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가장 나쁜 관계는 타인을 감시할 목적으로 맺는 관계이다. 서로에 대해 호의를 지니고서 좋은 영향을 주며 의미 있는 의지처가 되기보다는, 타인을 평가하고 재단하며 감시하면서 평가절하할 기회나 비난할 기회를 노리기 위한 것처럼 관계를 맺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것을 ‘피해 의식 강한’ 사람이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피해 의식이 강한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상대를 마음속 깊이 비난한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다 보면 있기 마련인 어떤 실수의 순간,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 같은 것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며, 결국에는 상대를 비난할 이유를 찾아낸다.
피해 의식은 세상의 모든 물고기를 낚는 그물과 비슷하다. 어떤 행동이나 말, 몸짓이나 표정에서도 결국 ‘자신을 공격하는 순간’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피해 의식은 자신에 대한 어떤 평가에 기반 둔다. 타인의 존재를 그 자체로 나를 평가하는 시선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공격하는 시선으로 받아들여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피해 의식으로 물든 사람은 자신이 공격당한다고 믿는 만큼 그 누군가를 공격하게 된다. 실제로는 아무도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매일 공격당한다고 느끼는 그는 결국 매일 다른 누군가를 공격해야만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
살아오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적어도 내 주위에는 그렇게 ‘피해 의식 강한’ 사람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삶에, 나라는 사람에게,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에게까지 결코 좋지 않다. 내 앞에서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대한 피해 의식을 쏟아내는 사람은, 그래서 누군가를 비난하며 증오하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비난하고 증오하게 된다.
그가 내게 보내는 호의도 사실은 훗날의 비난을 위한 준비작업 비슷한 것이다. 나는 피해 의식 강한 사람의 호의를 믿지 않는다. 그저 나를 위해서 말이다. 나는 피해 의식 강한 사람에게 인류애를 발휘하지 않는다. 내가 관대하게 이해하고 서로 유머로 상황을 넘기며 맺어가고 싶은 사람에 피해 의식 강한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다.
주위 사람에게 항상 비난할 거리를 찾아내고, 사소한 말투나 행동 하나에서 끊임없이 증오할 점들을 찾아내고,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속으로는 온갖 미움을 품고 사는 사람은 아무래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는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이 있는데,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해를 입는다고 느낀다.
내가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먼저 거절할 사람의 앞자리에는 피해 의식 강한 사람이 있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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