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다른 일들도 그러할지 모르겠으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이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달리 말해서 자신의 글이 어딘가에 속해 있거나,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자기가 발디디고 설 땅이 있거나, 자기가 소모하고 있는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회의감에 대해 보호막이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글쓰기에는 유독 이러한 감각이 필요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글 쓰는 일 자체는 소속도 없고, 동력도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글쓰기 자체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만약 글 쓰는 누군가에게 소속을 주고 월급을 주어서 평생 직장을 보장한다면, 그는 어떻게든 무슨 글이든 써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얼마나 글 쓰는 일이 좋건 아니건, 서면이나 소장, 보고서나 보도자료 같은 걸 소속 안에서 꾸역꾸역 써낼 때가 있다. 때론 지리멸렬하고, 고통스러워 미칠 것 같고, 권태로워서 더 한 줄도 쓰고 싶지 않을 때에도 글을 써내면 걸맞은 명예나 보상을 준다든지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을 보장한다면, 어떻게든 그 위기를 견뎌낼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글쓰기는 대개 그 무엇도 보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지속할 마음을 갖지 못한다.
그렇기에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능도, 천재성도, 열정도, 돈도, 환경도 아니고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 느낌은 현실적일 수도 있고, 추상적일 수도 있다. 학창시절 내게 재능이 있다며 칭찬해주었던 국어 선생님, 내 블로그를 매일 찾아와 글을 읽어주는 두세 명의 독자, 내가 쓰는 글을 항상 가장 먼저 읽어주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친구나 연인의 존재가 글 쓰는 사람의 마음을 떠받친다.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 확고하다면, 그래서 나의 글쓰기가 무의미하지 않고 시간 낭비가 아니며 나의 고통 또한 바보 같은 일이라는 느낌이 주어질 때, 사람은 계속 글을 쓴다.
그렇기에 나는 매번 글쓰기 모임에서도 강조한다. 이 모임이 끝나고도 계속 글을 써내고 싶다면, 반드시 독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독자는 나의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동네 친구가 될 수도 있고, SNS의 팔로워나 블로그의 이웃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지지받는다는 느낌이 필요하다. 그 느낌이 약하면, 누구도 오래 글을 쓸 수 없다. 글쓰기는 골방이나 절간에서, 고독을 느끼며 혼자 하는 거라는 인상이 강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설령 절간에 틀어박힌 작가라 하더라도 자신을 기다려주고 지지해준다고 믿는 대중 독자나 문단의 존재감을 은연중에 의식하고 있다. 글쓰기란 보이는 것 이상으로 타인과 강력하게 관계 맺는 행위이며, 타인들로부터 힘을 얻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글쓰기 모임에서 무엇보다도 확신을 갖고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장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에게서 나름의 장점을 찾아 이야기해주려고 한다. 물론 글쓰기가 어느 단계를 넘어 좋아지려면 온갖 비판들을 뚫고 성장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점을 아는 일이다. 그 장점의 존재 자체로 지지받는다는 느낌을 유지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지받지 못한 글, 지지받지 못하는 글쓴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항해사를 구해 모험을 떠나고자 하는 모험가처럼, 자신을 지지해줄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물론 일방적인 지지보다는 서로 지지해주는 존재들을 찾아도 좋을 것이다.
글쓰기는 고독 속에서 홀로 고고하게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그 고독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글을 계속 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지지해주는 존재가, 그 누군가가, 그 무언가가 있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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