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더 좋은 곳으로 가자』가 나왔습니다.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어른의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막막한 사람들을 위한 현실적 요령에 대한 이야기예요. 전작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무례한 세상 속 나를 지키는 요령’이었다면, 이번 『더 좋은 곳으로 가자』는 ‘무례한 세상 속 나를 키우는 요령’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씩씩한 마음을 놓지 않으려 연습해온 기억을 떠올리며 쓴 책입니다. 많은 분께 위로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난해부터 우리 마음은 한겨울이었지만 앞으로의 날들은 봄처럼 훨씬 따스해지길 기대합니다. 우리 함께 더 좋은 곳으로 가요! 감사합니다.
prologue. 더 좋은 곳으로 가는 생활의 요령
부산 출신 배우 김민석이 서울에 갓 상경했을 때의 에피소드를 방송에서 본 적 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2호선 강남역 근처에서 구했고, 집은 9호선 신논현역 근처에 얻었는데 이 거리가 걸어가면 십 분 내외인 걸 몰라서 매일 지하철을 탔다고 한다. 심지어 환승까지 하느라 삼십 분씩 걸려가며 출퇴근을 했는데 반년이 지나서야 그간 얼마나 황당한 행동을 해왔는지 알게 되어 허탈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듣고 있던 사람들이 깔깔댔다. 그걸 알려주는 사람 하나 없었느냐며.
열심히 하는데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사람에게 항상 마음이 쓰인다.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이를 보면 지나치기 어렵다. 너무 오래 둘러 가는 사람. 실력 있음에도 언제나 최종 후보 목록에는 없는 사람. 단점이 별로 없지만 강점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사람.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 그런 이가 종종 나온다. 타고난 목소리가 개성 있는데 그에 맞지 않는 선곡을 한다거나, 심사자와 시청자의 주의를 흩뜨리는 특유의 버릇이 있는 사람, 굳이 스스로를 ‘제2의 ○○’라고 소개해 개성이 중요한 프로의 세계에서 캐릭터를 좁혀버리는 사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심사위원이 공감 가는 조언을 건넬 때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걸 저 이가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시행착오를 덜 겪었을 텐데 싶어 안타깝다. 그럴 때의 심사위원 평은 그 분야를 모르는 내가 들어도 대부분 수긍이 가는 말이다.
누가 봐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정작 본인은 처음 듣는다는 듯 화들짝 놀라는 게 우리 삶의 서러운 포인트 같다. 자기 문제를 남이 먼저 알고 본인은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는 사실.
방송에서뿐 아니다. 긴장하거나 방향 설정을 잘못해서 실력 발휘를 못 하는 직장 동료들을 많이 봤다. 항상 바빠 보이지만 인정과 성과는 그에 비해 적은 이도, 중간에 한 번이라도 동료나 상사에게 물어봤으면 수월해졌을 일을 굳이 혼자 붙잡고 있다 문제를 키우는 후배도 있었다. 유지할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인간관계를 놓지 못해 괴로워하는 경우도 흔했다.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사람, 충분히 매력적임에도 자존감이 낮고 연애 상대를 만나보면 ‘왜 이런 사람과……’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자꾸만 마음에 품게 되고 말을 걸고 싶어지는 이유는 결국 그들에게서 과거의 내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내 주변에는 어른이나 선배라 할 사람이 부족해서 시의적절한 조언을 얻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주어지는 기회 자체가 적었다. 처음 호텔 뷔페에 간 사람처럼, 언제 또 올지 모르니 여기 있는 걸 다 먹을 거라 벼르면서도 정작 첫 접시에 김밥과 탕수육을 담는 사람이 나였다.
이러저러하게 해보라 가르쳐줄 사람이 없고 당장 눈앞에 해야 할 일만 해치우기도 버거우니까 자꾸 억울해졌다. 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잘할 수 있었는데, 누가 조금만 알려줬더라면 덜 실수했을 텐데 그때는 그저 내가 부족해서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애쓰고 자책하다가 나가떨어지면 그제야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어른이 나타나곤 했다. “그거 원래 이렇게 하면 되는 건데 몰랐구나.” “열심히는 하는데 요령이 좀 없네.”
그 요령이라는 게 대체 뭘까? 선배들이 팔짱을 끼고 있다가 뒤늦게 말해주는 기술 중에는 동의할 수 없는 편법이나 부적절한 처세술도 많았지만 살면서 두고두고 도움이 된 말도 많았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이런 걸 처음부터 알고 시작했단 말이지.
특히 핵심에 집중하고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데 필요한 현실적인 요령이 요긴했다. 몰라서 못 하는 것과 알지만 안 하는 건 다르니까 일단은 알아두려고 힘썼다. 눈치로 알아채기도 했고 책에서 찾아내기도 했고 선배들이 미리 검증을 끝내서 전승되고 있는 실천과 루틴을 적극적으로 추려서 활용했다.
예컨대 출근하면 제일 먼저 그날 할 일을 포스트잇에 중요도 순으로 적어 잘 보이게 두고 순서대로 해치우라는 것. 말을 자주 바꾸는 클라이언트에게는 전화 통화를 하더라도 대화 내용을 메신저나 메일을 통해 한 번 더 정리해주라는 것.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거기에만 함몰되면 비하와 연민으로 빠지기 쉬우니 마음이 복잡할 땐 몸도 함께 움직여 적당한 비율을 유지하라는 것 등등.
많은 독자가 사랑해준 전작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주눅 들어 있는 사회초년생에게 자기를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일단 안전거리부터 확보하자고 말을 거는 책이었다. 그렇다면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거리를 설정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 『더 좋은 곳으로 가자』에서는 바로 그다음 스텝에서 시도할 만한 일을 말한다.
우리는 영원히 막내일 수 없으니 가진 걸 지키고만 서 있을 수 없고 조심스럽게 영토를 넓혀가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상처받은 만큼 상처 주게 되고 아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겁을 내게 되어 새로운 시도 앞에서 자주 무력해진다. 그럴 때 참고할 만한 어른스러운 태도와 감정 관리의 매뉴얼을 모았다.
이 책은 당신이 초행길에서 덜 헤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물론 헤매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고 어떤 난관도 돌이켜보면 불필요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회 자체가 한정적이고 이끌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 이들에게 고난이란 자신을 성장시키기보다 납작하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이 시대에 그건 극소수 생존자만 회고하며 하는 말이고 대부분은 기약 없이 고생하다 자신을 미워하고 목소리 내는 법을 잊어버린다. 미처 못 본 함정은 어디서든 튀어나오니 일단 잘 아는 부비트랩의 위치부터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관계를 이어가며 오래 사랑하는 법,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와 확실하게 멀어지는 법, 불쑥 올라오는 질투심을 관리하는 법, 가족 안에서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법, 직장에서 중간관리자가 되었을 때를 연습하는 법 등 미리 알았다면 더 빨리, 덜 힘들이고 나아갈 수 있는 태도와 기술에 대해 썼다.
그동안 삶의 난도가 높아졌다고 여겨질 때마다 적용했고 실제로 도움받았던 생활의 요령에 대해서 썼다. 예전의 내가 그랬듯 누군가에게도 막막한 순간에 꼭 필요한 말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럴싸한 뒷배경이 없는 사람이라도 지치지 않고 오래 걷기를 희망한다. 가능하면 너무 그늘지지 않은 평평한 대로의 안쪽에서. 더 욕심을 부리자면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추천사
지금 나의 불행이 벗어날 수 없는 필연처럼 느껴진다면 꼭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기대되기보다 온통 두렵게 느껴질 때, 결핍과 불운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일 때. 그런 상황 속에선 현재를 이해할 힘도, 미래를 대비할 여력도 없다. 이때 네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조언은 상처가 되고 현실을 알려주겠다는 조언은 폭력처럼 느껴진다. 정문정 작가는 섣불리 이상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의 말에 힘이 있는 건 스스로 촘촘하게 경험했던 현실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불행은 필연도, 무능해서도 아니라고. 그러니 거기에 머물거나 좌절할 이유가 없다고. 우리는 분명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거라고. 그의 글이 정말 그리되리란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졌다. 흔들릴 때마다,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을 펼칠 것이다. 흔들리는 건 당연하니 계속 나아가자고 따뜻하게 내미는 손에 한바탕 울고 난 뒤 다시 나아갈 것이다.
- 임현주(아나운서,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 저자)
세상이 ‘능력에 따른 공정한 대우’법을 교양 있게 느긋이 고민하는 동안, 정작 청년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난과 실업, 차별의 철퇴를 맞으며 자꾸만 희미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더 좋은 곳으로 가자』는 작가가 자신의 삶에서 꾸준히 울고 웃으며 뽑아낸 신념과 가치관을 튼튼한 실 삼아, 청년들이 가장 고민하는 주제의 경험담을 야무지게 엮어낸다. 쉽고 재밌게 읽힌다고 하여 오해하지 말자. 묻지도 않았는데 쏟아놓는 ‘무례한 사람’의 조언과 달리, 내면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태도의 변화를 끌어낸다. 어느 때보다도 모두의 자존감이 위태로운 시대, 정문정 작가는 책 속에서 주저앉은 청년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지금 죽도록 힘든 것은 당신이 못난 게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며, 우리는 보란 듯이 건강하게 살아남아 더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 김소연(밀레니얼 뉴스레터 《뉴닉》 대표)
원문: 정문정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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