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에 한번 시중 은행 사내 벤처에서 진행하는 MBA 과정에서 전략 강의를 진행한다. 전략이라는 것이 전략 전문가인 나만 재미있지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재미없는 소재다. 강의를 들으러 오는 이들은 절반이 대학생, 절반이 직장인이다. 경험이 적은 대학생들이 오히려 관심이 많은 반면에 직장인들은 본인 회사 전략에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내 고민은 어떻게 하면 알기 쉬우면서 재미있고 동시에 ‘전략이란 이런 것이야!’라고 느끼게 해 주느냐다. 그러다 최근 강의를 준비하면서 우연히 작년에 한 연구기관에서 발간한 BTS 성공 요인 보고서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한 꺼풀을 벗기고 보니 BTS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야 말로 ‘전략이란 이런 것이야!’의 교과서와 같은 케이스였다.
잠시 재미없는 얘기를 하자면, 전략은 본래 군사에서 쓰는 표현으로 ‘특정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행동 계획’을 가리킨다. 전략(Strategy)의 어원 자체가 그리스어 ‘Stretegos’인데 장군의 기술(the art of the general)이란 의미다. 장군은 작은 싸움에 집착하기보다 전체 상황을 고려해 큰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략을 수립한다.
그런데 직장인 대부분은 이런 전략에 관심 없다. 외국계 기업 전략 매니저로 일할 때 다른 팀 직원들과 처음 점심 먹는 자리에서 늘 듣는 말들이 있다.
전략 매니저는 어떤 일 해요?
머리 쓰는 거 딱 질색인데 저는 못 할 거 같아요.
임원들하고 일하는 거 피곤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전략에 대해서 한참을 신나게 얘기했다. 하지만 돌아서서 늘 후회했다. 상대방의 얼굴에서 ‘여전히 잘 모르겠는데?’라는 표정을 읽었기 때문이다. 전략 전문가인 나도 이처럼 전략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데, BTS와 빅히트 케이스가 이 모든 것을 한 방에 해결해줬다.
BTS는 왜 성공했을까?
어리석은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전략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BTS는 빅히트의 전략으로 성공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감히’라고 쓴 것은 많은 아미 분들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빅히트의 경영전략을 살펴보자.
대중들이 BTS의 노래를 듣고 아미가 되듯이, 전략 전문가로서 나는 이 경영전략을 보고 빅히트의 팬이 되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너무나 명확히 제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략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쉽게 이해되고 BTS가 걸어온 길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략은 이래야 한다. 화려한 수식어, 어려운 표현들, 멋져 보이는 장표로 꾸며놓은 것이 전략이 아니다.
무엇보다 빅히트의 미션인 ‘음악, 아티스트를 통한 위로, 감동’이 너무나 명확하다. 그리고 ‘콘텐츠’와 ‘팬’에 가치를 두는 것도 한 걸음, 두 걸음 앞서 나간 전략이다. 이 미션과 가치를 추구했을 때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플랫폼 기업이라는 목표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자, 이처럼 전략이 너무나 명확하게 수립되면 결과는 따라오게 마련이다. 여기 그 증거가 있다. 아래는 KBS 월드 라디오에서 2만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BTS 경쟁력 관련 설문조사 결과다.
놀랍게도 빅히트의 미션인 ‘음악, 아티스트를 통한 위로, 감동’과 팬들이 BTS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은 ‘노래 가사(메시지)’와 일치한다. 전략 전문가 입장에서 빅히트가 전략 수립 후 얼마나 치열하게 움직였을지 상상이 간다. 대략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 전략 수립 후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액션 플랜을 정한다.
- 모든 주요 결정 사항은 전략을 기준으로 정한다.
- 전략 달성을 위해 회사 차원에서 부서별로 할 일을 정의한다.
- 인력과 자원 역시 전략에 맞춰 배분된다.
- 부서 간 협력 시 평소 같으면 의사 결정이 어려울 수 있지만 전략이 명확하기에 빠르게 진행된다.
이렇게 BTS와 빅히트는 전략을 수립한 방향 그대로 나아갔다. 빅히트 전략의 승리, BTS의 승리다. 전략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전략은 전문가만 아는 것이 아니며, 임원들만 아는 것도 아니다. 직장인 모두가 전략이 무엇인지 알길 바란다. 회사의 전략을 알면 뭐가 좋을까? 하나만 말하자면, 자신이 현재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 분명한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회사 전략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그리고 회사의 미션과 가치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합하게 설정되어 있는 지도 살펴보자. 여기까지만 해도 ‘회사의 전략을 파악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2019년 4월에 빅히트의 치프 스태프(Chief Staff) 포지션에 지원했다 떨어진 적이 있다. 당시 두 명이었던 빅히트 경영진(Chief)의 전략적 파트너 역할을 하는 포지션이었다. 그들의 전략과 빛나는 성과를 보니 합격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원문: Mark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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