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의 「After the crisis, opportunity」를 번역한 글입니다.
어떤 해는 역사에 굵직하게 남습니다. 역사의 챕터를 넘기는 때는 주로 전쟁이 끝나거나 혁명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다만 2020년은 예외가 될 것 같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분열을 일으키고 손해를 끼친 대통령으로 꼽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패배로 백악관을 떠나게 됐습니다. 또한, 백 년에 한 번 있을 팬데믹으로 경제와 사회의 대전환을 노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과연 2021년의 정치인들이 대담한 시도를 통해 이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요?
코로나19는 세계 경제만 망친 것이 아닙니다. 현대 세계를 구성한 3가지 힘의 궤적을 바꿔 놓았습니다. 세계화의 흐름을 거꾸로 돌렸습니다. 디지털 혁명은 급속히 빨라졌습니다. 미국과 중국 간 지정학적 경쟁이 격화됐습니다. 동시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오늘날의 가장 큰 사회적, 경제적 문제 중 하나인 불평등이 확대됐습니다.
그리고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발생 가능성은 작지만 사회에 미치는 피해가 큰 재난에 대비하지 못한 대가를 뼈저리게 체감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를 덮칠 것이 확실하면서 더 큰 피해가 예상되는 재난인 기후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년 초에는 이런 변화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재유행이 이어지면서 각국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데 모든 역량을 투입할 것입니다. 새해에 백신 접종이 시작되겠지만, 백신을 대규모로 보급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2021년이 지나가면서 백신이 대중화될 것이고, 그제야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이미 일어났는지 목격하게 되겠죠.
특히 서구 사회가 더 크게 변합니다. 코로나 유행을 거치면서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됐습니다. 원격근무부터 온라인 소매업에 이르기까지, 평소에 수년간에 나타났을 변화가 수개월 만에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사고, 어디서 일하는지를 짧은 기간에 극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창조적 파괴가 휩쓸고 간 자리의 승자는 대유행을 거치며 이익이 급증한 빅테크 기업입니다. 수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디지털 전환에 투자할 많은 자금을 보유한 대기업들도 대표적 수혜자입니다. 반면,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를 거친 대도시들은 크게 변할 것입니다. 특히 중소기업, 소상공인, 여행 및 서비스 산업 분야에서 폐업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도 상품과 자본의 세계화는 계속되겠지만, 사람의 이동은 줄어들 것입니다. 가장 엄격하게 국경을 폐쇄한 나라들이 아시아에서 바이러스 전파를 가장 효과적으로 막았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줍니다. 국경 폐쇄와 자가격리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숫자가 줄어든 이후에도 상당 기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향후 여행이 재개되더라도, 이민은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는 부유한 국가로 이주한 노동자들의 송금에 의지해 온 가난한 나라의 전망을 어둡게 할 뿐만 아니라, 팬데믹의 피해를 더 심화시킬 것입니다. 2021년 말까지 약 1억 5,000만 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편, 세계 무역은 긴장이 감도는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중상주의는 꺾이겠지만, “관세맨(Tariff Man)” 트럼프 대통령의 퇴장으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산 수입품의 3분의 2에 부과한 관세는 물론이고, 중국 IT 기업에 대한 제재도 이어질 것입니다.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둘로 나뉜 디지털 세계와 글로벌 부품 공급망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의 경쟁만이 세계화를 분열시키는 요인은 아닙니다. 유럽과 인도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의약품을 포함한 주요 물품을 외국(종종 중국)에 의존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정부가 보호해야 하는 “전략적 산업”의 범위를 더 넓히고, 새롭게 정의된 전략 산업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세계적 추세로 만들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세계 경제가 분열하고 침체할 것입니다. 중국과 일부 아시아 국가는 가파른 경기 회복을 달성하겠지만, 다른 지역은 상당 기간 침체기를 겪으면서 경제성장의 격차가 상당한 수준으로 유지될 것입니다. 중국은 2020년 주요 경제국 가운데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달성했고, 2021년 중국의 성장률은 7%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유럽과 미국의 회복 속도보다 훨씬 빠른 성장입니다. 또한, 중국은 서구의 경제권처럼 정부의 재정 적자와 엄청난 경기부양책에 기대어 경기를 회복시킨 것도 아닙니다. 경제적 성공은 물론, 코로나바이러스를 조기에 극복한 중국은 2021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승리를 자축할 것입니다.
이러한 중국의 성공은 서구 경제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미국은 불안정한 성장 속에서 새해를 시작할 것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정부 지원으로 간신히 해고를 면한 사람들과 국가 보조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이 늘어나고, 오랜 침체기를 겪을 것입니다. 대서양을 접한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 대유행으로 심해진 불평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저숙련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었고, 학교 교육이 혼란에 빠지면서 저소득층 자녀의 미래가 암울해졌습니다. 불평등이 사회적 분노와 갈등을 부채질하고, 미국은 여전히 분열된 국가의 오명을 벗지 못할 것입니다.
서구가 큰 피해를 본 반면 중국은 승리를 자축 중입니다. 많은 전문가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서구가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끝난다고 선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시기상조입니다. 중국의 백신 외교에도, 중국은 존경보다는 두려움과 의심을 먼저 불러일으키는 국가입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을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세우고 싶어 하지만, 진정한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을 무시하고 거래 중심의 외교에 매몰돼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을지 몰라도,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여전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도할 능력과 힘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휘하는 위치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정치 경력이 50년에 가까운 78세의 조 바이든입니다. 주로 민주당 주류의 편에 서서 합의를 중시하는 온건파였던 조 바이든은 새 시대를 대담하게 열어젖히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그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의 정책 기조는 진취적입니다. “더 나은 재건”이라는 슬로건을 필두로, 대담하지만 급진적이지 않은 시도를 보여줍니다. 미국의 신속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친환경 인프라, 녹색기술 개발에 대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이것을 단기적 경기 부양책과 묶어서 추진하려는 것이죠.
의료 접근성을 확대하고, 사회 보험을 개선하는 바이드노믹스(Bidenomics)의 사회 계약 모델은 21세기 버전의 “진보의 시대(Progressive era)”를 떠오르게 합니다. 다시 말해, 급진적인 좌파의 색채를 덜어낸 과감한 개혁입니다.
외교 정책을 한번 살펴봅시다. 바이든 당선인은 기존의 국제 관계를 회복하고 미국의 가치와 국제적 역할을 복원할 것입니다. 외교 전문가이자, 본능적 다자주의자, 체계 구축의 달인인 바이든은 국제 사회에 미국의 복귀를 신속하게 알릴 것입니다. 파리 기후협정에 재가입하고, 세계보건기구에 복귀할 것이며, 글로벌 백신 공급 기구인 코백스(COVAX)에 합류할 것입니다.
나토(NATO)와 대서양 동맹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선언하기 위해 유럽으로 빠르게 향할 것입니다. 첫 목적지는 브렉시트를 선언한 영국보다는 독일이나 프랑스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외교 정책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치를 다시 높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인 탄압과 홍콩 억압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장 중요한 이슈인 대(對)중국 정책을 놓고 보면,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의 방향성을 전면적으로 돌리기보다는 접근방식을 바꿀 것입니다. 미국의 새로운 정부도 여전히 신흥 강국인 중국의 위협을 경계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트럼프 정부처럼 일방적인 관세 부과가 아니라, 중국에 대항하는 다자 연합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을 것입니다.
특히 중국 IT 기업에 대한 유럽의 공동 대응을 유도하기 위한 대서양 그랜드 바겐 협상이 기대됩니다. 유럽이 미국의 대(對)중국 대응에 동참할 경우, 유럽이 우려하는 미국 테크 기업의 개인정보 수집과 세금 회피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죠. 더불어, 새로운 국제 동맹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들을 중국에 대항하는 서구 동맹에 끌어들이는 시도입니다. 성공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분명히 기회는 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가 중요합니다. 찬스를 날려버릴 위험도 있기 때문이죠.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바이든 정부가 효과적인 행동 없이, 번지르르하고 온건한 말에만 치우치는 경우이죠. 또는, 미래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보다 과거의 세계를 회복하는 데 지나치게 집중할지도 모릅니다. 기존의 일자리를 지키고, 경직된 다자 관계를 복원하는 데 몰두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공화당이 두려워하는 진보 정책의 난립이 아닙니다. 무대응, 소심함, 정체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미국과 세계에 끔찍한 수치를 안길 것입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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