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아가다보니 힘겨운 마음으로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그 말들은 거의 하나로 수렴하는 것 같다. ‘내 인생에 무슨 희망이 있겠어.’라는 것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괜찮은 사람도 묘하게 ‘희망이 없다.’라는 생각이나 마음 상태에 빠져들면 나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희망이라는 게 어찌보면 참 낡고 뻔한 단어지만, 그것만큼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없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설령 거의 망상에 가까울지언정, 스스로를 희망으로 물들이는 사람은 어떻게든 삶을 살아간다. 무언가 이룰 것이 있고 도달할 곳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그곳을 향해 나아간다. 그것 자체가 대개 삶이 된다. 성공한 사람들이 목표의식, 도전의식, 모험의식을 가지라고 그토록 부르짖지만, 사실 사람이 가진 가장 중요한 재능 중 하나는 희망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희망을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의 밑바닥에서도, 모두가 안쓰러워하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삶을 살아내 버리고, 종종 성공해 버리기도 한다.
2.
반면, 희망이 없다는 감각은 그에 대한 어떤 방어책 자체를 갖추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이 없다는 느낌은 그 자체로 거의 완결적이어서, 달리 그속에서 끄집어 내어 보충하고 보완할 방법이 잘 없다.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건 그냥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옆에서 이런저런 희망이 있지 않느냐, 이런 걸 해보면 어떻느냐, 이렇게 살아보면 좋지 않겠느냐, 너라면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너에겐 이런 게 어울리지 않겠느냐 아무리 속삭여주어도 스스로 ‘아니’라고 말하며 마음을 닫고 돌아서버리면 그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너무나도 철저한 주관적인 영역, 사방에 문이 없는 닫힌 방, 그 자체로만 완결되어 존재하는 영역이 ‘희망이 없는’ 영역이 아닌가 싶다.
사람이 어떤 식으로 그런 영역에 들어서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성장과정에서 겪은 좌절의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타고난 기질 때문일 수도 있고, 실제로 객관적인 상황과 환경이 그렇게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 분명한 것은, 이 시대가 점점 더 ‘희망 없는 느낌’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확실히 남들보다 더 희망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려 있다. 그 범위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일하고 아무리 공부해도, 지금 제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감각.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가 너무나도 버겁다는 느낌, 희망을 말하기엔 격차가 너무나도 벌어져 있다는 생각이 사회의 한쪽 측면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감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학원 다니면 토익 점수 오르고, 부동산 사놓으면 매년 몇 억씩 오르고, 지금 직장이 마음에 안 들면 워라밸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고, 외로우면 매주 소개팅 두 개씩 잡고, 심심하면 다양한 취미가 있는 동호회들을 찾으면 되는데 결국에는 다 행동력 부족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토익 학원 하나 결제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계산하고 포기해야 하는 일인지,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선택이 얼마나 엄청난 기회비용이 되어 선택 자체를 어렵게 하는 일인지 모른다. 한 발 내디디기는 커녕 움직이기만 해도 절벽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을지, 그래서 어떠한 결단도 내리기 어려워지는지를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을 것이다. 사방이 진퇴양난으로 막혀서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것 같은 막막함이 얼마나 엄청난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3.
누구에게도 희망 한줄 손쉽게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될 수 있다면 희망 전도사가 되고 싶기도 하건만, 어느 때는 희망을 말하는 것자체가 폭력이 된다고 느낄 때도 있다.
이렇게 살면 됩니다. 이런 희망을 가지면 됩니다. 다들 성공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간단하니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돈도 인기도 쓸어담는 세상이다. 하지만 과연 삶이 희망을 그리도 손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인지, 희망의 초점은 어디에 맞추고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말하기 쉽지 않다고 느낀다. 세상의 얼마나 많은 삶들이 거짓 희망으로 점철되어 있는가? 한편으로는 그나마 이런저런 희망을 담아 들고 나아가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희망을 꼭 끌어안고,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싶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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