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최근에 느끼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소외’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의 따돌림이라든지, 부적응하고 혼자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 남들과 잘 섞이지 못해 겉돌던 기억 같은 걸 가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유년기나 초등학생 어느 학년 때, 누군가는 청소년기에, 누군가는 대학 시절이나 직장, 혹은 종교 공동체나 스터디에서 그런 경험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소외의 기억’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소외당한 경험을 이야기하기 부끄러워한다.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고, 스스로에 대한 감점이고 결점이고 치부여서, 가능하면 숨겨야 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런 것들은 겪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람들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깊이 듣다 보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소외감, 박탈감, 겉도는 기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을 거치며 만나왔던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학급 친구들, 직장 동료들, 또 그만큼이나 많이 속해왔던 여러 집단들, 학교, 학원, 동호회, 직장 등에서 항상 완벽하게 적응했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이라는 걸 갖고 있으므로 세상 모든 집단에 어울릴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에게 어울리는 집단이 있다. 그런 집단을 평생 찾아 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소외의 기억’을 감추어야만 하는 것도 일종의 집단주의적 문화의 이면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군대처럼 운영되어 왔던 학교, 집단에 적응하는 게 가장 뛰어난 능력이라는 관점, 비적응자에 대한 처벌이나 경멸이 우리 사회에 오래 자리 잡아 왔다. 집단에 대한 복종, 어떤 집단이든 가리지 않고 잘 적응하는 능력, 어디에서나 예스맨이 되어야만 살아남는 세상이라는 것은 사실 일제 강점기나 다를 바 없는 시대 문화인 셈이다.
그래서 세상이 나아지는 방향이 하나 있다면, 누구나 소외의 기억과 경험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부적응의 경험을 겪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것, 그 사실로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수치스러워할 필요 없다는 것. 그런 상식이 통용되는 세상이 되어가면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은 더 다정한 사람들이 되어서 더 다정한 세계에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느끼는 소외감과 부적응의 감각은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누구나 도움받아야만 하고, 또 도와주어야만 한다는 사실. 그런 도움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런 사실이 명패처럼 박혀 있는 세상이야말로 더 진실한 사회인 것이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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