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은 파악하기 정말 어렵다. 공간도 넓고 역사도 길면서 정보 소스도 적다. 미국은 주요 언론사에서 워싱턴과 뉴욕특파원 두 명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중국은 한 명이거나 없다. 국제부 기사 상당수가 미국 언론이 전하는 미국 기사다. 반면 중국 기사는 주로 쇼킹한 해프닝을 전한다.
그래서 각자 갖고 있는 이미지로 판단한다. 대부분 중국을 싫어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면만 보고, 미국에 치우친 정보원도 이미지를 강화한다. 중국이 주는 위협감 때문에 잘 안되길 바라는 ‘소망’도 더해진다. 동시에 중국의 성장을 긍정하는 분들은 ‘필승론’ 같은 장밋빛 희망을 갖고 있다.
2.
『127가지 질문으로 알아보는 중국경제』는 제목 때문에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줄줄이 나열하거나 여러 작가가 옴니버스식으로 쓴 책은 별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저 거대한 중국을 한 권으로, 그것도 건조하고 탄탄하게 정리한 좋은 책이다.
중국을 ‘미친 나라’로 보거나 ‘(곧) 위대해질 게 자명한 나라’로 보고 시작하는 다른 책과 다르다. 저자인 아서 크뢰버가 글로벌경제 분석업체 창업자여서 가능한 일이다. 튀어나온 부분을 사포질하듯 과장된 낙관과 비관을 다 반박한다. 담백하면서 정확한 정세 판단이 꼭 삼국지 곽가 같은 느낌이었음.
중국 정치를 분석한 첫 장부터 상식을 깬다. 보통 공산당은 경직성이 매우 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련 붕괴에 대한 공산당의 분석을 보면 놀랍다. ①충분히 시장 경제 메커니즘을 사용하지 않았고 ②선전과 정보 체제가 너무 폐쇄적이라 관료들이 내·외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본다. 반면교사의 포인트로 짚은 게 충분히 자유롭지 못한 언론과 시장이었던 것.
언론에 대한 언급도 재밌다. 국영 언론 중심이지만 의외로 지방 언론의 자유는 꽤 허용한다. 지방에서 일어나는 부패나 문제를 중앙이 파악하기 위해서다. 말초 신경이 살아 있어야 다친 걸 알 수 있듯, 그 역할은 보호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걸 보면 중국의 언론 통제는 단순히 독재국가의 흔한 ‘무조건 통제’보다 영리하다.
3.
환율·금리 조작과 보조금 지급으로 성장했다는 시각도 반박한다. 일단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위안화-달러 환율은 같았다. 이 시기는 경제가 굴기하던 때다. 환율이 하락(위안화 가치 상승)한 2010년부터 3년 동안도 세계 수출시장서 점유율을 1%p씩 늘렸다. 환율 조작 덕분에 성공한 경제라는 주장과 어긋난다.
지적 재산권을 훔쳐서 성공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너희도 다 그랬어’라고 지적한다. 18세기에는 예수교 선교사가 중국 도자기 기술을 훔쳤고, 19세기에는 미국이 유럽의 기술을 훔쳤다. 20세기에는 한국과 일본이 서구의 기술을 역공학으로 훔쳤다. 이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경제성장하는 국가는 누구나 그랬다는 얘기다.
매년 돌아오는 그림자 금융 타령도 반박한다. 일단 규모가 미국보다 훨씬 작다. 국제기구인 금융안정위원회에 따르면 중국의 비은행 자산 규모는 GDP의 9%다. 미국은? 60%다. 은행 중심 경제인 중국이 오히려 제도권 안에서 관리되는 자산 비중이 높다. 반면 ‘선진 경제’와 달리 자산구조화증권이나 신용부도스와프 같은 파생상품이나 구조화 금융기구도 없다.
중국 은행에 대한 이미지는 국영기업 주머니 노릇하는 곳이다. 하지만 90년대 거의 0%였던 민간 대출 규모는 2014년 기준 40%를 넘었다. 증가 속도도 빠르다. 또한 중국 은행 대출 특성상 예금과 대출이 사실상 일대일로 매칭된 수준으로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있어 갑작스런 부채 위기 가능성도 낮다고 진단한다. 언론이 애용하는 ‘빚더니 중국’ 이미지와 다르다.
이외에도 ‘늙어가는 중국’, ‘국진민퇴(국영기업 재약진)’에 대한 오해를 데이터로 반박하는 데 그 내용이 너무 많아서 다 옮기기는 힘들 것 같다.
4.
여기까지만 보면 ‘뭐야, 중국 낙관론자가 쓴 책이네’ 할 수 있는데, 절반 이상은 한계를 짚는다. 중국의 모델인 동아시아 발전국가보다 불평등 문제는 훨씬 심각하고 개선 가능성도 낮다. 서구나 미국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이 중국에선 20% 내외에 그친다. 그만큼 ’20 대 80′ 사회 특성이 공고하다.
한국·일본과 달리 미국의 기술을 마음껏 들여올 수 없었기 때문에 외국기업 중심으로 키운 경제도 약점이다. 여전히 수출의 대부분이 외국 기업이 찍어 판 상품이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중국 기업이 얼마나 있나? 심지어 내연기관 자동차조차도 제대로 못 만드는 게 ‘1만 불 국가’ 중국의 현실이라고도 지적한다.
이 부분 읽으면서 “화웨이랑 융기실리콘 같은 기업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바로 이런 내용이 나왔다.
이와 달리 중국 기업들은 복잡성이 덜한 기술집약적 산업에서는 큰 우위를 보여준다. 특히 고객이 소비자가 아닌 기업일 때 더욱 강한 면모를 보인다. 자동차 부품, 발전 설비, 통신 네트워크 장비 등이 대표적이다.
서구의 ‘중국 필패론’은 부정하지만, 정보 교환이 제한된 정치 구조는 결국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한다. 수억에 이르는 농민의 도시화 문제도 해결해야 하며, 도시민과 토지 소유권이 없는 농촌의 빈부 격차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5.
127가지 질문을 던진 끝에 아서 크뢰버는 이렇게 맺는다.
중국은 세계 1등 경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 봐야 미국인 소득의 4분의 1에 불과한 저소득 국가다. 1등을 했다는 건 그저 중국이 인구가 많다는 뜻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나라도 중국을 존경도 애정도 하지 않고, 문화적 영향력은 전무하며 오히려 국내 문화는 한국 문화에 침식당하고 있다.
중국은 온순하게 국제 경제 질서를 따르며 ‘상인’의 멘탈리티로 성장했다. 많은 동맹국과 국제기구, 국제법으로 쌓아둔 국제 질서를 고려하면 미국과 중국의 일대일 규모 비교는 의미가 없다. 오히려 중국이 일원으로서 할 일을 하면 국제사회엔 좋은 일이다. ‘중국은 카이저 빌헬름 황제 치하의 독일이 아니며 소비에트 연방의 환생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중국이 빠른 시일내에 (아마 예상보다 빨리) 미국의 경제 규모를 제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변하는 건 별로 없을 거라는 것도 동의한다. 오히려 저성장에 진입한 한국에겐 기회다. 경제의 축이 동아시아로 오면 좋은 일 아닌가.
유럽과 미국, 동아시아 국가처럼 치열하게 경제성장을 했고 또 문제도 많은 나라, 이렇게 중국을 ‘보통 국가’로 보는 게 가장 좋은 자세다. 호들갑 떠는 책이 아닌 이런 책이 많이 출판되면 좋겠다. 시그마북스 출판사는 감사하게도 이런 책을 많이 내주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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