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달리기’에 빠졌던 육상부 시절
나는 선천적으로 체형이 좋거나 골격이 좋은 편은 아니다. 알레르기성 비염도 달고 사는 허약 체질이다. 어렸을 때 친구들보다 작은 키와 몸집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꼭 몸집 작은 아이들이 괴롭힘을 받다가 무술을 열심히 연마해서 복수하는 장면들이 있다. 뭐, 그 정도로 괴롭힘을 받진 않았지만 주변에 나를 괴롭히고 얕잡아보는 친구들은 늘 있었다. 꾸준히 운동을 해온 탓에 깡다구는 있는 편이었고 그런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 싸움으로 번졌고 대부분 이겼고 가끔 졌다.
고등학생 이후의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나에 대해 건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몸은 타고난 게 아니다. 철저히 후천적인 노력으로 가꾼 성실하고 정직한 몸이다. 내게 운동은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이자 몸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이 허약체질은 살면서 수많은 운동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 중 첫 번째 이야기는 오래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다.
흠흠 파, 흠흠 파
오래달리기 코치님이 알려주신 호흡법이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 육상부였다. 종목은 1,500m 오래달리기. 단순히 생각하면 오래달리기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종목이다. 거의 비슷한 속도로 오랜 시간 뛰기만 하고 뭔가 주목할 만한 장면이 연출되지 않는다.
멀리 뛰기는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와 땅을 박차고 하늘을 날아 모래를 흩뿌리며 착지한다. 100m 달리기는 총소리와 함께 스타트를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마지막 도착점에 도착하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기승전결이 있다. 반면 오래달리기는 출발할 때도 서두르는 사람 없고 도착할 때도 뭔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루해 보이는 오래달리기 선수를 왜 했던 걸까.
육상 종목별로 각각의 특징이 있지만 오래달리기는 다른 종목과 달리 조금 특별한 면이 있다. 다른 종목들은 모두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 능력이 크게 영향을 끼치는 종목들이다. 100m 달리기, 멀리 뛰기, 높이 뛰기, 투포환. 타고난 순발력이나 근력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신체 능력은 향상할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오래달리기는 다르다. 오래달리기는 근지구력과 심폐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데 훈련 정도에 따라 향상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는 종목이다. 누구나 훈련하면 실력이 느는 게 눈으로 보이는 종목이고, 노력이 성과로 나타나는 정직한 종목이다.
아마도 나는 이 정직함이라는 매력에 빠졌던 게 아닐까? 선천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신체 능력에 부모님을 탓하거나, 훈련의 질을 결정하는 장비나 시설을 탓할 수 없다. 오래달리기 선수의 성적은 오로지 훈련하지 않은 게으른 자신을 탓해야 한다.
군대에서는 ‘잘 뛰었다’고 휴가도 다녀온 몸
오래달리기는 고통스럽다. 쉽게 생각하면 후반부로 갈수록 힘들 것 같은데 그렇지만은 않다. 나는 이상하게 첫 번째 바퀴를 뛸 때 힘들었다. 몸이 적응하고서는 괜찮아졌다가 페이스 유지를 위해 후반부에 체력을 좀 당겨 쓰곤 했는데 그때 힘들었다.
그러다 목표 시간에 맞추려고 마지막 바퀴에는 전력 질주를 하곤 했는데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숨이 차오르고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은 다 열려 산소를 흡입하느라, 땀을 배출하느라 바빠진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묘하게 쾌감이 느껴진다. 목표시간을 달성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몸에 전해지는 그 고통 자체가 쾌감으로 느껴지곤 했다. 변태 같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분명히 힘들었지만 이런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매번 결승점에 도착했고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오래달리기 선수 생활을 했다.
육상부를 하면서 다져진 심폐 지구력 덕분일까? 나는 군대에서도 잘 뛰었다. (군대 이야기네, 미안합니다) 훈련소에는 300명 정도 되는 훈련생이 있다. 매일 아침 상의를 탈의하고 구보를 했고, 일주일에 한 번 체력측정을 했다. 나는 중대에서 1등, 훈련소에서는 2등이었다. 1등은 운동선수 출신 훈련생이었다.
나는 그저 ‘잘 뛴다는’ 이유로 중대장 추천을 받아 사단장 표창장을 받았다. 아니, 이게 웬 떡. 표창장 덕에 3박 4일 포상휴가도 받을 수 있었다. 3km를 12분 정도에 달렸다. 남들보다 몇 분, 몇 초 앞서서 들어왔는데 3박 4일 자유가 생겼다.
그렇게 내 삶에서 오래달리기에 대한 끈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함께 했다. 그러다가 더 늙기 전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보자고 결심했다. 동아마라톤에 접수하고 한 10일 정도 집 근처 운동장 트랙을 몇 바퀴 도는 정도의 연습을 했다.
두 다리가 땅바닥에 붙어있으면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죽기야 하겠어.
그땐 몰랐다. 젊음이라는 무기로 객기를 부렸다는 걸. 비극이자 희극의 서막이었다.
휘슬이 울렸을 땐, 훌륭한 ‘아마추어 마라토너’인 줄 알았지
42.195km. 자동차로 1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다. 가만히 앉아서 이동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왜 땀 흘리고 때론 고통을 참아가며 마라톤을 하는 걸까? 저마다 각자 달리는 이유가 있을 테다. 나는 그저 마라톤 완주 경험 1회, 이 타이틀을 갖고 싶었다. 그럴싸하지 않은가?
마라톤 완주 한 번 해봤어요.
운동 경력 20년. 좋은 성적은 아니더라도 완주는 손쉽게 할 줄 알았다. ‘힘들면 어쩌지?’ 정도의 고민은 했지만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랬으니 덜컥 마라톤 참가 접수를 하고 결제했겠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다리가 부러지면 두 손으로라도 걸어 들어오겠다는 심정이었다. 참으로 무식한 패기였다. 특별한 훈련도 없이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광화문으로 향했다.
이른 새벽부터 많은 러너들이 광화문에 모였다. 늦겨울인 데다가 새벽이라 날씨가 꽤 추웠다.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교회에 마라톤을 열 번 넘게 완주하신 집사님이 현장에 계셨고, 운 좋게도 함께 뛰기로 했다. 출발 총성이 울렸고 세종대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트 선수들이 먼저 출발했다. 마라톤을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나는 거의 맨 뒤에 배치되었고 총성이 울리고 한참 뒤에 뛰기 시작했다. (과거 마라톤 기록에 따라 출발 순서가 정해진다.)
초등학생 때 오래달리기 코치님이 가르쳐준 러닝 자세와 호흡법을 되뇌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양손은 가슴에 붙이고 흔드는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는다. 두 번 들이마시고 한 번 내뱉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흠흠 파. 흠흠 파.’ 초등학교 때 배운 러닝 자세와 호흡법을 기억하는 이유는 선생님이 잘 가르쳐서도,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도 아니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5km 정도 되었을까. 집사님과 함께 달리는데 느린 속도가 답답했다. 나는 집사님께 이별을 고했다. 언제까지 함께 갈 수 없다. 나는 젊음을 필두로 거침없이 땅을 박차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전력 질주는 아니었지만 허벅지와 발바닥에 힘이 꽤 들어갔고 요리조리 사람들을 제쳐가며 뛰었다. 청계천 부근을 뛰는 중이었는데 중간중간 지하철역 출입구가 보였다. 등번호를 단 선수들이 자연스레 지하철역으로 사라졌다. 화장실을 갔던 건지, 지하철을 타고 마라톤을 했던 건지, 집으로 돌아갔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중간중간 페이스메이커가 있다. 4시간, 4시간 30분, 5시간을 목표로 하는 페이스메이커 뒤에 수많은 러너들이 꼬리를 물고 달렸다. ‘나는 나만의 페이스로 달린다.’ 광고 문구가 아니다. 뛰면서 생각한 말이다. 몇 명의 페이스메이커를 앞질렀다. 즉 수많은 러너를 앞질렀다. 이 페이스로 결승점에 골인할 수만 있다면 훌륭한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될 수 있겠다는 가슴 벅찬 상상을 했다.
힘겨운 완주, 그 후에 남은 것
한참을 달렸다. 어느새 체력은 다 소진되었다. 총 뛴 거리는 20km. 비상이다. 더 이상 뛰지 못할 것 같았다. 지하철역으로 사라진 사람들처럼 나도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을 찾아봐야 할 노릇이었다.
포기도 용기라고 하는데, 도무지 포기할 수 없었다. 20km나 뛰어왔는데 집으로 돌아간다고? 돌아간다면 마라톤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땅을 치고 후회할 모습이 떠올랐다. 당장 그날 저녁만 해도 ‘#마라톤완주’ 해시태그와 함께 올라오는 사진을 보며 속이 쓰릴 게 뻔했다. 돌아갈 수 없었다. 뛰어왔던 것만큼 딱 한 번 더 뛰면 되었다. 무식과 패기와 의지가 만나 화학작용을 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허기진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간식이 마련된 장소로 갔더니 바나나와 초코파이, 포카리스웨트와 생수가 있었다. 바나나와 초코파이를 하나씩 우걱우걱 씹어 먹고 포카리스웨트를 들이켰다.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쉬었다 뛰었기 때문일까. 갑자기 당 충전이 되면서 몸이 무거워진 걸까. 몸이 천근만근이다. 속도도 현저히 느려졌고 몸 곳곳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쉬기 전에는 몰랐는데 왼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진다. 일단 다리는 두 개니까, 오른쪽 다리에 무게를 싣고 뛰기로 했다.
아, 그렇게 혼자만의 싸움을 치열하게 하는 중이었는데 누군가 옆에서 어깨를 톡톡 치고 가는 것 아닌가. 옆을 바라보니 아까 이별을 고했던 교회 집사님이시다. 러닝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미소도 그랬다. 복수였나, 집사님은 환히 웃으시면서 먼저 가셨다.
21km 이후부터는 추월만 당했다. 많은 이들이 나를 앞질러 갔다. 종종 걸어가는 이들도 보였다. 더 이상 나는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니고 경보도 아니었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자세로 뒤뚱뒤뚱 앞으로 전진했다.
이때부터는 정말 괴롭고 끔찍하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왼쪽 다리도 아프고 오른쪽 다리도 아프고 자세가 이상하다 보니 허리도 아픈 상태가 되었다. 잘못하다가는 기어서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20km까지 내 두 발로 능동적으로 뛰었다면 이후부터는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원래부터 목표는 완주였다. 운이 좋다면 5시간 내에 들어가서 기록도 남기고 증정 티셔츠도 받고 싶었다. (5시간을 초과하면 기록도 남지 않고 증정 티셔츠도 받지 못한다.) 다리를 질질 끌고서 겨우 도착지점인 잠실 종합운동장 근처에 도착했다.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 쳐주었고 응원해주었다.
다리가 저리기도 하고 힘이 안 들어가기도 했다. 무릎이 잘 굽혀지지도 않는, 참 이상한 느낌이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다. 결국 도착지점에 들어왔다.
4시간 48분. 목표했던 완주도 해냈고 5시간 안에 들어왔다. 기뻐서 방방 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이 그렇게 아팠는데 이상하게도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뭐라도 된 듯 으쓱했고 이제는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감에 가득 찼다.
마라톤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 다리를 절면서 걸었다. 또한 발바닥에 족저근막염이 생겼다. 족저근막염은 마라톤 완주의 훈장이었다. 무식한 달리기가 몸에 새긴 상처였다. 당시에는 별일 아니라고 여겨 방치해뒀는데 이후 2~3년간 나를 괴롭혔다. 오래 걷거나 운동을 하면 발바닥 근육이 당겼다.
그렇게 아프면서도 마라톤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던 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마라톤 완주 경험’이라는 소중한 경험이 생겼으니까. 어디서든 마라톤이나 달리기 이야기가 나오면 어깨에 힘을 주며 한마디 정도 거들먹거릴 수 있으니까.
마라톤에 대한 환상은 접어두자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데에 공감하지만 나는 굳이 마라톤에 인생까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기록되는 것처럼, 마라톤도 완주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다. 인생 비유는 미화다.
마라톤은 그저 오지게 힘든 오래달리기다. 목숨과 건강을 걸고서 할 필요도 없고 너무나 큰 의미부여를 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열심히 훈련한 러너들에게는 무리한 목표치가 아니라면 완주하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다고 한다. 다만 나처럼 훈련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달리는 사람이 인생을 운운할 확률이 높다. (사실 한동안 운운하고 다녔음을 고백한다.)
마라톤을 완주한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매번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마라톤 완주 경험을 써놓곤 했는데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준 사람은 없다. 마라톤은 그저 오지게 고통스러우면서도 쾌감을 안겨주는 이상한 달리기다. 마라톤을 잘 뛰는 사람이 인내심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만도 않다.
나는 실제 삶에서 그다지 잘 참는 성격이 아니다. 그때그때 화내고 하기 싫은 일은 포기도 잘하는 편이다. 나는 인내심이 좋아서 완주를 한 게 아니다. 억울함이 싫어서 참고 또 참으면서 뛰었다.
무식하게 몸을 망가뜨리며 질질 끌고 가는 마라톤. 다리를 하나 내어줄 생각마저 하게 하는 마라톤. 참 무식하게 달렸다. 요령과 훈련 없이 내 몸을 혹사시키며 달린 이 마라톤에 나는 자부심을 느껴도 되는 걸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자부심이 느껴지는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무식함을 뛰어넘어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가오가 육체를 지배한 것이다. 가오 때문이면 어떠랴. 이러나저러나 나는 해냈다.
나는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했고 마라톤 이야기가 나오면 슬쩍 한마디 할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허약체질이 마라톤을 완주했다. 더 이상 사람들은 나를 허약체질로 보지 않는다. 내겐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이상하게 자꾸 의미 부여를 하게 된다.
생각할수록 헛웃음 나는 패기의 추억이지만 이날의 경험은 내게 꽤 많은 도전을 안겨주었다. 이후 혼자서 비바람을 뚫고 후지산 정상에도 올랐고, 잘 다니던 온라인 서점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건축 현장으로 이직했다. 결국 현장 실무를 익히고 건축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아마도 무모한 도전 정신은 어쩌면 이날부터 발현된 것이리라.
하지만 분명히 말해둔다. 마라톤에 대한 환상은 버리는 게 좋다. 누군가 나처럼 무식과 패기만으로 마라톤을 완주할 욕심을 갖고 있다면 그 패기는 고이 접어두길 바란다. 그 고통은 나만 느끼는 걸로 족하다. 아니, 이 가오는 나 혼자만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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