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강의를 할 때였다. 여러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조사해서 조별로 발표하도록 했다. 여러 요소 중에 ‘핵심 자원’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모든 조에서 ‘데이터 전문가’를 포함시켰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었던 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 중에 데이터 전문가는 단 한 명뿐이었다. 나는 ‘현실이 이렇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직장인은 데이터를 얼마나 가까이해야 할까?
1. 너도 나도 이제는 데이터 공부해야 한다.
데이터는 이과 출신이 문과 출신보다 더 잘하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다. 실제 데이터를 많이 쓰는 직군도 문과 계통인 마케팅, 경영, 통계 등이다. 데이터는 우리에게 꽤나 친숙하지만 그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예를 들어, 독일계 회사에서 전략/기획 매니저로 8년간 일했을 때 나에게 데이터란 ‘엑셀 파일에 있는 숫자’였다. 대부분은 매출, 원가와 같은 재무, 영업 데이터였고, 조금 말랑말랑했던 종류는 고객 서베이를 통해 얻은 정량적, 정성적 데이터 정도였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단순한 데이터를 다루면서도 크게 두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다. 우선, 원본 데이터(Raw Data)의 품질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원본 데이터에 하루치 데이터가 중복되어 있는 게 발견되면, 이후의 모든 결과물의 신뢰도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떨어진다. 다음으로는 제대로 수집된 데이터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봐야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쉬운 예로, 단순한 데이터지만 비교할 대상이 있으면 추이(트렌드)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해지고, 정량적인 데이터 결과가 정성적인 데이터와 일치하는 포인트를 찾는다면 제안 시 굉장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불과 1, 2년 전까지는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했다. 본인이 어느 부서에 있든, 데이터를 직접 다루든 그렇지 않든 이 정도의 감각만 있어도 주위로부터 스마트하다고 인정받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대체 어떻게 변했을까?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2020년 7월 30일 기준으로 링크드인에 올라와 있는 채용 공고 2건을 살펴봤다. 하나는 전 직장의 포지션과 거의 일치하는 쿠팡의 전략기획 매니저 포지션이고, 다른 하나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카카오페이의 글로벌 마케팅 포지션이다. 이 두 포지션에 데이터는 얼마나 필요한 존재일까?
- 쿠팡 – Principal Strategic Planning (링크)
쿠팡의 전략기획 매니저 포지션이다. 유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곳은 Preferred Qualifications, 우대사항으로 3가지가 명시되었다.
- MBA: 전략기획 포지션이니 당연히 플러스 요인
- 이커머스와 리테일 경력: 관련 산업 경력이 있으면 당연히 플러스 요인. 필수사항이 아닌 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전략기획 포지션은 방법론만 알면 산업군에 크게 매이지 않기 때문에 우대사항이다.
- SQL/Tableau/Alteryx: 모두 데이터 관련 항목. SQL(Structured Query Language)은 데이터를 원하는 형태로 추출하는데 유용한 도구, Tableau(태블로)는 데이터 시각화 및 분석 도구, Alteryx(알터릭스)는 예측 분석을 자동화하는 도구다. 이 세 가지 모두 개발자가 아니라 일반 직장인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이다.
링크드인을 통해서 입사 지원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대사항은 우대가 아니라 필수인 경우가 많다. 인기 있는 포지션은 지원자가 몰리게 마련이고, 때문에 우대와 필수에 구분이 없다. 결국 쿠팡의 전략기획 매니저는 데이터 언어와 시각화 도구와 예측 분석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회사 내에서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 카카오페이 – Global Marketing Manager (링크)
카카오페이의 글로벌 마케팅 매니저 포지션이다. 마찬가지로 두 가지 우대사항이 있다.
- 간편결제 해외 마케팅 관련 유경험자: 카카오가 아니라 카카오페이여서 당연한 우대사항이다
- SQL을 활용하여 데이터 조회/추출 가능: 앞에서 설명한 대로 SQL은 데이터를 원하는 대로 추출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다. 이제는 마케터도 SQL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본인이 원하는 형태로 데이터를 추출해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본인이 SQL을 못하면, 사내에 할 줄 아는 사람에게 그때그때 부탁해야 하는데 속도면에서도 또 다양성 측면에서도 SQL을 할 줄 아는 사람과 갈수록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직장인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나 마케터 모임에 가보면 가장 핫한 테마가 다름 아닌 데이터다. 내가 운영 파트너(Operation Partner)로 활동하고 있는 HFK(HBR 포럼 코리아)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세션은 다름 아닌 데이터 관련한 것들이다.
데이터는 처음에 혼자 공부하면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감도 없다. 따라서 재미있으면서도 실제적인 실력을 쌓을 수 있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콘텐츠도 많아서 검색하면 SQL이나 구글 애널리틱스와 같은 다양한 도구를 배울 수 있는 영상이나 앱이 많다.
데이터 공부에 대한 자극제나 큰 방향이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본인이 현재 가장 이직하고 싶은 회사의 포지션의 링크드인 JD(Job Description)을 살펴봐라. 어디엔가 데이터에 관한 요구사항이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그것을 공부하면 된다. 혹시 회사에 데이터 도구를 다루는 부서나 직원이 있다면 내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찾아가서 물어봐라. ‘무엇부터 공부하면 되나요?’
2. 데이터 드리븐(Data Driven)의 개념만큼은 알자.
데이터 드리븐 마케팅은 충분한 데이터를 수집 및 분석해서 얻은 결과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 활동이다.
데이터 드리븐(Data Driven). 트렌드에 관심 있는 직장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용어다. 대개의 경우 데이터 드리븐 마케팅(Data Driven Marketing), 데이터 드리븐 커뮤니케이션(Data Driven Communication), 데이터 드리븐 오퍼레이션(Data Driven Operation), 데이터 드리븐 디시전 메이킹(Data Driven Decision Making) 등으로 합성해 쓰인다.
대체 Data Driven이 뭔가요? 데이터 분석 컨설팅 경험에 비춰 짧게 설명하면, 데이터 드리븐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결과를 가지고 특정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데이터 드리븐 마케팅’은 ‘임원의 지시나 담당자의 경험에 기초하지 않고, 충분한 데이터를 수집 및 분석해서 얻은 결과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 활동’이다.
마찬가지로 ‘데이터 드리븐 디시전 메이킹’은 회사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의사 결정 순간에 이해 관계자들이 목소리 높여 논쟁하기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자료를 가지고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는 활동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글로벌 회사들이나 대기업들은 이와 관련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제대로 된 데이터 드리븐이 되기 위해서 선결되어야 하는 과제들이 많기 때문에 오랜 기간에 걸쳐 단계별로 이뤄지며, 경영진의 뚝심과 구성원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데이터 드리븐 마케팅을 예로 들어보자. 웹, 앱, 오프라인 등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가운데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할 것인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 무작성 데이터를 많이 수집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그에 따른 비용과 시간이 결코 적지 않기 대문이다. 큰 그림을 그리는 부분이 간과되면 1, 2년 뒤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데이터가 수집되면 이제는 데이터 분석하기 위해 여러 방법론을 적용한다. 분석을 위한 도구들은 구글, 어도비를 비롯한 회사 솔루션이 있으며, 회사 규모가 작다면 무료 버전을 사용해도 전혀 지장 없다. 데이터 분석과 동시에 마케팅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A/B 테스트를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후 마케팅 액션 플랜이 정해지고 예산이 실제 투입되면 데이터 드리븐 마케팅의 한 사이클이 이뤄진다.
데이터 드리븐 커뮤니케이션은 이보다 더 큰 개념으로 앞서 소개한 프로세스가 전사적인 문화로 장착되는 개념이다. 모든 유관 부서가 동일한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나 인사이트를 가지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다. 해외법인까지 있는 글로벌 회사라면 최소 2, 3년이 소요되는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데이터 드리븐이 이전의 아날로그적인 부분들과 서로 충돌하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데이터를 분석할 때 아날로그적인 경험 등이 인사이트를 끌어내는 데 좋은 소스로 사용된다. 데이터만 있다고 저절로 분석되지는 않는다. 분석 도구는 친절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바로 각자의 아날로그적인 능력이다.
3. 걱정마라, 모두가 고민하고 있다.
데이터라는 용어는 오래되었는데, 요즘 데이터는 또 다른 데이터인가요?
나는 이 질문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데이터는 모두에게 익숙한 단어다. 회사에는 과거에도 현재처럼 수많은 데이터가 존재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한 걸까? 왜 어느 순간 데이터가 나에게 훅 다가온 것 같고, 나는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 걸까?
가장 큰 기폭제는 웹과 앱의 발전이다. 이 둘의 발전으로 인해 데이터의 양이 기하급수로 증가했다. 그러다 보니 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잘 수집하고 분석하고 활용할 줄 아는 회사가 엄청난 힘을 갖게 되었고, 당연히 그런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내가 현재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사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크게 다음 3가지 질문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보길 추천한다.
하나. 우리 회사에서 데이터는 Main인가 Sub인가?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다. 일례로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데이터가 당연히 Main일 줄 알고 이직했다 몇 달 되지 않아서 데이터가 여전히 Sub인 것을 발견하고 나에게 SOS를 보내온 후배가 있었다. 아직도 국내 회사에서는 경영진이 데이터에 깨어 있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만약 CEO가 데이터를 강조한다면 앞서 언급한 대로 공부를 시작해라. 그 반대라면 아직 유예기간이 있다.
둘. 내가 속한 산업군에서 데이터의 가치가 어떠한가?
아래는 BCG에서 조사한 2019년 산업별 Data Maturity 조사 자료다. (링크)
본인이 속한 산업을 확인해보기 바란다. 그래프만 보면 상당히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3년간 약 19% 개선되었을 뿐, 500점 만점에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프가 0점이 아닌 200점부터 시작) 산업별 수치를 보면 흥미로운데, 에너지와 산업용품에서 가장 큰 발전이 있는 반면 공공부문은 거의 제자리 수준이다.
셋. 나의 Career Goal에서 데이터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
잘 모르겠다면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지인 중에 에어비앤비 본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인 유호현님이 있다. 현재는 OXOpolitics를 창업해 안착 중이다. OXO의 로직은 심플하다. 여러 사회 이슈에 대해 O, X로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면 자신에게 맞는 정당, 언론, 미디어가 매칭된다. 참여 인원이 1만 명 이상 넘어가다 보니 전체 지형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궁극적으로는 거리에 모이지 않아도 본인 의견을 낼 수 있고, 매칭 되는 정당, 정치인, 언론, 미디어를 후원할 수 있다.
유호현님의 경우는 에어비앤비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Career Goal은 OXO 모델에 있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모아 큰 그림을 그려야 하기에 데이터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호현님의 Career Goal에서 데이터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각자의 Career Goal을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장담하건대 데이터의 가치는 상당하며, 그걸 모르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직장인은 데이터를 얼마나 가까이해야 할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데이터를 멀리해도 괜찮은 산업이나 포지션은 빠른 속도로 설 곳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원문: Mark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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