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과 자산 격차로 여러모로 희비가 엇갈리는 시절이다. 누군가는 아파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억울하거나 화가 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삶에 의욕도 없어지고, 하루하루 벌어 모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탄하기도 한다. 이제 막 취직하고 삶을 시작하는 청년들의 경우에는 패배주의나 냉소주의가 디폴트처럼 깔려 있기도 하다.
나도 별반 다를 게 없지만, 그럴 때는 대개 두 가지를 생각한다. 하나는 삶이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이 절대적인 사회에서 몇억, 몇십억의 자산 격차는 갑갑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삶을 완전히 결정하는 건 아니다.
특히 삶이란 도대체 알 수 없는 것이어서, 향후 몇십 년 동안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모른다.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몰락할 수도 있고, 한심해 보이던 사람이 크게 성공할 수도 있다.
인생이라는 게 그토록 극적인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인지, 이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해 어느 정도 그냥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러니 그저 오늘의 무사함에 겸허하게 감사할 줄 알고,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려고 한다.
당장은 내 소유의 부동산이 없다는 게 인생의 좌절이나 실패처럼 느껴지더라도, 그런 사실 하나로 인상을 확정 짓는 건 스스로에게 다소 오만한 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래가 없다’는 느낌을 ‘미래는 알 수 없다’로 바꾸는 게 아마 더 진실에 가깝고, 삶을 더 온전히 살아내는 방향에 가까울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관한 생각이다. 가령 자산이 10억 있다고 해서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글쓰기 실력이라는 건 돈만으로 가질 수 없다. 독서를 통해 얻는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력 또한 돈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거기에는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 의지가 필요하다.
고전을 탐독하고 그로부터 얻는 삶의 기준, 자기만의 태도, 세상을 느끼고 성찰하는 방식 같은 것은 아파트가 수십 채 있어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내가 살아낸 삶이 그 시간으로만 증명하고 얻을 수 있다.
오늘 행복을 누리는 방식도 그렇다. 세상에는 많은 돈이 줄 수 있는 행복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돈 많은 사람이 포르쉐를 타고 골프를 치러 가서 얻는 행복의 시간과,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바다로 달려가서 종일 게를 잡는 행복의 시간은 사실 동일한 시간이다.
나는 후자 쪽에 더 ‘가치’를 둔다.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그 시간에 누릴 수 없다고 믿는, 그런 것들을 해보려 한다. 그럼 나는 나의 가치 있는 행복으로 나의 시간을 채우게 되고, 거기에는 다른 비교의식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물론 자산이라는 건 삶에서 얻을 필요도 있고, 돈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일은 삶에 필요하다. 또한 이토록 극심해진 자산 격차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니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타인과의 비교의식이나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삶을 무너뜨리는 것에 대한 방패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낀다.
세상 때문에 내가 불행해지고, 좌절하고, 냉소에 빠진다면, 세상이 나쁜 것과는 별개로 삶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 삶을 보호하고, 나를 지켜줄 방패가 필요하다. 그것이 내 삶을 무엇보다도 견고하게 해준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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