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전엔 <7번 방의 선물>이나 <베테랑> 류의 신파 혹은 사이다 영화만 인기를 끄는 게 문화적 퇴행으로 느껴졌다. <올드보이>와 <왕의 남자>를 만든 한국 영화계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하는 자괴감도 느꼈다.
그런데 요새 생각이 바뀌었다. 요 몇 달 영화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던 영화 소비계층은 ‘데이트하는 20대 커플’ 혹은 ‘영잘알 혼자’였다. 즉, 바로 나 자신만을 영화의 소비계층으로 상정했었다.
하지만 일하면서 느낀 건, 대한민국의 문화공간 중에 영화관만큼 세대와 빈부를 아우르는 공간이 또 없다는 사실이다.
2.
조조 시간엔 할일 없는 대학생만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조조 시간에 얼마나 많은 중년 세대들이 영화를 보러오는지. 노인분들 중에 영화관 포인트가 수만 포인트나 되는 헤비유저가 얼마나 많은지 영화관에서 일하기 전에는 몰랐다.
특히 놀란 점은 고객분들 중 장애인들이 정말 많다는 점이다. 보통 영화관들은 경로/유공자/장애인에게 우대요금을 제공하는데(50% 할인 혹은 5,000원 정액제) 이 요금을 이용하는 분 중 상당수가 장애인이다. (이후에 관심이 생겨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 장애인이 230만 명이라더라. 외국인보다 많다)
특히 내 근무시간인 오전 시간엔 정말 많다. 난 예전 선별적 복지를 지지하는 관점에서 ‘골짜기를 메우는 최소한’의 복지를 지지했었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안되는 복지혜택이 있다. 예컨대 장애인의 이동권처럼 단지 돈을 주는 걸로는 할 수 없는 복지.
그런 면에서 영화관의 존재는 문화 소외계층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사람은 배고파서 자살하지 않는다. 장애인이나 노인들에게 보다 문화적 혜택을 늘릴 수 있다면 생의 목적을 잃고 포기하는 자살문제 해소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오전 영화관 좌석의 한계비용은 0에 가깝다. 바라건대, 앞으로의 논의에서 복지라는 것에 대해 돈 뿐 아니라 이런 다양한 경험에 대해서도 주목했으면 좋겠다.
이런 관점에서 한없이 대중적이고 또 대중적인 한국영화의 경향이 아쉽지만, 영화소비계층이 말 그대로 전 국민이라는 점에서 납득할만하다. 애초에 영화란 자고로 고상하고 작품성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지극히 골방 룸펜스러운 생각이었던 것 같다.
역시 생각과 현실은 다르다. 내가 비웃었던 <7번 방>은 어려운 영화가 낯선 사람들에겐 기다리던 영화다.
생각해보면 <비긴 어게인>(약300만)이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이 기똥차게 성공하는 나라가 또 우리나라다. 그런 면에서 나름 확고하고 고상한 취향의 관객이 최소 수백만은 있다는 것. 뭐든 잘 모를 때는 다 우스워 보인다.
덧.
‘영화 발권 같은 걸 왜 아직도 사람이 하지?’ ‘그냥 핸드폰이나 무인발권기로 하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었는데, 일해보니 이거 얼마나 ‘나’의 관점이었는지.
원문 : Min Namgung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