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쉽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토록 좋은 설명이 있나 싶어서, 다소 오래된 글이지만 번역해보았습니다. 우리 회사의 리더들과 잠재 리더들도 읽어보면 좋겠어서 번역(약간 의역)했는데, 언젠가 리더가 되어야 하는 모든 분들께 드립니다.
리더쉽이라는 업무(Leadership as work)
리더쉽이라는 단어 때문에 난리다. 한 대형 은행의 HR 본부장이 정말 진지한 자세로 이런 전화 문의를 했다.
사람이 어떻게 카리스마를 발휘하는지에 대한 세미나를 부탁드려요.
리더와 리더의 ‘자질’에 대한 책, 아티클, 컨퍼런스 등이 넘쳐난다. 모든 대표이사가 기마부대장 혹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리더쉽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리더쉽이란 요새 생각하는 그런 이미지와는 당최 정체가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리더형 스타일’이나 ‘카리스마’와는 전혀 상관없다. 리더쉽이란 세속적이고, 비낭만적이며, 심지어 지루한 일이다. 그 핵심은 생산성이다.
우선 강조할 점은, 리더쉽이란 그 자체로 좋거나 선한 것은 아니다. 리더쉽이란 도구이다. 리더쉽을 통해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느냐가 결국 중요한 질문이다.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들 중에서도 이번 세기의 삼단 콤보인 스탈린, 히틀러, 마오를 넘어설 자들이 없다. 이들은 리더가 아닌 misleader로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악과 고통을 선사했다.
하지만 효율적인 리더쉽은 카리스마를 필요치 아니한다. 드와이트 아이즌하워, 조지 마셜, 해리 트루먼 등은 효율적인 리더들이었지만, 카리스마는 죽은 고등어와 비등한 수준이었다. 2차 대전 이후 서독을 일으켜 세운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1860년 일리노이 출신의 삐쩍 마르고 상스러운 촌뜨기 에이브리엄 링컨만큼 카리스마가 부족한 사람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세계대전 사이 기간의 처칠은 멘탈이 무너져 항상 빈정만 대는 양반으로, 놀라울 정도로 카리스마가 없었다. 결국엔 그의 말이 맞았다는 점이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카리스마란 리더들을 망하게 하는 길이다. 그들을 경직되게 하고, 실패를 상상 못 하게 만들고, 변화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게 스탈린, 히틀러, 그리고 마오에게 발생한 일이다. 같은 원리로, 역사학자들은 만약 알렉산더 대왕이 오래 살았다면 스스로 망가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카리스마의 유무는 결단코 리더의 효율성을 장담하지 않는다. 존 F. 케네디는 백악관을 장악한 역대 가장 카리스마 있는 위인이었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적은 성과를 남겼다.
‘리더형 스타일’이나 ‘리더형 인품’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윈스턴 처칠, 조지 마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버나드 몽고메리, 더글라스 맥아더 등은 모두 2차대전 중에 매우 두드러진 리더들이며 굉장히 효율적이었다.하지만 그 누구도 ‘리더형 스타일’이나 ‘리더형 인품’이라는 차원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없다.
일, 책임, 그리고 신뢰를 얻는 것
리더쉽이 카리스마도 스타일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일까? 첫 번째 지적할 부분은 리더쉽은 ‘업무(work)’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들이 끝없이 강조하던 점이다. 줄리어스 시저나 맥아더 장군이나, 몽고메리 육군 원수나, 사업의 영역에서 1920년부터 1955년까지 제너럴 모터스를 만들고 키워은 알프레드 슬론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한다.
효율적인 리더쉽의 핵심은 한 조직의 미션을 깊게 고민하고, 정의하고, 분명하게 눈에 띄게 공표하는 것이다. 리더는 목표를 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기준치를 정하고 유지되도록 한다. 물론 타협해야 할 때도 많다. 실제로 효율적인 리더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음을 정확하고도 고통스럽게 인지하고 있다(스탈린, 히틀러, 마오 등의 Misleader들이야 말로 그런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리더는 그러한 타협을 하기에 앞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가치 있는지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한다. 리더의 첫 번째 임무는 자신의 소리를 깨끗하게 울려 퍼지게 하는 나발수가 되는 것이다.
리더들과 misleader 들의 차이는 목표(goal)이다. 현실의 제약조건 (정치적, 경제적, 재무적, 혹은 인간 관계적 조건들) 속에서 타협해야만 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미션과 목표를 여전히 지킬 수 있는지, 아니면 그럴 때마다 목표에서 멀어지는지에 따라서 효율적인 리더가 결정된다. 그리고 리더가 몇 가지 원칙과 기준치를 강하게 지켜가며 솔선수범하는지, 아니면 자신은 원칙을 대충 무시하며 사는지에 따라서 리더는 추종자의 마음을 얻을지 아니면 대충 시간만 떼우는 위선자들에 둘러 쌓여 있을지 결정된다.
리더의 두 번째 의무는, 리더쉽을 지위와 특혜로 보지 않고 책임으로 보는 것이다. 효율적인 리더들은 대체로 관대하지 않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기 시작하면(그리고 일은 항상 잘못되기 시작한다) 그들은 남에게 분노를 터뜨리지 않는다.
윈스턴 처칠이 미션과 목표를 정확히 정해주는 리더의 전형이라면, 조지 마셜 장군은 책임감을 발휘하는 리더의 전형이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서민적인 표현을 보자.
The buck stops here.
최종 책임은 내가 집니다.
이 말만큼 책임감을 제대로 정의할 수 있을까.
※ 역주: buck은 포커 게임에서 패를 돌릴 차례가 된 사람 앞에 두는 물건. 차례, 혹은 책임을 의미한다.
효율적인 리더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최종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부하들이 권력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Misleader들은 2인자의 권력이 두려워 숙청을 하곤 한다. 반면 효율적인 리더들은 강력한 부하들을 원한다. 그들을 장려하고, 더 밀어주고, 그들을 통해 영광을 얻는다. 부하들의 실패를 바로 자신의 궁극적 책임이라고 인지하기 때문에, 부하들의 성공 역시 자신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절대로 위협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리더는 맥아더 장군처럼 병적으로 허영심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 링컨이나 트루먼처럼 콤플렉스다 싶어 보일 정도로 겸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셋 다 능력 있고 독립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길 바랐고, 그런 부하들을 격려했고 칭찬했고 승진시켰다.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도 유럽 전체를 인솔하던 시절 그렇게 사람을 썼다.
효율적인 리더들은 강력한 부하들의 리스크를 잘 인지하고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은 야망이 지나친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리더들도 능력 없는 부하만 데리고 있는 것보다 야망으로 인한 리스크가 훨씬 낫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더욱이 리더의 최악의 성적표는 그가 떠나자마자 조직이 무너지는 사태다. 스탈린 이후의 러시아에서, 혹은 너무나 많은 기업들에서 그렇듯이 말이다. 그래서 효율적인 리더란 리더쉽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람간의 에너지와 사람안의 비전임을 이해한다.
신뢰의 문제
효율적 리더의 마지막 의무란 신뢰를 얻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추종자가 없을 것이다. 리더의 정의란 바로 추종자가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신뢰하기 위해선 꼭 그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그와 동의할 필요도 없다. 신뢰란 리더가 자신의 본심을 말하고 있다는 확신이다. 신의 성실이라는 오래된 가치에 대한 믿음이다. 리더가 주창하는 가치와 리더의 행동은 일관적이어야 한다. 효율적인 리더쉽이란 똘똘한 것이 아니라 일관적인 데 있다.
전화 너머로 HR 본부장에게 이런 설명들을 하자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조금 후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그건 지난 수년간 ‘효율적인 매니저’에 대해 얘기해온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것 아닌가요?
바로 그거다.
원문: 천대표의 무형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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