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에서 펀드매니저들이 왜 돈을 못 버는 줄 아나? 이러 저리 몰려다니다가 도살되는 양 떼처럼 행동하기 때문이지.
어떤 양이 한 방향으로 뛰면 나머지 양들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무조건 달리는 군집 행동이 펀드매니저들에게도 나타나 투자손실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월 스트리트』(1987)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가를 무대로 펼쳐지는 냉혹한 ‘쩐의 전쟁’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버드 폭스(찰리 신 분)는 큰 야망을 품고 있는 증권사 신출내기 브로커다. 그는 꿈을 이루는 방법으로 지름길을 택한다. 거물 트레이더이자 기업 사냥꾼인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 분)를 59번이나 끈질기게 연락한 끝에 어렵게 만나게 되고, 그의 마음을 얻게 된다. 그런데 영화 스토리보다 관심을 가는 것은 고든이 버드와의 대화과정에서 주식시장의 속성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대목이다.
고든에 따르면 월가 같은 전쟁터는 어지간한 하버드 대학 박사도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곳이다. 몇 가지 지식을 내세워 도전했다가 쓰라린 패배의 잔을 마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든은 “똑똑하고, 배고프고, 감정이 없어야 살아남는다”고 잘라 말한다.
고든이 주가조작까지도 일삼는 부도덕한 인물이니 그의 말을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다만 주식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양 떼처럼 몰려다녀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강인한 정신력과 냉철한 지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월 스트리트 ‘네 마리 짐승’의 운명
월 스트리트의 이름은 1653년 이곳에 정착한 네덜란드 이주민들이 인디언과 곰의 침입으로부터 가축과 정착민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담장(wall)에서 유래한다. 그 담장은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그곳에는 증권거래소와 금융업종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세계금융의 심장이 되었다.
월가에는 4마리의 짐승이 비유적으로 등장한다. 무리 짓기 또는 공포를 상징하는 양, 탐욕의 돼지, 강세장의 황소, 약세장의 곰이다. 같은 짐승이지만 서로의 운명은 다르다. 황소와 곰은 살아남지만 양과 돼지는 도살당한다. 단단한 뿔로 올려 치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황소는 주가의 상승을, 앞발로 내려치면서 사냥하는 곰은 주가의 하락을 각각 대변한다.
시장은 상승과 하락을 오르내리므로 흔들리지 않고 황소와 곰처럼 일관성을 추구하면 시장에서 쫓겨나지는 않는다. 양은 고든이 지적한 것처럼 시장 분위기에 따라 줏대 없이 쏠려 다니다가 결국 곰과 황소의 먹이가 된다. 돼지 역시 “왜 안 돼? 돼지, 돼지”라고 외치며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덤벼들다가 역시 잡아먹히고 만다. 돼지와 양은 황소와 곰의 배를 불려주는 시장의 희생양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개인 가운데 성공한 황소나 곰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가끔 슈퍼개미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반인에게는 꿈꾸기 어려운 성공신화다. 개미들이 주식 직접투자에서 성공하는 확률이 5%가 채 안 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개미들이 돼지나 양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리라. 개미들의 실패는 생각과 실제 행동의 불일치에서 유발된다.
개미들은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이 돼지와 양처럼 행동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스스로 체면까지 건다. 하지만 처음 먹은 굳은 마음은 봄날 눈 녹듯 허물어진다. 막상 투자게임에 나서게 되면 돼지와 양으로 돌변해 일을 그르친다. 일념통천(一念通天)이라는 말을 아는가. 한결같은 마음을 먹으면 그 뜻이 하늘에 통해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큰돈을 벌게 해주는 것은 당신의 머리가 아니라 들썩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당신의 엉덩이다.
‘월가의 큰곰’으로 불렸던 제시 리버모어는 이처럼 인내심과 끈기가 성공의 열쇠임을 강조한다. 즉, 위기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아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평상시면 모를까, 공포와 광기라는 비정상적인 국면에 내몰리면 사람들은 건망증 환자처럼 이내 원칙을 잊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종신보험은 왜 74%나 중도 해지할까
오죽하면 보험까지 깨나…벼랑 끝 가계 살림.
서민들이 팍팍한 살림살이를 견디다 못해 보험 중도 해지가 급증하고 있다는 내용의 신문 제목이다. 경기 불황이 깊어지면서 한계 상황으로 내몰린 가계 경제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험 중도 해지를 든 것이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15년 종신보험 가입자의 중도 해지율이 무려 74%에 달한다. 종신보험에 가입한 사람 거의 열 명 중 7명 이상이 해지를 한다는 얘기다. 저축성보험도 이보다는 낮지만 3년 이내 해지율이 42.8%에 이른다.
보험은 단기 예금이 아니라 미래 불확실성을 대비하는 장기상품인데도 가입자들은 단기적으로, 즉흥적으로 행동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험을 너무 쉽게 가입하고, 또 쉽게 해지한다. 자신이 꼭 필요해서 가입하기보다 지인의 부탁으로, 보험설계사의 권유로 많이 가입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금 계획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가입한 결과 해지도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이다. 보험을 중도 해지하면 납입금액을 거의 되찾지 못해 손실이 클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왜 처음 가입했을 때 생각이 지속되지 않았던 걸까. 갑작스러운 경제사정으로 보험료 납입이 부담될 수 있고, 급전이 필요할 수 있다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포트폴리오를 좀 느슨하게 짜야 하지 않았을까. 가령 이것저것 보험을 가입하지 않고 가짓수를 줄인다든지, 매달 보험료 부담이 낮은 실속형 상품들을 가입하는 것이 그것이다.
톱니바퀴처럼 너무 빡빡하게 자금 계획을 짜다 보니 조금만 틀어져도 마지막 보루이어야 할 보험의 해지를 떠올린다. 스스로 그런 유혹에 휩쓸리지 않도록 방비책을 만들어야 한다.
성공의 필요조건 ‘선호의 일관성’
나름대로 금융지식이 풍부하다고 자부하던 자칭 신중론자 송진국(가명·51)씨는 요즘 씁쓸하다. 그동안 스스로 훌륭하다고 자평했던 금융 재테크 계획을 실망 끝에 접었기 때문이다. 그는 3년 계획으로 중위험·중수익 상품인 월지급식 주가연계증권(ELS)에 4억 원을 가입한 뒤 매달 받는 이자 200만 원을 국내 중소형주 펀드, 유럽 펀드에 자동이체로 불입을 시작했다.
목돈이 아니라 월이자로 받은 자금을 펀드에 정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나름대로 괜찮은 자산설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입 후 펀드수익률은 계속 마이너스 행진을 했다. ‘시장은 나빴다가도 좋은 거 아닌가. 장기적으로 투자를 하면 수익을 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자신의 계획이 틀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 몰려왔지만 애써 뿌리쳤다. 하지만 인내심은 딱 13개월까지였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으로 불확실성이 커지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펀드 불입을 중단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아예 해지를 해서 현금화시켰다. 마침 연년생인 큰아들과 둘째 딸 대학등록금도 필요했다. 송씨는 말했다.
적립식 펀드는 장기투자를 해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막상 마이너스 수익률에서 1년 이상 벗어나지 못하자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만약 수익률이 플러스였다면 송씨는 자신의 계획을 끝까지 고수했을 것이다. 계속된 마이너스 수익률은 송씨를 가만두지 않았다. ㄹ자신의 판단에 대해 의심하고 자책하는 스트레스가 길어지면서 결국은 스스로 무너졌다. 그 결과 처음 좋다고 생각(선호)해서 세웠던 계획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바로 ‘선호의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수시로 흔들리는 당신에게 선호의 일관성 유지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오락가락해서는 수익은커녕 자신에게 마음의 상처만 안길 수 있다.
부동산과 주식 투자자는 왜 무리짓기를 달리할까
일반적으로 떼를 지어 사고하거나 행동하는 무리짓기 현상은 불안 심리에서 나온다. 같이 행동하면 혼자 행동하는 것보다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령 양들이 떼를 지어 움직이는 것은 그만큼 언제든지 포식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양들은 날카로운 뿔이 있는 것도 아니고, 힘이 센 것도 아니어서 방어능력이 보잘것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리짓기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동료들과 함께 모여 있으니 심리적으로도 위안이 될 것이다.
무리짓기 현상은 인간 감정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자산시장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흥미로운 것은 연구결과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무리짓기 현상은 서로 다른 국면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가령 주식시장은 중소형주를 중심으로 하락장에서, 부동산시장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그 반대인 상승장에서 무리짓기를 자주 볼 수 있다.
주식시장의 경우 하락장에서 무리짓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로 공포심이 크게 작용한다. 흔히 투매는 공포를 못 이겨 손실을 무릅쓰고 주식을 싸게 던지는 행위다. “내 머리는 팔기 싫었는데, 내 손가락이 팔았다”고 하는 개미 투자자들의 목멘 소리가 나올 만큼 공포를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거래에 실패했더라도 원칙을 지켰다면 승리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이 같은 감정적인 무리짓기는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하는 대형우량주보다는 개미들이 사고파는 중소형주에서 심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서 투매가 가능한 것은 팔고 싶을 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투매는 유동성이 원활하지 않는 시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시장에서는 투매라는 것은 찾기 힘들다. 부동산은 거래 빈도가 잦지 않거니와 고가상품이다. 내가 공포에 짓눌려 팔고 싶어도 사줄 사람이 많지 않다. 매입가보다 싸게 팔지 않으려는 ‘손실 회피’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도 투매가 흔치 않은 또 다른 이유다. 하락장에서 주식은 지금 싸게 팔아도 나중에, 짧게는 몇 시간 뒤에 싸게 살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있지만 부동산은 그렇지 않다.
아파트시장에서 수요자들의 움직임을 잘 눈여겨보라. 수요자들이 오를 때 떼를 지어 같이 산다. 영이 엄마가 아파트를 사면 옆집 철이 엄마도 따라 사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가격이 오를 때 거래량도 늘어난다. 가격이 어느 정도 바닥을 친 것을 확인하고 매입하려는 경향이 강한 데다 수요자들이 가격 하락보다 상승 뉴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가격 상승 뉴스는 호황기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아파트 시장에 진입하라는 신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학습효과가 시장에 작용을 하는 것이다.
자산시장에서 남을 따라 하는 무리짓기 현상은 정보부족을 메우려는 합리적 행동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린 의사결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아파트시장은 상승장 때, 주식시장은 하락장에서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조심해야 한다.
다만 토지, 상가,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에서는 일반적으로 무리짓기 현상은 자주 목격되지 않은 편이다. 상품이 표준화되지 않아 거래 빈도가 잦지 않고 가수요보다는 실수요차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격에 맞는 자산관리법을 찾아라
지속적으로 성공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능지수나 지식, 기술보다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의사결정을 하는 건전하고 지적인 사고체계와 그것이 흔들리지 않도록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기 자신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믿는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성공은 강인한 정신 무장으로 흔들리지 않고 일을 추진한 결과다. 하지만 주위를 보면 ‘강철 멘탈’ 인간들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에 속하는 또 한 부류는 막상 상황에 닥치면 처음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비이성적으로,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감정에 휘둘리면 일은 그르치기 마련이다. 비이성적 행동에서는 많이 배운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지식을 많이 쌓는다고 해서 감정 조절에 능숙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판단을 내려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작동하는 것은 지식보다 지혜다. 어찌 보면 후회하지 않을 판단을 하려면 지식보다는 지혜의 눈을 길러야 한다.
어쨌든 충동적인 사람들의 경우, 자산 재설계의 출발은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과신을 버리는 것이다. 일을 그르치는 사람들의 실패 이유는 대부분 계획은 이성적으로 짜지만 행동을 감정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무한신뢰가 사고를 부른다. 감정이 작동하기 마련인 위기 때도 이성과 합리성이 작동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시로 흔들리는 사람들은 스스로 이성과 합리성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단단한 방어벽을 만들어야 한다. 처음 먹었던 생각들이 끝까지 지탱될 수 있도록 스스로 마음의 방파제를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만약 스스로 이성과 합리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자산관리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투자도 자신의 성격에 맞추지 않으면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다. 노후 자산 재설계에도 성격심리학적 접근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원문: 박원갑의 부동산미래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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