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원더우먼〉이라는 영화에 애착이 있는 사람이라서, 이번 〈원더우먼 1984〉를 상당히 기대했습니다. 당시에 DC에 별 관심이 없던 제가 〈원더우먼〉을 보고 제 취향은 DC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원더우먼〉이 이전까지 봤던 마블 영화보다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하지만 이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었습니다. DC는 이후로도 계속 삽질을 해왔고,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상당히 지루했습니다. 다른 DC 유니버스 영화들보다는 괜찮기는 했는데, 워낙 기준치가 낮아서… 자세한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부족한 액션
이 영화에 가장 크게 기대했던 점은 액션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크게 실망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원더우먼〉에서 느껴진 액션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다이애나의 힘과 속도감입니다. 히어로물에서 등장하는 파괴감이 이번 영화에서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액션이 올가미를 통해서만 이뤄집니다.
사람이 하는 액션이 아니라 올가미 액션만 보고 나온 느낌입니다. 최근에 인기를 끄는 〈경이로운 소문〉의 액션이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인간과 다른 능력을 가졌다면, 인간 정도는 쉽게 상대를 하고, 후반부에는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캐릭터와 싸워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전 〈원더우먼〉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모든 총알을 막아내고, 다수의 적과 싸우면서도 흠집 하나 없던 다이애나가 이번 영화에서는 너무 다칩니다. 그 원인이야 그 황수정에 소원을 빌면서 능력이 없어지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이애나의 힘을 보려고 영화를 본 것인데, 그 힘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다이애나는 힘이 없어집니다.
후반부에 바바라와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긴 하는데, 이것도 그다지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액션 분량이 30분을 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액션을 보기 위해서 151분의 러닝타임을 기다릴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난잡한 스토리
이렇게 액션이 부실한 이유는 스토리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이애나에게 큰 위기가 없습니다. 위기가 존재하기는 하는데, 다이애나에게 닥치는 위기가 아닙니다. 인류를 구하는 것이 주된 목표가 되는 것은 같습니다. 하지만 다이애나에게 분노와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즉 다이애나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싸운다는 느낌이 안 든다는 것이죠.
이야기의 구조 또한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추적하는 형태가 되어버립니다. 다이애나가 가진 최고의 무기인 진실의 올가미를 활용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죠. 결과적으로 다이애나의 능력을 고려한 스토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다이애나의 필살기가 위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로맨스까지. 제발 키스 없는 DC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영화마다 넣는 것인지…
DC의 분위기는?
그렇다고 DC의 분위기가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원더우먼〉을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우아함입니다. 액션에서 우아함이 느껴질 정도인데, 멋이 아니라 ‘간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멋진 척을 하는 듯한 몇몇 장면이 DC의 캐릭터가 정의를 지키는 사도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죠.
〈아쿠아맨〉의 경우 그런 DC의 모습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캐릭터의 성장이 담았다는 측면에서 그 결과는 DC의 분위기와 충족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촌뜨기가 진정한 히어로가 된 느낌이었죠. 〈원더우먼〉도 그랬습니다. 능력은 있지만, 아직 활용한 적이 없었던 다이애나가 인간을 위해서 자기 능력을 사용하고, 악의로부터 인간을 지킨다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조금은 진중한 메시지와 분위기가 있었죠.
영화는 레트로에 집중해 진지한 문제보다는 조금은 가벼운 이야기를 다루는 듯한 분위기를 형성했습니다. 맥스 로드가 황수정을 어떻게 아는지도 정확하지 않고, 그의 목적 또한 세계의 파괴나 인류의 멸망이 아닌 개인의 욕심으로 인해 생긴 일이죠. 하다못해 소원으로 큰 힘을 얻어서 다이애나와 싸우는 장면이라도 있었으면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은 차라리 미네르바가 자기 소원을 지키기 위해서 더 강해지려 하고 그를 위해서 맥스 로드에게서 수정을 빼앗는 식의 이야기가 조금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즉, 지금까지 희대의 악당이라고 생각될 캐릭터와 대척점에 있던 것이 DC의 캐릭터였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악의가 있던 캐릭터로 그려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자기 아들 때문에 욕망을 포기하는 인물이 악의로 가득한 인물로 보일까요? 황수정에 의해 의식이 지배당해서 더 큰 욕망으로 자기 아들까지 해치려 할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너무 쉽게 수그러든 것 같습니다. 결국 다이애나는 저지만 한 것이지만, 그녀가 맥스의 폭주를 막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메시지에 대한 욕심
영화가 담으려고 했던 메시지 자체는 좋았습니다. 본래 DC의 영화들이 고뇌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도 하고, 전작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저에게는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탐욕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더 탐욕스럽게 담는 것이 재미나 메시지적으로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탐욕과 같이 등장하는 가족주의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맥스가 가족을 위해서 욕심을 부렸지만, 너무 과도한 욕심을 내었고, 그의 가족들이 그를 말리지만, 그가 폭주하게 되어 다이애나와 모든 인류를 위협하는 상태에서 가족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맥스를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런 못난 욕망까지 가족이 품어줄 수 있다는 식의 메시지 전달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극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원더우먼 1984〉의 구조들을 보면, 재미있게 만들고 싶다는 느낌이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하는 느낌입니다. 메시지는 워너에서 정해주고, 감독은 그 메시지를 어떻게든 표현을 했어야 했던 것일까요? 이 영화야말로 과도한 욕심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잃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 시국에 극장까지 가서 볼만한 영화인가 의구심이 듭니다. 전편인 〈원더우먼〉과 같은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두 영화는 다른 느낌의 영화입니다. 그래도 같은 감독이라서 믿었던 것도 있는데, 배신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평이 좋지 않아서, 약간의 고민을 하다가 11월에 개봉한 〈이웃사촌〉 이후 극장을 한 번도 가지 않아서 극장을 굳이 갔는데,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극장에서 영화를 보니까 더 좋긴 합니다. 이 시국에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볼만한 가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리뷰 아니었으면 안 갔을 것 같습니다.
원문: 따따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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