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부모뿐 아니라 2030 세대도 오은영 박사에 열광한다. 나 또한 ‘금쪽같은 내새끼’의 애청자다. 누군가는 자식을 키워보지도 않는 네가 웬 육아 프로그램이냐고 묻기도 했지만, 자식 없는 나나 내 또래는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위로받고 부모의 마음도 이해하게 된다고 하니 오은영 박사는 단순히 육아 코칭이 아닌 마음코칭을 하고 계신 듯하다.
오은영 박사는 미운 짓만 골라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익숙지 않거나 사랑이 고픈 아이, 그런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밉기도 하다는 부모 혹은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에게는 늘 부족하다는 죄책감을 가진 부모의 마음에 공감하고 어루만져준다.
“아이는 왜 이렇게 하는 걸까요?”
먼저 오은영 박사는 다른 패널들은 경악하기도 하는 아이의 별난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며 부모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이가 왜 이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세요?
아이는 왜 이렇게 하는 걸까요?
엄마는 아이가 이렇게 하는 이유를 아세요?
단순히 아이의 행동만 보는 게 아니라,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아이에게 빙의해 아이의 마음을 읽어낸다. 우리는 단순히 행동만 보며 아이를 탓하다가도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듣고 나며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된다.
아직 어린아이는 어른처럼 이성적이고 성숙하게 자신의 상황이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언어가 서툴러서, 감정표현이 서툴러서 혹은 부모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서 아이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때로는 과격하게 혹은 잘못된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런 행동이 부모에게도 자신에게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떤 아이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에게 벌주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오은영 박사는 아이들의 행동을 단순히 옳고 그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정당하다고 공감해주며 다만 어떻게 사회적으로 옳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도와준다.
마음이 불안해서 본인 혹은 엄마의 신체를 만지는 아이가 불안할 때는, 그와 비슷한 다른 물건을 만지며 불안함을 달랠 수 있도록 한다. 언어나 감정표현이 서툴러서 엄마에게 폭력적으로 구는 아이는 절대 폭력적인 성향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들이 좀 더 부드럽고 편한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
사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건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속상한 마음, 화나는 마음을 어른스럽게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다른 방식으로 괴롭히며 내 감정을 알아주길 원했다. 내 마음을 솔직한 말로 상대에게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때로 말없이 꾹 참다가 혼자 상대의 마음을 곡해하거나 나의 서운함을 증폭해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 때가 있다.
나 속상해. 나 서운해. 나 슬펐어. 나 아팠어. 나 화났어.
솔직하게 말하고 나면 조금은 풀릴 마음을, 그저 나도 제대로 못 알아챌 만큼 깊은 곳에 숨겨둔다. 그러다 갑자기 기분 상할 포인트가 딱 건드려지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터지고 만다. 마치 별것도 아닌 일에 울며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렇게 터진 감정으로 나도 상대방도 슬프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혼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는 쌓이고 쌓여서 터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내 마음을 내가 먼저 꺼내본다. 그리고 상대에게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한다. 내가 너의 이런 행동이나 말로 기분이 상했다고. 감정표현에 서툰 내 마음속의 금쪽이가 오은영 박사의 금쪽 처방으로 변하는 걸 보면 오 박사님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안에 감정표현이 서툰 금쪽이들을 모두 변화시켜주고 계신다.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부모에게도
오은영 박사님은 아이에게 불안을 주거나 결핍을 느끼게 하는 부모의 양육하는 방법을 지적하며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부모의 어린 시절을 물어본다. 단순히 지적만으로 우리는 쉽게 바뀌지 못한다. 그렇게 행동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나의 행동을 이해하고 고쳐나갈 수 있다.
엄마에게 물어볼게요.엄마에게 어떤 일이 있었죠?
아빠의 어린 시절은 어땠죠?
부모에게도 어린 시절 상처(결핍)를 잊지 못하는 내면아이가 있다는 것을 위로해준다. ‘사랑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아빠는 사랑하는 딸에게 자신의 마음처럼 사랑을 표현하기 어려워한다. 아이에게 사랑 표현하는 걸 어색해하던 엄마에게는 자신을 사랑하기는커녕 원망만 하던 아버지가 있었다. 자식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게 서툰 엄마와 아빠에게 오은영 박사님은 그들의 어린 시절 금쪽이를 보듬어준다.
네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괜찮아.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어. 너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란다.
내가 엄마의 이모가 되어줄게요! 힘들 땐 은영 이모한테 기대요.
이제는 커버린 어른도 어린 시절 자신의 결핍을 보듬어주는 말에 눈물을 터뜨린다. 자신조차 보듬어주지 못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부모가 되어서야 꺼내 보며 다독인다. 나의 금쪽같은 내면아이를 마주하며 위로할 때 나의 결핍은 나에게서 끝이 날 수 있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보살필 때 나의 결핍이 아이에게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오 박사는 자신의 결핍으로 아이에게도 불안과 결핍을 준다며 미안해하는 부모를 위로한다. 인간은 모두 완벽하지 않다고. 여기까지 나와서 아이를 위해 배우려고, 바뀌려고 하시는 그 용기라면 지금의 난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괜찮다고 위로해주신다.
요즘은 이렇게 육아를 할 때 부모가 책도 보고 맘카페에서 공부도 하고 육아 프로그램도 보면서 부모의 자세를, 아이의 마음을 공부한다. 하지만 1980–1990년대 혹은 더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네 부모님, 조부모님들은 먹고살기에 치여 자신의 마음도 아이의 마음을 돌봐줄 여유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사랑을 받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육아 속에서 각자 크고 작은 결핍을 가지고 살아간다.
또한, 나의 결핍을 보며 부모의 결핍도 바라보게 된다. 나의 부모 또한 그들의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 표현을 받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의 부모도 부모로부터 받은 결핍, 다독이지 못한 내면아이로 인해 아직도 자라지 못한 마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상처를 주게 됐을 거라 생각하고 보면 부모를 좀 더 인간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고 나의 내면아이를 돌보며 노력하여 나로부터 그 결핍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오 박사님의 위로는 이제는 부모가 될 금쪽이들을 위로해준다.
우리 모두의 ‘내면아이’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만큼 자식은 부모를 보고 그대로 배우기에 흔히 자식의 잘못은 모두 부모의 영향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성인군자처럼 정말 참고 참으며 양육하지만 엇나가기만 하는 금쪽이를 보면서 부모는 또 자신이 참기만 해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닌지 모든 걸 자신의 잘못으로 돌린다.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금쪽이를 보며 어찌할 바 모르는 부모에게 오 박사는 말한다.
자녀의 문제가 모두 부모의 잘못만은 아니에요. 부모가 잘못한 게 없음에도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환경적 요인으로 예민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아이의 기질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춰 양육하긴 쉽지 않죠. 이제 이 아이의 기질을 알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이렇게 변하시면 되는 거예요.
이는 자식의 문제를 자신의 잘못으로 죄책감을 가지며 고뇌하던 수많은 부모에게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어준다. 그리고 나와 다른 기질을 가진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솔루션을 준다. 아이의 잘못도 부모님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부모도 내가 경험해 온 기준으로 아이를 바라보니 나와 정반대의 기질의 아이가 버거울 수 있고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와 다른 아이의 기질을 알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예민한 금쪽이의 입장에서 나의 예민한 구석이나 못난 구석은 모두 부모를 탓하며 원망하곤 했다. ‘엄마가 이래서 나는 이런 상처가 있어. 이런 성향은 아빠에게 물려받은 게 분명해!’ 이렇게 자식인 나의 문제를 모두 부모의 잘못으로 돌리며 원망의 화살을 던지곤 했다.
되돌아보면 부모와 나는 다른 기질을 가졌기에 내가 느낀 감정을 부모가 전부 알아채고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자식도 부모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에 서로의 기질을 알지 못하고 상처를 받았던 우리의 관계를 조금은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오 박사님은 상처를 가진 금쪽이를 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신다. 아이의 마음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해하는 그녀의 공감만으로도, 우리는 미성숙하고 옹졸하게만 느껴졌던 우리의 내면아이를 위로받는다. 어른스럽지 못하고 못났다고 생각했던 내 내면아이가 이제야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진다. 이렇게 매주 ‘금쪽같은 내새끼’에서 울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며 하나씩 부모와 자식의 마음을 배워나간다.
원문: 작은버섯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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