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기생충은 숙주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물론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죽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 공생 관계를 유지한 기생충의 경우 그렇게 큰 해를 입히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숙주를 안에서부터 먹고 나오는 포식성 기생충처럼 아예 숙주를 죽이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 기생충도 적지 않습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 (Johannes Gutenberg University Mainz)의 과학자들은 서유럽에서 서식하는 개미인 Temnothorax Nylanderi와 이 개미의 장에서 기생하는 조충류 (tapeworm, 편형동물의 일종)인 Anomotaenia brevis의 독특한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연구팀이 3년간 T. nylanderi 군집 58개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기생충에 감염된 개미는 놀랍게도 감염되지 않은 개미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감염된 개미 중 53%가 3년이라는 관찰 기간 중 살아남았을 때 감염되지 않은 개미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개미의 수명이 짧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반전입니다.
하지만 반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개미는 처음에는 노란 색이다가 점점 갈색으로 변하는데, 감염된 개미는 젊은 개미처럼 노란색을 계속 유지했습니다. 이는 최대 20년을 사는 여왕 개미와 비슷한 특징이었습니다. 연구팀은 감염된 개미가 20년씩 사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꽤 오래 젊음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감염된 개미는 정상적인 개미와 달리 열심히 먹이를 구하러 나가지 않고 개미굴에서 게으르게 빈둥거리면서 지냅니다. 건강한 개미는 게으른 감염 개미를 먹여 살리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합니다. 하지만 게으른 개미에게는 그만한 댓가가 있습니다.
연구팀은 이 개미의 천적인 딱따구리가 둥지를 공격할 때 건강한 개미와 달리 감염된 개미들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먹이가 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사실 이 개미들은 게으른 게 아니라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이유는 종숙주인 딱따구리에 잡아먹히기 위해 기생충이 숙주를 조종했기 때문입니다.
오래 사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중간 숙주가 금방 죽으면 종숙주에 잡아먹힐 기회가 적기 때문입니다. 종숙주로 옮겨간 기생충은 종숙주의 몸에서 알을 낳은 후 배설물과 함께 환경으로 배출되어 개미 몸으로 다시 들어가는 생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숙주에게 더 나은 결과 같지만, 아무튼 결국 중간 숙주를 먹이로 바친다는 데서 기생충이 숙주를 해치는 전형적인 케이스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기생충이 숙주의 수명까지 조절한다는 점은 정말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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