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국치일은 언제일까?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 아니다. 점령을 하고 있던 베트남에서 후퇴했을 때? 역시 아니다. 1976년 5월 24일 파리에서 있었던 와인 시음회일 것이다. 이름 모를 와인에게 역사와 전통 아니 프랑스인의 자부심이 털린 날이기 때문이다.
겨우 마실 것 하나로 호들갑을 떠나고 물을 수 있다. 음식으로 예를 든다면 이름 모를 소수민족이 만든 김치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종갓집의 김치들을 이겼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라고 설명하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들 말한다. 그렇다. 그런 일이 파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오늘 마시즘은 충격과 공포의 와인 시음회 ‘파리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다.
시골에서 만든 싸구려 알콜을 왜 시음해요?
프랑스 와인 VS 미국 와인
이야기의 시작은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성공한 와인 무역상으로 와인의 중심지 파리까지 진출하였다. 스티븐은 이곳에서 와인 상점과 함께 와인 스쿨을 열었다. 사람들은 와인에 진심인 스티븐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가 소개하는 다른 나라의 와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와인을 따라 한 싸구려 알콜이잖아.
사건은 1976년에 벌어졌다. ‘미국 독립 200주년’ 행사를 맞이해서 스티븐는 재미있는 이벤트를 생각해낸다. 프랑스의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인을 두고 블라인드 시음회를 하는 것이다.
모두가 그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와인을 프랑스 와인에게 비교시킨다는 것은 마시즘과 손흥민이 1:1 축구를 90분 동안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심지어 주최자인 스티븐도 당연히 프랑스 와인에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마음에 심사위원 11명 중 9명을 프랑스인으로 선정했거든(남은 2명은 스티븐과 파트너였다).
와인 시음회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화이트 와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프랑스의 유명 레스토랑 수석 소믈리에부터, 스타 셰프, 잡지 편집장, 양조자까지 프랑스 와인의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천박한 미국 와인 속에서 고귀한 자국 와인을 찾아내었다.
향이 전혀 없는 걸 보니! 캘리포니아 와인이 분명하네요!
프랑스의 권위 있는 레스토랑 가이드 잡지 <골드 밀라우> 영업부장이 말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20점 만점에 0점과 1점을 줬다. 그것은 프랑스산 ‘바라트 몽라셰’였다. 모두들 자신만만하게 와인을 구분해냈다. 중간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심사위원 11명이 최고 점수를 준 화이트 와인은 캘리포니아산 ‘샤또 몬텔레나’였다. 총점 132점으로 2위인 프랑스 와인과 6점이나 차이가 났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3위와 4위도 캘리포니아 와인이 차지했다는 것. 장내는 술렁였다. 마셔본 적도 없는 시골의 와인이 이렇다고?
다음 레드와인 시음회가 열렸다. 심사위원들은 미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친선경기가 아니었다. 프랑스산 레드와인은 모두 보르도 와인 연합회가 추천한 고급 와인이었다. 심사위원 11명 중 4명은 자국 와인을 감지해 최고점을 주었다. 4등, 3등, 2등 모두 프랑스 와인이 차지하며 자존심을 지켜줬다.
그런데 1등이 미국이었다. 스택스 립 와인 셀러라고? 들어본 적도 없는 와인한테 보르도가?
1.5점의 근소한 점수 차이였지만, 무너진 자존심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었다. 인지도에서도 너무 확연한 차이가 났고, 가격마저도 프랑스 와인이 3~4배는 비쌌다. 시음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오데뜨 칸 여사는 재심사를 요청했다(그녀는 2번이나 캘리포니아 와인에 최고점을 주었다).
무관심 속에 참가한 1명의 기자, 역사적 특종 ‘파리의 심판’
아무도 (주최자인 스티븐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스티븐은 와인 시음회에 앞서 기자들에게 행사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결과가 너무도 뻔할 것 같은 기사거리가 되지 않을 시음회에 참석하겠다는 이는 없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파리 주재원 ‘조지 테이버’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티븐이 미국, 영국, 프랑스의 기자들을 초청했지만 모두 거절했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시음회는 월요일에 열렸는데, 마침 월요일은 한 주 중 가장 뉴스거리가 적은 날이었죠. 그래서 시음회에 가기로 했습니다.
한가한 덕분에 조지 테이버는 역사적인 시음회에 참가한 유일한 기자가 되었다. 덕분에 그는 와인계에 회자되는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이야기(파리스가 어떤 여신이 더 예쁘냐고 심사를 했던 것)를 변형해서 제목을 지었고, (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참가했던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그들은 심사가 공정하지 못했다(확실한 평가 기준이 없었다) 혹은 보르도산 와인은 숙성이 되어야 진가를 발휘한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사임을 종용받는 등 함부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프랑스 와인의 가장 치욕스러운 문을 연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30주년 기념으로 다시 붙어보자, 파리의 심판 후속편
파리의 심판은 30년이 지난 후 2006년에 재대결이 성사되었다. 당시에 출전했던 레드와인들을 빈티지까지 맞춰 다시 대결을 하게 되었다. (빨리 익어버리는 캘리포니아 와인과 다르게) 보르도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향과 맛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진정한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번 대회는 유럽과 미국 2 대륙에서 나눠 진행했다. 영국, 미국, 프랑스 심사위원들이 9명씩 포진되었다. 첫 대회를 조직한 스티븐 스퍼리어와 개스토 갤라거가 각각 장소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결과는 또 미국와인의 승리였다. 아니 1위부터 5위까지를 모두 미국 와인이 모두 쓸어가 버린다.
파리의 심판 40주년인 2016년은 어땠냐고? 그냥 미국 와인인 샤또 몬텔레나가 와인을 무료로 제공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시골 촌뜨기 와인이었던 자신들의 와인을 세계의 중심에 올려준 파리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였다고.
파리의 심판은 곧 신대륙 와인의 탄생
파리의 심판 이후 바뀐 것은 ‘프랑스 와인의 몰락’이 아니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타국에서 와인을 빚는 이들에게 우리도 세계에서 인정받는 와인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단순히 유럽의 양조기술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게 아닌, 자신들만의 토양과 기술을 믿고 와인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와인의 본가의 자존심은 어쩔 수 없지만, 프랑스도 캘리포니아 와인이 굉장한 수준에 올라왔음을 인정하는 정도까지는 오르게 되었다. 또한 자신들의 와인 역사에서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주었다고. 프랑스 와인은 여전히 훌륭하며, 와인이라는 게 순간의 맛만으로 우위를 평가하기에는 너무 큰 문화의 집합체 아니겠는가. 밴자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와인은 신이 우리를 사랑하며 우리의 행복을 원한다는 확실한 증거다.
파리의 심판은 신의 사랑이 파리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함께한다는 의미를 밝혀주는 일이지 않을까?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파리의 심판, 조지 M 테버, 알에이치케이코리아, 2014
- 일상의 유혹 기호품의 역사, 탕지옌광, 시그마북스, 2015
- 올댓와인, 조정용, 해냄, 2006
- How America Kicked France in the Pants And Changed the World of Wine
- Forever, KATY STEINMETZ, Time, 2016.5.24
- [최현태기자의와인홀릭] 파리의 심판 40주년, 최현태, 세계일보, 2016.5.20
- [이건수의 노블칼럼] 프랑스를 이긴 미국 와인들의 반란, ‘파리의 심판’, 이건수, 오마이뉴스
- ‘파리의 심판 주최자’ 와인 전설 스티븐 스퍼리어, 80세 나이로 별세, 유성호, 소믈리에타임즈, 2021.3.10
- 프랑스 와인 미국에 지다, 이지선, 컬쳐타임즈, 20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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