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좋은 책을 가리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전문가의 추천도 아니요, 베스트셀러 순위도 아닌 ‘절판’ 여부다. 청림출판이 2017년에 내놓은 『더 박스』는 절판됐고 전자책도, 중고 매물도 없다. 경험상 이런 책은 좋은 책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 책이 그렇다.
『더 박스』는 컨테이너에 관한 이야기다. 가로세로 반듯한 쇳덩어리로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을 썼는데, 이게 한번 쉬지도 않고 읽을 만큼 재밌다. 컨테이너가 어떻게 실용화됐고 세상을 바꿨는지 흥미진진하게 푼다. 오늘날 1인당 소득으로 G7 국가를 넘어선(펄-럭) 한국을 만든 단 하나의 물건을 꼽으면 반도체가 아닌 컨테이너라고 확신한다.
1956년 4월 26일, 최초의 컨테이너선이 뉴욕 뉴어크항을 출항했다. 이전에도 컨테이너는 있었다. 철골을 덧댄 거대한 상자가 활용된 건 오래된 일이다. 이때까지는 갑판 위에 가끔 보이는 특이한 화물 정도였다. 거의 모든 화물은 부두노동자가 등짐으로 옮겼다.
자수성가한 트럭운수업자인 말콤 맥린은 컨테이너에 맞춰 모든 운송 시스템을 뜯어고친 ‘컨테이너화’에 도전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정부가 거저 나눠 준 배를 컨테이너에 맞게 개조하고 크레인을 설치했다. 여기에 맞춰 항구도 뜯어고쳤다. 트럭운수업자답게 컨테이너에 최적화한 트럭 운송 체계도 세웠다. 맥린은 컨테이너를 발명하진 않았지만, 컨테이너화를 시작했다.
결과는 혁명적이었다. 1956년에 일반 화물을 기존의 화물선으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은 톤당 5.83달러였다. 맥린이 계산해보니 이걸 컨테이너선으로 옮길 때 비용은 톤당 15.8센트. 운송비가 37분의 1로 줄었다. 전기료 1만 원 나오던 게 271원이 나온 셈. 혁명이란 말도 부족하다.
여기서 ‘그렇게 말콤 맥린은 운수업의 혁명을 이끌고 세계화를 이룩했습니다’로 끝났으면 책이 이렇게 두꺼울 필요가 없다. 맥린이 컨테이너선을 띄운게 15장의 책 중 1장 내용이다. 이제부터 ‘혁신의 저주’가 뭔지 생생하게 전개된다. 테슬라가 벌써 혁명을 다 이룬 것처럼 보인다면, 말콤 맥린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운송비를 혁신적으로 줄였으니 순식간에 운송업계가 컨테이너화 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첫 컨테이너선이 출항하고 6년이 지난 1962년에도 뉴욕항의 화물 중 컨테이너 화물은 8%밖에 안 됐다. 이것도 전체 항구도 아닌 뉴욕항의 수치고, 국제화물은 넣지도 않았다. 당시 국제화물 중 컨테이너로 옮긴 비율은 0%였다.
혁신은 수지 타산이 맞는 모델을 짜잔 개발하고 끝이 아니다. 첫 번째 벽은 정치적 문제다. 부두노동자는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노동조합의 단결력은 강했고 선적과 하역, 배분 등 여러 공정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파업의 위력도 셌다. 수도 많고 소득도 높아 정치적 영향력도 강했다. 부두노동자는 컨테이너가 위협이 될 걸 간파했고 파업으로 맞섰다.
‘부두노동자’라는 글자를 가리면 오늘날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를 설명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저 때는 전후 호황기라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정치적 지형이 더 안 좋다. 장기적으로는 노동절약형 기술진보의 힘으로 노동자들이 밀려나겠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거다.
1960년에 ‘기계근대화협정’이라는 협상을 통해 컨테이너선사와 노동자는 타협을 이뤘지만 갈 길은 멀었다. 선사끼리의 경쟁이 불붙었다. 컨테이너화는 엄청난 자본을 투자해서 공정을 쉽게 만드는 작업이다. 일단 인프라가 갖춰지면 서비스에 큰 차이가 없다. 끝없는 원가 경쟁이 시작되고 투자도 계속해야 한다.
컨테이너화를 시작한 맥린의 시랜드서비스사가 앞서갔지만, 6년째 적자였다. 빚은 산더미처럼 쌓였고, 후발주자는 계속 치고 들어왔다. 돈을 벌어도 원가절감 압박과 추가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지경이었던 것. 당시 큰 손이었던 담배회사 레이놀즈가 맥린에 대한 투자자로 들어왔는데, 그 현금 부자도 결국 포기하고 나갔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2016년 헤어드라이기로 유명한 영국 다이슨이 전기차 개발을 선언하면서 자신들은 모터를 잘 만들고, 전기차는 모터로 가는 물건이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수천 개의 부품으로 정교하게 만드는 내연기관보다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 다이슨은 2019년 프로젝트를 포기했지만 테슬라 앞에는 벤츠, BMW, 현대차 등 쟁쟁한 거인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에 거의 끝이 없는 자본 투자 부담도 있다. 다이슨은 3년 만에 7,500억 원을 태웠는데 미련 없이 포기했다. 상업성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전기차가 대중화하면 결국 가격이 중요해질 텐데, 그럼 투자를 늘려 규모의 경제를 이뤄서 더 싸게 만들어야 한다. 이윤은 박해지고 투자금은 계속 쏟아부어야 한다.
워런 버핏이 비슷한 얘기를 여러 번 했는데, 항공업계가 이랬다. 버핏옹 왈 ‘자본가 입장에서는 라이트 형제가 처음 비행할 때 총으로 쐈다면 돈을 많이 아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행기가 혁신인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지만, 이후 약 100년 가까이 항공산업에 투자해서 돈 번 사람은 없었다.
여러 장벽에 막혀 지지부진하던 컨테이너화에 숨통을 틔운 건 베트남 전쟁이었다. 1970년 군수 보급으로 속을 썩던 미군은 컨테이너를 해결책으로 찾았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덕분에 맥린도 돈을 벌기 시작했고, 베트남서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러 물건을 채우기로 하면서 환태평양 무역의 시대도 열었다.
어릴 때 정주영 회장이 뜬금없이 배를 만든다고 한 게 그저 위인의 ‘뚝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배경이 있었던 거다. 정주영 회장이 바클레이를 찾아가 그 유명한 ‘이순신 지폐’ 에피소드를 만든 게 1971년이다.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잘 보고 설득한 것. 역시 에피소드는 아름답지만 비즈니스는 합리적이다.
베트남전쟁이라는 엄청난 기회를 맞은 맥린은 드디어 성공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제는 아예 일본, 대만에 한국까지 가세해서 더 싸고 더 빠른 배를 찍어냈다. 국가가 나서서 대형 항구와 컨테이너선을 만든 동아시아는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2014년 기준으로 세계 10대 무역항 중 7곳이 동아시아에 있다. 첫 컨테이너선을 띄운 뉴욕항은 보이지도 않는다.
정리하면 혁신이 (나의)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①그 혁신이 사업성이 있어야 하고(제록스) ②정치적 문제를 돌파해야 하고(타다) ③언제가 될지 모를 ‘그때’를 기다려야 하며 ④누가 승자가 될지 모르는 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고 ⑤대중화를 이룰 이벤트도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굴곡이 있는데, 여하튼 맥린은 나중에 파산하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결국 1990년대 들어 컨테이너는 세상을 바꿨지만, 첫 출항 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할 줄은 몰랐던 거다. 물론 그는 컨테이너화의 선구자로 역사에 남았고, 그가 죽었을 때 전 세계의 컨테이너선은 뱃고동을 울려 예의를 표했다.
읽는 내내 이미 혁명이 일어났다거나 ‘사실상’ 완성됐다거나 ‘이건 실패할 수 없는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테슬라에 대한 시선이 떠올랐다. 1960년대에 컨테이너화는 전기차보다 덜 매력적인 아이템이었을까? 컨테이너는 세계 경제를 넘어 동아시아의 부상이라는 지정학적 격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컨테이너선사에 투자해서 돈 번 사람은 없었다. 당연하지만 혁신은 참 먼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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