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6세가 되는 날부터 나는 책 육아를 시작했다. 그전에도 물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긴 했지만 ‘책 육아’라는 테마를 가지고 진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책 육아를 시작한 지 만 1년 반이 되어가는 지금, 돌이켜보니 ‘책 육아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는 어떤 아이가 되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책 육아를 하면 좋은 이유
1년 반 동안 다독을 하면서 아이가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보니 아래 8가지 장점이 나에게 느껴졌다. 처음엔 책을 많이 읽으면 무작정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더 구체화해보니 엄마인 나 자신에게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다.
1. 아이의 판단력을 길러준다.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히면 상황 판단력이 길러진다. 가령 아이에게 탈무드 그림동화를 읽혀주었을 때 처음에는 ‘마지막 결말이 어떻게 됐을까?’라고 물어보면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든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던 아이가 이젠 정답에 가까운 결말을 대답하기도 하고 그 이유까지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책에 나오는 여러 스토리와 상황을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상황 판단력이 길러졌다는 생각이 든다.
2. 듣는 힘을 길러준다.
책을 많이 읽어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꾸 말이 빨라지는 경향이 생긴다. 때로는 ‘아이가 지금 속도를 따라오며 내용을 이해할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책 한 권을 읽어준 후 책 내용에 대해 몇 가지를 아이에게 물었더니 놀랍게도 아이가 다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많이, 오래 듣다 보니 엄마가 빨리 읽어줘도 그 내용을 다 담아내는 능력이 길러진 것이다.
자꾸 듣다 보니까 듣는 힘이 길러져서 영어책도 빨리 읽어줘도 내용을 이해했다. 듣는 힘은 대화의 기초이며 사회성의 기본이다. 나중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선생님의 수업을 45분씩 듣고 있어야 하는데, 듣는 힘이 길러진다는 것은 정말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3. 아이의 취향을 구체화해준다.
아이가 모든 책을 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읽어주는 사람인 나 역시도 어떤 책은 재미있는데, 어떤 책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책이 있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책을 많이 읽어주다 보니 서서히 아이의 취향도 구체적으로 확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가지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물론 취향이란 나중에 바뀌기도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가는 경험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 인생사의 기본이 되는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게 해준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 책도 정말 종류가 많다. 어렸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책 풍토를 접하고 문화충격을 받았을 정도다. 전래동화, 명작동화가 거의 전부였던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창작 동화, 수학 동화, 과학 동화, 인성 동화, 역사 동화, 지식 동화, 직업 동화 등 정말 다양한 영역의 동화책이 출간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줄수록 아이 머릿속에 다양한 기초 지식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나위 없는 사실로 믿는다.
5. 아이의 감수성을 길러준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감동을 줄 만한 순간이 얼마나 될까? 밥 먹이고 입히고 놀게 하고 재우는 일과 중에서 아이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할만한 순간은 몇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책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와 감동의 포인트들이 있다.
준이는 유머러스하고 코믹한 내용을 좋아하는 편인데,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할 때도 반응을 보인다. 아무리 어려도 ‘감동의 코드’는 유효한 것 같다. 감동적으로 느낀 책을 자꾸 읽어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자기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감동)이 아이에게 기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일 것이다.
6. 집중력을 길러준다.
아이가 다독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 책을 들음을 뜻한다. 오랜 시간 한자리에 앉아 한 가지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이에게 집중력을 길러줄 수 있다. 열 권 이상을 읽어주려면 적어도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준이는 한 자리에서 책 열 권 정도는 한 번에 읽는다. 학교에 들어가서 지루할지도 모르는 수업시간을 견디게 만들어 주는 기초 체력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다독이 힘일 것이다.
7. 어휘와 표현력을 길러준다.
아이가 6세가 되고부터 책을 많이 읽혀서인지 부쩍 사용하는 어휘가 풍부해졌다. 5세 때만 하더라도 수동형과 피동형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말한다거나 자기가 아는 단어 내에서 동사를 갖다 붙여서 말도 안 되게 비문을 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확실히 비문을 말하는 정도가 확 줄었다. 어려운 한자 어휘 같은 표현을 가끔 쓰기도 한다.
또 책에서 새롭게 접한 어휘를 별다른 설명 없이 금세 받아들이고 적용하기도 한다. 내용의 흐름을 통해서 새로운 어휘의 쓰임을 바로 캐치하고 받아들여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아이의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혀주는 것이 정말 중요함을 체감하고 있다.
8. 책 허기증이 생긴다.
다독에 완전히 적응한 아이는 어느 순간 다독을 좋아하게 되고 즐기게 된다. 다독이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되고, 생활이 되면 아이는 일정 분량의 책을 읽지 않는 날에는 잠들지 못할 정도로 책 읽기의 노예가 된다.
가령 준이는 매일 10권의 책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가 되었는데, 잠들기 직전까지 7권 가량의 책을 읽었다면 3권을 마저 채우고야 마음 편히 잠이 들 수 있다. 5권 정도 읽어준 후 재우려고 하면 ‘아직 책 많이 못 읽었잖아요’ 하면서 5권 읽은 책의 양을 부족해 한다.
이런 책 허기증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좋은 정서적 허기증이다. 항상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된다면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현명하고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연령별 차근차근 책 육아
스테이앳홈 책 육아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책 육아’라고 하면 아이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수십권을 읽히거나, 커리큘럼대로 착착 다독을 하는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렇게 하면 엄마와 아이 모두 초기에 지쳐 나가떨어질 수 있다.
엄마가 3권만 읽어도 목이 아픈데, 아이가 조른다고 10권씩 무리해서 읽어주게 된다면 3–4일 후에는 엄마 쪽에서 책을 쳐다보기도 싫게 될 것이다. 반면 아이는 2권으로 충분한데 엄마가 10권씩 읽어주려고 강요하면 아이가 오히려 책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엄마가 읽어줄 수 있는 만큼,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조절해서 진행하는 것이 좋다.
아이에게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엄마를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이며, 마음을 열고 좋아하는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기 때문에 아이는 진정한 기쁨을 느낀다. 그림책은 부모와 자녀를 단단히 묶어주는 고리가 된다.
1) 0–1세
보는 것이 곧 듣는 것을 뜻하는 4–7세와 달리 0–1세의 영유아들에게는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조금 분리될 수 있다. 아직 언어발달이 덜 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이 무얼 뜻하는지 책 속에서 시각정보를 완벽하게 찾아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만 12개월까지의 아이들에게는 ‘책’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나 ‘카드’를 보여주는 것이 책 읽기이며, 스토리텔링은 책과 별개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한 장에 그림 하나만 달랑 그려져 있는, ‘그림 카드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 수준의 아기 그림책을 보여준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짚어가며, 그 그림이 무엇인지 부모가 직접 이야기해주면 좋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책은 사물의 형태나 개념을 인지하고 기본적인 단어를 습득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스토리텔링을 원한다면 한 장에 한 문장 이상이 적혀 있지 않은 짧은 것을 고르는 것이 좋으며,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이 등장하는 책을 고르면 된다.
2) 1–3세
책을 싫어하지 않는 1–3세 아기라면 책을 직접 자기가 손에 들고 만져보려고 할 것이다. 이 시기에는 아이의 소근육 조절력이 온전치 않아서 책을 구기거나 찢는 등의 사건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때문에 얇은 종이로 된 책보다는 두꺼운 하드보드로 된 보드 북을 이용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좋다.
의성어, 의태어가 자주 등장하는 간단한 책이나 영아용 창작 동화, 기본 생활습관 동화를 읽어주는 것이 좋으며 장수는 20쪽을 넘기지 않는 분량으로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책 읽기의 목표는 ‘즐거움’이란 감정을 선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주인공이 나와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중심의 단순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
3) 4–5세
엄마로서 조금 욕심을 내도 좋은 나이다. 초기 단계의 수학 동화나 과학 동화, 인성 동화 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아이들이 많다. 책 읽기를 좋아하게 만들고 습관을 잡아주기에 좋은 시기다. 독후활동을 진행해도 아이가 기쁘게 받아들이며, 지식적인 부분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연령에 맞는 창작동화를 많이 읽어줄수록 좋고, 책=이야기라는 개념을 심어주면 좋다. 4–5세 아이들에게는 한 페이지에 4–5줄 가량의 글밥이 적당하며 30페이지를 넘지 않는 책을 고르도록 한다.
4) 6–7세
아이들에게 스토리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아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면 좋다. 아이들의 사회성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책들도 소화할 수 있다. 동물보다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더라도 의인화해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림의 경우 상황이 설명되는 그림이 좋다. 지식 그림책과 인성 동화, 창작 동화, 전래 동화 등을 골고루 읽혀도 좋으며, 한글을 뗀 아이들이라면 스스로 하루에 한 권씩 소리 내어 읽어보게 하는 ‘음독’ 경험이 뇌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5) 초등 저학년
초등 저학년은 유아 시절의 모습을 일부 보인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 없는 과도기로 직관적으로 사고하며,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다. 하지만 싫증도 금방 느끼고 집중력도 오래가지 못한다.
유아기는 감정적이고 자기표현이 강한 데 비해 이 시기는 감정을 잘 흡수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눈치가 발달하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빨리 파악하며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민감하다. 때문에 교사나 부모의 지시를 잘 듣는 시기라서 독서 지도를 할 경우 큰 효과가 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히되 음독을 하면 눈, 입, 뇌가 함께 움직여서 뇌 발달에 매우 좋은 영향을 준다. 아이가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점검해보는 독후 질문을 해봐도 좋으며,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언어를 발달시켜나갈 수 있다.
6) 초등 고학년
눈으로 묵독하며 빠른 속도로 독해를 해나갈 수 있는 시기로, 지식과 정보 위주의 독서와 분석적 독서가 가능한 시기다. 독서가 학습의 도구가 될 수도 있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폭넒게 읽으면 좋다. 읽기와 함께 쓰기 지도도 함께 병행되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지적인 호기심이 많고 흥미의 범위도 넓어져 논리적 사고가 발달한다. 독서의 개인차가 매우 커지는 시기이며 정서적 과도기라 다소 복잡한 성향을 보인다. 모험심과 탐구심이 발달하기 때문에 사실적 이야기를 즐기고, 책을 읽은 후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적는 행위에 적응한다. 독서회 활동이 매우 도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