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을 키운 ‘빅히트’에게 배우는 ‘매니지먼트’ 기술 ①」에서는 1) ‘아이돌 기획사’가 아닌 ‘콘텐츠 제작사’로서 보는 관점, 2) 방시혁 대표로부터 배운 자율성과 팀 중심 커뮤니케이션의 매니지먼트를 살펴봤습니다. 이 글에서는 1) 아이돌에게 ‘시간’을 확보해주는 빅히트 2)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 3) 세계관을 만드는 빅히트의 IP 사업과 마케팅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티스트의 시간을 확보해주는 스케줄링
일반적인 아이돌의 스케줄을 보면 그야말로 살인적입니다. 2-3시간 잘 정도로 빡빡하게 돌아가는 아이돌의 일정은 안타깝게도 소속사의 수익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랜 연습 기간 투자한 교육 비용을 모두 회수를 해야 하고, 앨범 작업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돈이 되는 일정을 부지런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마진이 많이 남는 것으로 알려진 콘서트의 경우 웬만한 모객 파워가 있지 않고서는 개최 자체가 힘들다 보니 방송 출연, 행사 등으로 수익을 거둘 수밖에 없죠. 들어간 비용만큼 회수하기 위해 소속사도 어쩔 수 없이 바쁜 일정을 택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방탄소년단은 어떨까요. 1편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빅히트는 아티스트의 시간 3분의 1만 직접적인 수익 창출 일정으로 분배합니다. 콘서트, 광고 촬영 등에 아티스트가 쓰는 시간을 3분의 1로 제한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앨범 작업을 하거나 팬 콘텐츠를 만드는 시간으로 사용하도록 합니다.
방탄소년단을 모시기 위해 백지수표도 주저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광고 업계의 러브콜을 모두 받아든다면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빅히트는 이런 러브콜을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아티스트의 시간을 확보해주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아티스트의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은 큰 의미입니다. 우선은 컨디션과 멘탈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도 사람이다 보니 바쁜 일정에 심신이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더 잘하기 위해 충분히 고민 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듭니다. 그리고 빠르게 대중에게 소비되면서 지속 가능성을 갖추기도 쉽지 않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하지만, 무리하게 젓다가 노가 부러져서 어느 곳에도 가지 못한 채 멈춰버린 아티스트가 지금까지 너무 많았습니다.
빅히트는 아티스트의 시간을 확보해줍니다. 멤버들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며 개인 멤버 일정은 지양합니다. 팀 단위로 움직이면서 방탄소년단 브랜드에 꼭 맞는 활동만 합니다. 그 덕분에 방탄소년단 SNS에는 각 멤버들이 휴식 시간을 보내는 인증샷이 빈번하게 올라옵니다.
전시를 관람하는 RM, 자전거를 타는 제이홉, 게임하는 정국 등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쁠 것 같은 월드 클래스 아이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때도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이 휴식은 결국 늘 동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에게 정적인 시간을 선사하며 활동성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해주고 이는 결국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결됩니다.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의 두 번째 중요한 의미는 성장입니다. 국내에서 한 해에 새로 데뷔하는 아이돌은 100개 그룹이 넘습니다. 아이돌의 생명력이 짧은 이유는 치열한 경쟁도 있지만 스스로가 발전할 환경이 조성되지 못해서이기도 합니다. 발전과 성장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확보하면서 방탄소년단 멤버는 성장과 발전을 할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안무 팀장 제이홉은 프로듀싱 경험이 있는 RM과 슈가의 도움으로 작곡 공부를 했고, 그 결과 믹스 테이프를 단독으로 출시하는 성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보컬을 담당한 진 역시 작곡을 공부해 데뷔 이후 첫 자작곡인 〈이 밤〉을 선보였습니다. 정국은 영상 편집을 공부하면서 골든클로젯필름(G.C.F)라는 자체 영상 브랜드를 만들어 시리즈로 선보입니다.
이 같은 성장과 발전이 가능한 이유는 모두 시간의 확보 덕분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수익에 현혹됐다면 아이돌 생태계에서 내리막으로 불리는 마의 7년 로드에 방탄소년단도 함께 했을 것입니다. 수익을 버리고 시간을 확보해주자 아티스트는 음악적, 내적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지난 7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 7년 동안에도 팬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콘텐츠 창작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위기에 돋보이는 관리 능력
소속사는 좋은 일이 생길 때보다 좋지 못한 일에 대응해야 할 때 진가가 드러납니다. 아티스트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위기에 소속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아티스트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일명 리스크 관리 능력이 소속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죠.
평탄한 꽃길만 걸어온 걸로 보이는 방탄소년단에게도 몇 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위기는 여혐 논란 가사였습니다. 멤버 RM이 2016년 낸 믹스 테이프가 사건의 시초였는데요. 수록곡 농담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가사를 써서 여혐 논란에 휩싸였죠. 팬들은 반발했고 이에 RM과 빅히트는 발 빠르게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멤버와 소속사는 노력했습니다. RM은 페미니즘의 교과서로 불리는, 미국 작가 토니 포터가 쓴 『맨박스(Manbox)』를 정독했고 소속사는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여성학 교수에게 가사를 의뢰해서 젠더 감수성에 어긋나지 않는지 검수를 의뢰합니다. 단순한 사과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파악한 뒤 이를 멤버와 소속사가 함께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실천한 것입니다.
빅히트의 대처가 빛난 리스크 대응 사례는 또 있습니다. BTS 다큐멘터리 영화 번 더 스테이지 예고편에서 멤버 지민이 입고 나온 티셔츠의 문구와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인데요. 티셔츠에는 Our History라는 글자와 함께 원폭 사진이 함께 게재되어 있었습니다. 원폭으로 인해 고통받는 일본 국민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일본 극우의 공격을 받고 일본 TV 방송의 출연이 모두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빅히트는 이와 같은 여론이 발생하자 의도적인 것이 절대 아니며 그럼에도 불편함을 느끼셨을 수 있는 분들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 뒤 이어진 문구가 빅히트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는데요.
상기 사안들에 대한 책임은 소속사에서 세부적인 지원을 하지 못한 빅히트에 있으며 당사 소속 아티스트들은 책임과 관련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힙니다.
아티스트에게 향하는 비난을 전적으로 소속사에 돌리고 아티스트와 사건을 명확하게 분리하며 아티스트 비난 여론을 잠재운 것입니다. 게다가 단순한 보도 자료 배포에 그친 것이 아니라 원폭피해자협회 관계자들을 접촉해 제기된 문제를 설명하며 사과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해당 문제를 제기했던 Simon Wiesenthal Center에는 상황을 직접 설명한 뒤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사과를 담은 서한을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문제를 제기했던 단체는 비난을 멈췄고 오히려 이 단체는 방탄소년단의 사과를 환영한다는 이례적인 입장 발표를 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이슈가 생기면 발 빠르게 사과하고 해당 이슈가 발생하게 된 상세한 과정을 공유했습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이슈를 최소화하기 위한 본질적인 대응 방안을 찾으며 위기에 오히려 더 빛나는 매니지먼트를 선보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위기에 부족한 대응으로 오히려 비난 여론이 더 커지기만 했던 수많은 사례 속에서 참고할만한 매니지먼트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양한 IP 사업으로 BTS 세계관을 만들다
팬들이 빅히트를 부를 때 쓰는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팬잘알’입니다. 팬을 너무 잘 안다는 뜻의 이 말은 빅히트가 선보이는 다양한 IP 사업 때문에 나오게 됐습니다. 빅히는 방탄소년단이라는 브랜드, 즉 IP를 적극 활용하여 팬들이 원하는 것들을 새롭게 제안합니다. 그래서 팬들은 빅히트의 마케팅을 보면서 “빅히트가 또 일냈다.” “빅히트 대단하다” “빅히트 직원들 열일한다” 등의 언급을 합니다.
확장하는 영역에는 제한이 없어 보입니다. 캐릭터(BT21), 웹툰(네이버 웹툰 화양연화 Pt.0 ), 게임(넷마블 BTS World), 글로벌 캠페인(아미피디아) 등으로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다각도로 생산하죠. 다른 기획사가 주로 음원과 굿즈 판매에 그치는 것과는 달리 콘텐츠 영역을 횡종으로 넘나들면서 지금까지의 기획사가 하지 않던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확장은 방탄소년단의 가치를 높여주며 그들을 아티스트로 포지셔닝하거나 세계관을 매력적으로 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캐릭터입니다. 2017년 가을에 라인프렌즈와 함께 런칭한 글로벌 캐릭터 사업 BT21은 국내 아이돌이 그린 캐릭터가 글로벌 캐릭터가 된 첫 사례입니다. 각 멤버가 직접 그린 캐릭터는 명실상부 인기 캐릭터가 되었고 캐릭터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가 직접 그려 탄생한 캐릭터에 열광했고, 방탄소년단은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뛰어넘는 확실한 모멘텀을 만들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앨범 콘셉트기도 했던 화양연화를 웹툰으로 선보인 것도 참신한 시도였습니다. 네이버 웹툰에서 선보인 이번 콘텐츠를 통해 아티스트는 자신들의 앨범 세계관을, 10대가 제일 좋아하는 포맷에서 알릴 수 있었습니다. 팬들은 각 멤버를 매력적인 그림체로 접했고 앨범 세계관의 이해도를 높이면서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에 빠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BTS의 IP 사업의 화룡정점은 바로 모바일 게임입니다. 넷마블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만들어진 BTS WOLRD 게임인데요. BTS를 데뷔부터 육성시키는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실제 BTS의 성장 스토리가 담겨 있는 게임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요. 정식 출시(2019년 6월 26일) 전부터 진행된 사전 등록의 열기와 멤버들이 직접 부른 게임 OST 공개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고 BTS를 모바일 게임으로 즐기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캐릭터, 웹툰, 게임 등에 BTS 스토리를 접목해 팬들이 아티스트를 즐길 수 있는 더 다양한 거리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BTS라는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을 했죠. 지금까지의 아이돌 기획사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영역을 넘나드는 IP 사업과 마케팅으로 아티스트의 스토리와 세계관이 더 풍성해지는 매니지먼트를 선보였습니다. 자연스럽게 BTS의 가치, 그리고 빅히트의 가치도 올라갔죠.
마치며
두 편을 통해 살펴본 빅히트의 매니지먼트는 타 기획사의 매니지먼트와 살짝 달랐습니다. 기획사의 역할을 아이돌을 관리하는 곳으로 생각하기보다, 아이돌과 팬을 이어주는 접점으로 생각하며 팬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사 관점이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팬, 그리고 팬에게 선보이는 팬 콘텐츠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아티스트, 그리고 직원들이 합의했고 그렇게 다 함께 같은 방향으로 가면서 팬을 위한 매니지먼트를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빅히트에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의 돈이 되는 활동보다는 아티스트의 꾸준한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매니지먼트를 하면서, 결국은 업의 본질인 음악적 성장을 유도하고 이로 인해 더 많은 팬을 모으며 기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단단히 쌓은 브랜드를 더 많은 영역으로 확장, 모험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 세계를 BTS WORLD로 만드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태도와 자세를 갖춘 아티스트가 되도록 자율성과 책임성을 가르치고 팀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및 대화로 끈끈한 팀워크를 만들며 늘 감사하는 자세를 갖도록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멤버들의 좋은 인성이 제일 큰 요인이겠지만 빅히트가 BTS를 어떻게 매니지먼트하는지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들이 함께 보낸 지난 7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닐 정도로 서로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앞으로 함께 보내기로 약속한 7년도 서로를 향한 강한 믿음이 없다면 버티기 힘들 물리적인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BTS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끈끈한 우정을 더 자주,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