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때문에 내수가 죽는다는 소리가 하도 가당치도 않아 웃어넘겼다. 그런데 오늘 댓글을 훑어보다보니 이를 비판하는 분들 중에도 ‘소비가 줄어들긴 해도(후략)’ 식으로 저 명제를 받는 분도 보였다. 무엇보다 줄어들 한우굴비에 광분하는 기자님들의 필치가 예사롭지않다.
깨진 유리창 이야기
경제학 괴담 중에 ‘깨진 유리창’ 이야기가 있다. 하나의 궤변인데, “A가 본인집 창문을 깼다. 이를 수리하기 위해 A가 수리공을 불러 3만원을 썼고, 이 사고 덕에 소비가 창출됐다. 이걸 반복하면 경제가 더 성장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다. 주로 1학년 학부생들에게 문제처럼 던져주지는 이야기다. 딱 봐도 헛소리 같은데 묘하게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뭘까?
유리 수리한 덕에 3만원을 소비한건 사실이다. 즉, 소비는 발생했다. 그러나 이 소비 덕분에 다른 소비는 줄어든다. 예컨대 애먼 창문만 안 깼다면 집주인은 저녁 외식을 하던가 새 옷을 샀을 것이다. 즉, 수리공의 소득 3만원은 식당 주인 혹은 옷가게 주인의 소득을 대체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경제학에선 돈의 액수가 아닌 효용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효용의 관점에서 보자. 집주인이 유리를 갈면서 느낀 효용보다 그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외식, 옷 소비가 더욱 효용을 증진시켰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유리를 수리하며 느낀 효용이 10이고 외식으로 느낄 효용이 20이라면 유리창이 깨진 덕에 사회 전체적으론 효용이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10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다.
현실로 돌아와보자. 소기업 사장 홍길동씨가 동네 세무공무원에게 10만 원짜리 한우를 상납한다면, 이 소비 덕에 홍길동씨가 할 수 있었던 다른 소비가 구축된다. 외식을 할 계획이었다고 가정하면, 외식업자의 매상 10만 원이 사라진것이다. 즉, 정치권에서 말하는 ‘소비침체’는 정확히는 ‘농축산업 소비침체’일 뿐이지 대한민국 경기 침체와는 하등 연관이 없다.
항아리 묻었다 꺼내기에도 해당 안 되는 이유
경제적 관점에 더 관심이 있으실 분들을 위해 조금 더 생각을 진척시켜 보자. 하지만 케인즈 선생은 정부가 항아리를 땅에 묻고 이를 꺼내기를 반복하여 이를 통해 부족한 유효수요를 늘리자는 주장을 하셨다. 엥, 그럼 뇌물이라도 주고받으면 내수도 안 좋다는데 좋은 거 아니냐? 유효수요가 부족한 상황일 수도 있잖아?
아주 넉넉히 대한민국 1,795만 가구가 평균 10만 원씩 명절선물에 돈을 쓴다 해도 명절선물 시장 규모는 2조 원이 안 된다. 더군다나 김영란법이 선물을 금지하는 것도 아니고, 제한에 걸릴 만큼 대단한 선물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겠나. 반면 이러한 뇌물들 덕에 발생할 법치를 훼손하는 반칙을 생각해보자. 내수를 위해 제한을 푼다? 이건 수지타산도 안 맞는 소리다.
또한 도의적으로도 ‘대가를 바라고 제공하는 선물’을 뇌물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뇌물이라는 죄악으로 내수를 증진시키려면 차라리 마리화나, 카지노를 합법화 하는게 어떨까? 아예 정부에서 공무원증을 돈 받고 팔아서 소비를 늘리는건?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농어촌 죽는다고 김영란법을 개정하자는 건 부정부패를 농어촌 보조금의 재원으로 쓰자는 소리다.
물론 정치권의 헛소리일 뿐 저 사람들이 나라 경제 걱정에서 하는 소리일 리가 있나.
원문: 남궁민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