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타짜〉가 레트로 붐을 타고 유행 중이다. 10번도 넘게 본 영화지만 다시 봤다.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했다.
나는 돈만 받으면 돼.
극 중 너구리의 대사다. 하지만 너구리는 자신의 뱉은 말이 결코 자신의 직업의식의 전부가 아님을 증명했다. 평경장 죽음의 비밀을 함구하는 장면, 고니에게 받은 돈을 다시 돌려주려는 장면 등은 오히려 그의 투철한 직업의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결코 그는 돈만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 일에 관한 나름의 기준이 필요하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절대 명제에 가깝다. 얼마나 많이 버는지, 어디서 그렇게 많이 벌 수 있는지, 많이 벌기 위해 어떤 기회를 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지 계속 고민한다.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고민에 가깝다. 거기에 너무나 많은 의도를 갖고, 심지어 ‘요행’을 바란다는 것이 문제다. 결론은 ‘돈만’ 벌기 위해 일한다.
1. 일의 가치를 ‘돈’에 의해서만 판단한다
별 뜻 없이 일을 시작했다. 학교는 마쳤고, 다음의 선택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나이가 든 만큼 써야 할 돈이 많았고, 그래서 돈을 버는 것에 가치를 두고 일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더 많은 돈을 주는 일을 택했다. 문제는 돈 이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는 일을 직접 하면서부터다.
이제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연봉이 아니면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다. 일=돈이라는 메커니즘에 빠져서 가치 여부를 판단할 때도 돈에 의한 결정을 한다. 일이 모두 돈으로 보이며, 돈 되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한 수면 아래의 노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2. 연봉이 몸값이라고 생각한다
일하며 받는 값어치가 능력에 비해 적정한지 아닌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더 많이 받는가에 관심이 더 크다. 자연스럽게 무엇에 의해 연봉을 높였는지에 관한 관심사 덕분에 이것저것 남들 따라서 배우기 바쁘다.
사람은 곧 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대표(리더)가 된 이후에, 자연스럽게 ‘사람은 곧 비용’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떻게 하면 사람을 줄여 비용을 줄일까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것 때문에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3. 일을 잘하는 사람이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같은 일을 하지만 나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이들과 비교를 한다. 순수한 연봉의 비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과정까지 감안한 논리 및 합리적 비교가 아니라, 그냥 마음속 비교에 불과하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으니 더 많은 연봉을 받겠거니 생각하고, 그와 비슷해지기 위해 ‘경험의 양 늘리기’에 최선을 다한다.
운이 따르면, 자기중심 및 주관이 확실하면 좋은 방향에 의한 적절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쓸데없는 것을 많이 가지게 되어, 할 줄 아는 것은 많지만 잘하는 것은 거의 없는 가제트 같은 타입의 인재가 될 수도 있다.
4. 일하는 수준과 내용은 연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직 좋은 직장에만 눈이 쏠려있다.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 직장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내 가치가 올라갔다고 착각한다. 당연히 업계 최고의 회사이면, 그에 따른 낙수효과를 기대한다. 그때부터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고, 어떤 감투를 쓸 것인지만 관심이 높다.
무임승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해서든지 남들을 이용해, 나의 가치를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심지어 직책이 있는 자리에 있을 경우, 아랫사람의 공을 편취하는 요령이 늘어 ‘(사람) 관리력’만 비대해진다.
5. 커리어를 쌓는다고 착각한다
일을 하면서 경험이 쌓이고, 일정 수준의 경력으로 인정받고, 회사를 옮기며, 자연스럽게 연봉도 상승한다. 이런 현상의 본질은 더 높은 연봉을 좇아 회사를 옮긴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높은 가치를 가진 일로 바꾸었다고 착각한다. 자신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커리어는 더 높은 수준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통해 이전보다 더 높아진 연봉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도가 반영된 미래가 아니면, 대부분 달콤한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당연히 영원할 수 없다.
6. 금세 연봉 절벽에 도달한다
연봉을 좇아 2–3년 또는 1년 이내로 이직하다가 어느덧 현 경력 및 실력 대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만난다. 마치 학습 곡선처럼 지지부진한 구간을 만날 수밖에 없다. 무한대로 연봉이 오르는 직종은 세상에 없다. (잘되는) 사업을 맡은 대표이사 말고는 말이다.
대표도 해당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즈니스가 무한정 잘되는 것을 절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하물며 자기 일의 결정권이 더욱 제한된 직장인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
7. 씀씀이가 헤퍼지거나 쪼잔해진다
연봉의 성장(수입의 제한) 길이 막혔으니 막막할 따름이다. 당장 써야 할 돈부터 앞으로 써야 하는 미래의 돈까지 계산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럼 방향은 두 가지다. 자린고비가 되거나, 아님 이제부터 ‘탕진잼’이다. 물론 전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전체적으로 삶의 만족도가 하락한다. 그만큼 일로부터 받을 스트레스가 가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니, 삶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이제부터 삶에 만족이란 거의 없다. 불만투성이다.
8. 일하는 재미가 없다
눈에 보이는 연봉 성장이 멈췄으니 일할 맛이 나질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지 일의 양과 질을 향상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막막하고,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술술 풀릴 수가 없다.
일하는 시간이 괴롭다.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결국 ‘하던 대로’의 방법론에서 벗어나지 못해 ‘효율’을 최우선 가치로 놓고,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만’ 하려고 한다. 결과가 좋을 수 없다.
9. 일로부터 나오는 각종 불만을 연봉으로 귀결시킨다
낮은 연봉 때문에 일을 이렇게밖에 할 수 없고, 옆자리 동료도, 팀원도, 모두 무능력해 보인다. “그 정도 받으니 그거밖에 못 하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우리가 일 못하는 게 어디 연봉 탓인가, 그냥 우리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잘하도록 누구도 돕지 않는다.
그 결과로 회사가 (원하는 수준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고, 우리 연봉이 금세 동결되는 것이다. 마치 더 높은 연봉을 주면 지금처럼 일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어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얼마나 될까? 의구심이 든다.
10. 언제든 일을 그만두려고 준비한다
일을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회사를 향한 인정도, 이전에 받던 남들로부터 받던 인정도 없다. 회사 다닐 맛을 잃어버렸으니, 재빨리 회사를 옮기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갈 곳은 없다. 여기서 더 높은 연봉을 줄 수 있는 회사는 지금 회사밖에 없으니 말이다.
시도는 다방면으로 할 것이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다닐 수밖에 없다. 현실이 그렇다. 더 큰 떡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 떡을 삼킬 수 있는 입과 위, 내장기관이 나에게는 없다. 그렇다. 나만 없다.
11. 성장의 한계를 체감한다
더 이상 지금의 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잘리기 전에 다른 일을 알아보려는 마음뿐이다. 물론 이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왜? 한 번도 자기가 생각한 수준으로 일하면서 원하는 수준으로 받는 일을 택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일에 가치의 0순위가 돈이었던 것뿐이다. 그 때문에 지금의 해결하지 못할 고초를 치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삶의 철학을 세워야 하는데, 이미 관성이 붙어버렸다. 멈출 수 없다.
12. 일에 자신만의 가치를 느끼지도 만들지도 못한 ‘가치 불능 상태’가 된다
일은 그저 삶을 지탱해주는 수많은 도구 중 하나일 뿐이고, 그중에 가장 멋지고 번쩍이는 것을 쥐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도 꾸준히 갈고닦아 주지 않으면, 무뎌진다. 스스로 가치를 만들고, 유지하는 힘도 방법도 잃어버려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돈을 주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다.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것은 많지만 그냥 남보다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 벌기 위해 일한다. 그냥 돈만 벌면 된다. 그래서 다시 돈 벌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 소비한다. 그냥 소고기 사 먹는다. 그게 전부다.
우리는 왜 일해야 하는가
사실 이 질문부터 하지 않고, 대부분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답을 찾으려고 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치가 확인 가능한 돈(연봉) 이외에 다른 것이 있고, 이를 스스로 체크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명확한 자기 기준 없이 우선 시작하기에 바쁘다.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빨리 뭐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인식한다.
사실 이런 고정관념 및 편견이 매우 위험하다. 지금은 서부 개척 시대가 아니다. 남들보다 뭐든 빨리 선점해 더 많은 가치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보다는 (1)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거나, (2)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것을 하거나, (3) 같은 결과지만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 방법으로 할 수 있어야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셋 중 하나만 특화하면 된다.
하지만 이를 결정하기 이전에 왜 지금의 일을 택했는지, 그 일의 가치를 무엇이라고 정의했는지, 그로 인해 과거에 비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정리가 필요하다. 미래에 만들어내고 싶은 일의 가치와 내가 지금까지 만든 현재 가치의 격차에 따라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밟아가야 할 커리어가 그렇다. 모두가 같은 것을 꿈꾸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해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각자 다른 철학과 가치를 갖고 일하며, 그에 적합해 보이는 방법론을 생각하고 실행할 뿐이다. 당장은 누가 낫고 못났고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는 미래와 그런 미래를 그리게 된 배경과 철학에 의해 더 먼 미래가 결정된다. 그에 맞춰 나아가려는 방법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일에 관한 생각 및 철학이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달리한다. 일에 관한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원문: 이직스쿨 김영학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