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신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신비한 능력을 하사하여 우리가 각자 맨손으로 한 달에 천만 원어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해보자. 세계 반도체 시장의 대호황으로 우리는 앞으로 오십 년간 GDP 12만 불의 초일류 국가로 살 수 있게 된다 해보자. 전 국민이 반도체업에 종사하게 되는 셈이다. 지속 가능한 경제일까?
물론 다른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시급도 치솟고, 생활에 필수적이며 로컬한 사업들은 함께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상품은 막강한 수출 호황으로 얻은 외화로 수입해서 쓰는 것이 가능할 듯하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도 엄청나게 유입될 테지.
극단적이고 이론적인 상황이지만, 전 국민이 굳이 세상에 필요한 직업을 골고루 가질 필요가 없다는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글로벌 경제에서 굳이 우리나라에서 농사를 다 짓고 콜라캔도 다 만들고 석유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들 필요는 없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저렴한 것은 수입할 수 있다. 농사나 콜라캔을 만드는 것이나 원유 시추, 비행기 제작이 우리 경제의 본질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가끔 국민들이 투자나 사업에만 연연하면 ‘소는 누가 키우냐’며 다양한 노동자의 존재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특정한 소를 꼭 키워야 한다는 당위는 없잖은가. 내가 잘 키우는 것을 키우는 게 소위 국제무역에서의 비교우위론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목표: 국민들이 ‘자산 수익을 얻도록’ 돕는 것
논리를 조금 더 비약해보자. 만약 전 국민이 집에서 반도체가 펑펑 솟아나는 기계를 들일 수 있다고 해보자. 일을 안 해도 월 천만 원 어치 반도체가 샘솟는 기계다. 그런 게 존재한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불행해질까? 나는 당연히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게 가능한 일일까?
이익이 발생하는 기계, 이것이야말로 ‘자산’의 정의다. 월 천만 원이라면 연 일억 이천만 원, 그 정도의 순익을 일으키려면 대략 그 15배인 18억이 필요하다고 가정해 보자. 전 국민이 18억이 있으면 위의 소설 같은 이야기는 참이 된다. 아니 그 십 분의 일인 1.8억만 있어도, 전 국민이 집에서 대략 백만 원이 솟아나는 신비한 기계를 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행복한 케이스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국가적 과제 중 하나는, 전 국민이 저런 기계를 집에 들이게 하는 것이다. 자산을 모으고, 자산이 점차 더 큰 이득을 가져다주고, 근로에서 해방되게 도와주거나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근로를 하게 만드는 것. 그게 자본주의에서의 가장 아름다운 이상향이 아닌가 한다.
반대로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실패는, 국민들이 저러한 자산을 얻지 못하고 평생 근로자로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근로의 의미가 아름답긴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갈망하는 근로를 했을 때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쉽고 편하다는 뜻이 아니다. 힘들고 고되더라도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 자신에게 뿌듯함을 주는 그런 근로가 존재한다. 자신의 업이라고 느낄 만한 일 말이다. 반면에 강제된 노역은 노역일 뿐, 제아무리 멘탈이 좋아도 그것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업을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각자의 복에 의존해야 한다. 그 길보다야 국민이 자산을 쌓아가는 즐거움을 배우는 것이 더 빠른 길 아닐까 싶다.
자본만 자본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이 자산을 가지도록 장려해야 한다
한국에선 자산가를 삐뚤어지게 보는 경향이 있다. 국내의 한정된 자원을 혼자서 많이 차지하려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부동산은 분명 국내의 제한된 자원에 대한 점유력이라는 점에서 그런 면이 없잖아 있기도 하고, 국내 자산가들이 부동산 중심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느낌 때문에 그런 인상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수출로 인한 부가 더 많지 않을까? 수출할 수 있는 사업 자산이라면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 요즘 시대에 수출 아닌 것이 어디 있으며, 국내에서만 사업한다고 한들 그게 뭐 대단한 독점력이 있겠는가.
아예 해외 자산에 투자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국내의 생산시설만 가져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우리 자산을 통해 전 세계 경제의 호황을 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국내의 밀폐된 경제라면 모를까, 어차피 열린 경제라면야 우리 국민이 행복해지기 위해 온갖 자산의 획득을 부추겨야 한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자산가가 되는 사회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이런 철학이 한때 극우 신자유주의의 철학과 흡사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는 자본만 자본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이 자산을 가지게 장려하는 것이다. 남에게 빼앗아 주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것을 추구하고 달성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생산요소의 공동 점유를 가능케 만든다는 점에선 오히려 공산주의가 꿈꾸는 이상세계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근로에 대한 당위를 내려놓고, 이 자동화 시대에서야 비로소 가능한 세상을 꿈꿔보면 두 이념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면이 있다.
늘 이야기하지만 우리 문화는 여전히 전 국민이 자산가가 되는 것에 사춘기적인 내적 고뇌를 가지고 있다. 자산가가 된다는 것은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닐까? 남의 것을 빼앗는 일이 아닐까? 소는 누가 키우지? 근로는 신성한 것이 아닌가? 대다수의 국민이 근로자인 현 상황에서 자산을 이야기하면 근로자들이 슬퍼하지 않을까?
아니다… 평생 남의 자산을 위해 일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남이 빼앗아갈 수 없는 나의 소득요인, 즉 ‘내 자산’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시장에선 내 계좌에 들어있는 내 자산만이 그것을 담보하는 법이다. 혹은 무형의 자산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인위적인 법으로 근로소득을 지켜주려고 몸부림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차피 남의 소를 키우는 과정은 일시적이다.
100조원 경기부양보다, 지속 가능한 연평균 7%의 수익
정책적 답도 제안해 보겠다. 10세 이상 전 국민에게 저축액 2억까지 향후 자본수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준다고 해보자. 더 나아가 국민의 저축액에 대해 10%씩 인센티브까지 준다고 해보자.
온갖 종류의 투자 상품을 다 넣을 수 있는 계좌를 만들어주자. 더 부추기려면 그 안에서 주택 청약도 변액생명보험도 국민연금도 퇴직연금도 모조리 가능하게 해버리자. 전 국민이 하나의 계좌에 경쟁적으로 돈을 쏟아 넣고 자산의 맛을 알게 도와주자. 그에 따르는 비용과 리스크는 모두 부차적이다. 우리가 21세기에 걸맞는 선진국이 되려면 이런 수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세수는 어떻게 하냐고 묻는 이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이자소득세와 양도세를 합치면 20조 원 수준이다. 2억 이하의 자금에 대해서는 어차피 세수가 별로 안 들어오니, 많아야 2조 원 수준의 세수로 가능하지 싶다.
극단적으로 5000만 국민이 10년에 걸쳐 각자 계좌에 2억씩 꽉 채워 1경 원의 자산을 모았다고 해보자. 여기에 10% 인센티브까지 주었다 치면, 연간 100조 원씩을 국민 계좌에 퍼부은 셈이다. 그러나 그런 게 실제로 가능하다면 전 국민이 연평균 7%의 수익, 즉 연평균 700조 원의 자본 소득을 가져가게 된다. 지속 가능한 수익으로 말이다.
이는 100조 원을 경기 부양으로 쓰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시나리오다. 4인 가족 당 평균 5600만원의 자본수익이 발생한다는 것! 이렇게만 된다면야 지상천국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연간 정부 예산이 500조 원을 넘었는데 지상낙원을 만들기 위해 20%의 예산을 투입한다면야 무엇이 문제랴.
물론 실제로 국민이 연간 2천만 원씩 10년을 저축할 여유는 부족하다. 저런 이상적인 상황을 미리 상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장려하는 모습이야 보일 수 있는 것 아닐까 한다. 문화가 전부 바뀌리라 생각한다.
원문: 불릴레오 천영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