌익혁명과 주체사상’을 언급하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공격했다.
2.
위에서 언급한 1~8번의 사건 중에서 내가 가장 황당했던 것은 신지예 영입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황당한 사건은 이준석의 2차 사퇴 파동이었다. 신지예 영입은 민주당으로 비유하자면, ‘2030 남성표’를 받겠다고 일베 영입을 한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경우, 민주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지예 영입은 김한길이 주도했다. 윤석열이 김한길에게 힘을 실어줬다. 김한길은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선거 경험이 많고, 나름 ‘전략통’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한길은 ‘슈퍼 울트라, 이재명 후보 선거운동’을 해준 셈이다.
윤석열 캠프의 신지예 영입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윤석열 캠프의 핵심 의사결정권자들이 자신들의 지지자가 누구인지, 이번 대선에서 ‘스윙보터’가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알더라도 매우 피상적으로, 느낌적 느낌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준석의 경우, 1차 사퇴 파동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었다. 정치인이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방법 중 하나는 ‘가장 쎈 놈’과 싸우는 것이다. 윤석열 자신이 대표적인 경우다. 윤석열이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 한 일이라고는 ‘쎈 사람’ 6명과 싸운게 전부다. ①국정원장 원세훈 ②박근혜 구속 ③이명박 구속 ④조국 전 법무부 장관 ⑤문재인 대통령 ⑥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윤석열은 ‘실언의 왕’이라는게 들통났지만, ‘쎈 사람 6명’과 싸운 업적으로 국힘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다. 이준석의 1차 사퇴파동은 ‘쎈 사람 6명과 싸운, 바로 그 윤석열’과 싸운 것이다. 국힘의 경우, 당규를 통해 ‘대선후보의 당무 우선권’이 규정되어 있다. 대선 후보가 당무를 장악하는 것은 당헌 당규에 입각한 매우 합법적인 행위였다.
오히려 당 대표 권한을 내세우는 이준석 주장이 무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준석은 ‘2030세대 유권자의 대표 정치인’이라는 정치적 상징자본을 무기로 싸움을 걸었다. 윤석열의 지지율을 떨어뜨렸지만, ‘자기 정치’ 관점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준석의 2차 사퇴 파동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정치권에서 통용되는 “싸움의 법칙”중에는 ‘자기보다 쎈 놈이랑 싸우고, 자기보다 급이 낮은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 라는 게 있다. 조수진 최고위원이 누구인지 아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 이준석은 국민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조수진 최고위원과 티격태격 싸우더니, 어느 날 자기를 비난하는 조수진 최고위원의 홍보물을 핑계로 사퇴 예고를 하고, 실제로 사퇴해버렸다.
이준석은 어떤 요구 사항을 갖고 사퇴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지 혼자 ‘그냥’ 사퇴했다. 최근 이준석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마치 본인의 사퇴가 윤석열 후보의 캠페인 기조 변경 요구 때문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사후적인 명분 만들기에 불과하다.
당 대표라는 사람이, 바로 며칠 전에 사퇴 파동을 통해 대선 후보와 정치적 합의까지 했던 사람이, 불과 2주일도 안돼서 정말이지 하찮은 일을 핑계로 2차 사퇴를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3.
12월 28일 수요일, 경북 유세에서 좌익 혁명 이론과 북한 주체사상을 들먹이는 윤석열의 “빨간 색깔 가득한” 발언들은 오히려 지지율의 추가 하락으로 귀결될 것이다. 대구-경북의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탄핵을 적극 찬성했던 37세 청년 이준석을 당 대표로 밀어줬다. 박근혜를 감옥 보냈던 윤석열을 대선후보로 밀어줬다.
그 이유는 그들이 ‘탄핵 찬성 유권자에게도 어필하는, 중도 확장’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의 ‘빨간 색깔 발언’은 이러한 보수 유권자들의 바람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윤석열 캠프는 보수 결집을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수의 추가 이탈로 귀결될 것이다.
윤석열 캠프는 왜 ‘자폭’하고 있을까? 얼핏 윤석열 본인이 ‘정치 초보’여서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윤석열 캠프의 자폭 과정은 다중 주체에 의한, 집합적 행위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후보 개인’은 실수할 수 있다. 미숙할 수 있다. 그런 결함을 커버해주는 것이 집단적, 주체로서의 캠프이다. 캠프는 집단적, 집합적 주체로 봐야 한다.
정치, 담론 생태계 관점에서 볼 때, 윤석열 캠프 및 한국의 보수세력은 새로운 유권자 집단이었던 2030 세대에 대한 분석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어떤 특성, 어떤 니즈(Needs)를 갖고 있고, 그들 사이의 갈등 축은 무엇이었는지 전혀 파악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 지형, 지지층의 스펙트럼 파악, 스윙 보터의 실체와 욕망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캠프의 핵심’이 알아야 하는 ABC같은 것이다. 캠프도, 후보도, 당 조직도, 당 연구소도,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 언론도 이에 대해 심도 있게, 객관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고, 내부 컨센선스 형성 작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 대표인 이준석은 비단 주머니 따위의 허세나 부리며, 정작 ‘당 대표’가 수행해야 할 ‘대선 전략에 필요한, 인프라 작업’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4.
한국 정치에서 대선을 앞둔 63일이면 꽤 긴 기간이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대선의 판세가 결정됐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현재까지 파악된 것들이 있다. 캠프의 캠페인 역량 관점에서 볼 때, 국힘 당 조직과 보수의 담론 생태계가 매우 허약해졌다는 점이다. ‘새로운 변화’에 매우 둔감하고, 새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회는 변한다. 경제 환경도 변하고, 정치 상황도 변한다. 새로운 유권자가 출현하고, 유권자 지형도, 정치적 갈등 축도 변화한다.
진보/보수를 떠나,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국민의힘은 국민의힘대로, 항상 새로운 변화를 분석하고 공부해야 한다. 새로운 변화에 재적응하고, 선도하는 역량을 키우지 않는다면, 금방 패배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재명 후보의 역전과 안철수의 10% 돌파에는 신지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윤석열 캠프에 합류했던 신지예는 지난 3일 사퇴했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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