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바잉’과 ‘벼락거지’, ‘하우스 디바이드’, ‘영끌’이라는 유행어를 보면서 참여정부 시절을 떠올린다. 당시에도 집값이 껑충 뛰면서 무주택자들이 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 당시 부동산시장과 지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점이 많다.
1. 베이비부머, X세대에서 밀레니얼 세대로
참여정부(2003~2008) 시절만 해도 부동산시장의 주력 세대는 베이비부머나 X세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2030세의 MZ세대가 주류를 이룬다. 특히 『82년생 김지영』을 대표로 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들의 공간소비에 대한 선호도는 베이비부머나 X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한마디로 욕망의 코드가 다르다는 것이다.
2. 토지 투기가 없다
참여정부 당시엔 아파트 투기 외에도 토지 투기가 극성을 부렸다. 용인, 화성, 파주 등 수도권은 물론 충남 당진, 서산, 태안에 외지인들의 토지 투자가 줄을 이었다. 토지는 임야나 농지 등 비도심 땅이 주류를 이뤘다. 당시에는 토지를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중개업소나 토지전문가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교외 토지에 대한 투자 수요 자체가 줄었다. 이는 지금 부동산시장을 이끄는 주역들의 경험치가 종전 세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종전 세대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아 교외 공간이 익숙하다.
MZ세대는 도심의 아파트에 태어나 생활해 왔다. 그래서 교외 공간이 낮설고, 자연스럽게 소유 욕망이 없다. 한마디로 투자에 무관심하다는 얘기다. 이들은 아파트를 곧 부동산과 동일시한다. 그런 MZ세대가 시장에서 주력으로 급부상하다 보니 아파트값만 급등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2. 정보전달,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정보 전달 속도가 참여 정부 때보다 빨라졌다. 당시에도 휴대전화를 사용했지만, 카메라 등 일부 기능이 있었을 뿐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은 아니었다. 그래서 부동산 뉴스는 주로 컴퓨터와 신문·잡지를 통해 접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주인이 되는 ‘포노사피엔스’ 시대다. 스마트폰은 움직이는 컴퓨터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95%를 넘어서면서 정보가 한꺼번에, 그것도 빠르게 전달되고 있다. 사람들도 그만큼 빠르게 움직인다.
부동산시장이 생각보다 빨리 확 달아오르는 것도 모바일 사회의 특성에 기인한다. 특정 지역에서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면 다른 쪽으로 번지는 속도도 빨라진다.
3. 맞벌이 부부시대, 구매력 껑충
요즘 젊은 30대들을 보고는 “그 비싼 아파트를 살 돈이 어디 있어?”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계약직이나 비정규직인 젊은 층이 많아 집을 살 여력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주 어렵게 사는 30대만을 보고 전체로 일반화하지 말자. 어차피 아파트를 살 사람들은 그들 세계에서도 중상층에 해당될 것이다.
요즘 30대 기혼자들은 대부분 맞벌이다. 베이비부머나 X세대는 결혼을 하거나 아니면 얘기를 가지면 아내가 퇴사했다. 그래서 외벌이가 많다. 하지만 요즘 밀레니얼 세대에는 회사를 관두기보다는 계속 다니는 여성들이 더 많다. 맞벌이는 외벌이보다 구매력이 더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또 하나. ‘아빠·엄마 찬스’를 이용하는, 즉 그림자 금융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자녀 수가 3~4명 이상은 되었다. 집값 올라도 부모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많아야 1~2명이다. 부모지원이 펑펑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른마 ‘마더파더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다 보니 구매력이 더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4. 흉포해진 자본
30대들은 자본주의 가치관에 좀 더 익숙하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표현을 빗대면 이들은 ‘자본주의 키즈’다. 『트렌드 코리아 2021』 따르면 이들은 이윤 추구를 죄악시하지 않는다. 당연한 인간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틀을 잘 익혀서 게임에 승리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갭투자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기성세대는 갭투자에 대한 약간의 죄의식이 있다. 사실상 자신의 투기적 욕망을 위해 경제적 약자인 세입자로부터 돈을 빌려 투자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망하면 세입자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끼치게 된다. 하지만 MZ세대에게 갭투자는 자산 포트폴리오의 일환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본다면 합리적인 욕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욕망이 집단화되면 시장은 거칠어진다. 자본이 흉포화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5. ‘강남 독야청청’은 옛말
참여정부 당시에는 강남권 대단지 중심으로 투기적 수요가 많았다. 은마, 개포주공, 잠실 주공 등 대단지 아파트가 인기를 끌었다. 은마아파트는 외환위기 저점에 비해 8년 만에 10배가 뛰었다. 그래서 은마아파트는 금마아파트가 되었고, 한때 “택시 운전사가 청와대는 몰라도 은마아파트는 안다”는 우스개소리가 나돌았다. 하지만 요즘은 강남의 랜드마크 아파트 위상이 옛날 같지 않다.
부산이나 대구 등 지방 광역시에서 국민주택규모 아파트가 15억원 넘게 거래되고 강북에서도 20억원을 넘어서는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이 정부 들어 상승률만 따진다면 강북 아파트값 오름폭이 강남 대단지 아파트 못지않다. 오히려 더 오른 곳도 많다.
이는 주택시장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강남이 다른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강남을 희생양으로 집중 규제를 한다고 해서 전체 시장이 안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문: 박원갑의 부동산미래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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