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나 고래 같은 거대한 동물들은 한 가지 흥미로운 역설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포 숫자가 많고 수명이 긴데도 불구하고 암이 잘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페토의 역설(Peto’s Paradox)’로 잘 알려져 있는데, 대형 포유류가 상당히 많은 숫자의 암 억제 유전자를 통해 암의 발생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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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팔로 대학의 빈센트 린치와 캘리포니아 대학의 후안 마누엘 바즈퀘즈는 코끼리뿐만 아니라 장비목 (Proboscidea) 전체가 이런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팀은 코끼리가 속한 장비목은 물론이고 금빛두더지와 코끼리땃쥐, 고슴도치붙이, 땅돼지, 바위너구리, 매너티까지 포함한 근연 그룹인 아프로테리아 상목 (Afrotherians)과 아르마딜로, 나무늘보를 포함한 빈치류(Xenarthrans)의 암 억제 유전자를 분석했습니다. 여기에는 털메머드 같은 멸종 동물의 유전자도 포함되었습니다.
연구 결과 코끼리의 근연 그룹은 크기가 작더라도 p53 같은 암 억제 유전자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암 억제 유전자가 많은 것이 이 그룹의 전반적인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코끼리의 경우 중복을 통해 특히 더 많은 암 억제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 온갖 손상을 겪어도 웬만해서는 암 억제 기능이 떨어지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엄청나게 많은 세포 숫자와 긴 수명에도 불구하고 암이 잘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연구팀은 코끼리뿐 아니라 멸종 동물인 스텔라 바다소나 거대 나무늘보 등도 비슷하게 많은 수의 암 억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그룹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일 뿐 아니라 거대한 몸집을 오래 지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의 경우에도 암 억제 유전자 덕분에 비교적 큰 몸집과 긴 수명에도 나이가 들 때까지 암이 잘 생기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현재는 빨리 죽는 다른 인자가 사라져 너무 수명이 길어진 것이 문제인 셈입니다. 그래도 의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암 환자의 수명도 점점 증가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원문: 고든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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