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사람에 대한 강한 믿음이 하나 있다. 바로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두 하나 이상의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차이는 누구는 재능을 강점으로 만들고, 누구는 재능을 썩힌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다
직장에서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면 재능이 보인다. 일을 잘하는 직원과 못하는 직원도, 성과를 내는 직원도 그렇지 못하는 직원도, 모두 재능이 있다.
A 차장은 젊은 직원들은 잘 모르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본인 입으로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어서 나도 한 임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하루는 고객인 대형병원 의사를 만났는데, 리서치 관련한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돌아왔다. 도서관으로 퇴근을 한 그녀는 밤을 새워서 논문을 읽고 다음 날 아침 그 의사를 찾아가 본인이 파악한 리서치 결과를 바탕으로 고객을 논리적으로 설득시켜 버렸다. 이런 그녀의 재능은 승부욕이다.
B 과장은 아직도 자립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지 못한다. 팀장이 늘 중간 점검을 해야 한다. 그런 그에게도 남들에게 없는 재능이 있다.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팀원들과 잘 어울려 의논하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은 힘든 상황에서도 틀어박혀 있지 않고 웃는 얼굴로 협력한다. 그는 리딩 능력은 부족하지만 팀워크를 활용할 줄 아는 재능이 있다.
C 대리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입사해 디지털 마케터로 경력을 쌓는다. 디지털 분석이 전공이지만 그의 재능은 따로 있다. 바로 똑같은 내용으로 자료를 만들어도 그가 만든 자료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의 재능은 바로 디자인 감각, 나아가 심미감이다.
업무랑 상관없는 재능을 가진 이들도 많아서 주위에 이런 소리를 듣는 직원이 있을 것이다.
저 직원은 우리 회사에 오지 말고 장사를 해야 했어.
선배는 회사원 말고 선생님 했으면 딱 맞았을 거 같아요.
이 직원들은 재능을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인 경우이지만 이들도 재능이 있다.
재능을 찾는 방법은 남에게 있다
문제는 본인의 재능이 뭔지 모르는 직장인이 많다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본인의 재능은 본인이 발견하는 것일까? 아니면 주위에서 발견하는 것일까? 둘 다 가능하지만 내 경험상 주위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선 본인이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재능이라는 것은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서 재능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재능을 찾기 위해서는 주위에서 발견해서 알려줘야 한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면 본인이 주위에 물어봐야 한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재능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기 때문이다.
나의 재능 중 하나는 사람을 파악하고 배려하고 참여하게 하는 능력이다. 이 재능을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지금 회사의 대표님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던 에피소드인데, 대표님이 내가 리딩하는 토론 모임에 참석했을 때 내가 모임을 운영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셨다.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회사, 직무, 성향, 성격을 모두 감안해서 적재적소에 진행에 필요한 질문을 골고루 하는 모습을 보면서 회사 임원으로서의 재능을 봤다고 하셨다.
재미있는 사실은 노력했던 일이 재능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노력한다고 다 재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대표님으로부터 내 재능을 듣기 전까지 그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다만 그러려고 노력했을 뿐이었는데 주위에서 내 노력을 재능으로 인정해주는 순간 정말로 재능으로 재발견이 된 것이다.
거꾸로 내가 상대의 재능을 알아보고 알려준 경우도 있다. 외국계 회사 다닐 때 팀에 마케터 네 명이 있었다. 세 명은 과장, 한 명은 사원이었다. 그런데 한 명의 사원이 조용한 팀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전까지 우리 회사의 마케터는 조용하고 소극적이었다. 각자 사업부 하나씩을 맡았지만 사업부 소속이 아니었기에 확실히 선을 긋고 꼭 해야 하는 업무만 했다. 그런데 그 후배는 달랐다. 마치 사업부 소속인 것처럼 사업부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냈고, 본인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안해서 반영시켰다.
하루는 후배가 내게 고민을 털어놨다. 선배들이 적당히 하라는 식으로 눈치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후배에게 “정말 잘하고 있어요. 제가 오히려 배운다니까요. 선배들이 잘못된 거고, 본인은 제대로 일하는 거니까 기죽지 말고 계속 밀고 나갔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합리한 것을 묵인하지 않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응원해요”라고 말했다.
선배들의 구박은 계속되었지만 후배는 더 용기를 얻어 재능을 발휘해 ‘이게 마케터다’라는 롤 모델을 보여줬고, 지금은 한국을 넘어 글로벌 마케터로 활약 중이다.
대부분의 재능은 주변을 맴돌다 끝난다
안타깝지만 재능을 발견해도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크게는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자신의 재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많은 이가 자신의 재능을 과소평가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의 주변에서만 사용할 뿐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은 위계질서가 강한 우리나라 직장 문화를 감안하면 자신의 재능이 작아 보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재능’이라는 단어 자체에 선입견이 있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은 ‘나만의 리그’에서나 써먹을 수 있는 작은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직장에서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 우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포지션에서 일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랴. 오히려 직장 생활 하면서 그 반대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
- 말하는 재능이 있는 직원이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 재무 담당자 역할을 한다.
- 엑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엑셀과 데이터 다루는 것에 재능이 있는 직원이 고객 행사 담당이다.
- 모든 직원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달려가서 조언을 구하는 직원이 사장님 비서로 스케줄 관리만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본인의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부서로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부서 발령을 위해서는 설득해야 하는 단계가 복잡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입증할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어렵다. 따라서 정말 자신이 재능이 있고 또 발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럴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하기가 오히려 더 쉽다. 물론 이 경우도 자신의 재능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몇 가지 준비하면 못할 것도 없다. 특히 주니어들의 경우는 그런 기회가 더 열려 있다. 내 경우가 그러했다.
첫 회사에서 내 포지션은 홍보팀 언론담당이었다. 그런 내 학부 전공은 전자공학이었다. 보도 기사는 물론 회장단의 모든 문안을 작성해야 하는 포지션에 전자기학, 전기회로, 통신 이론을 공부했던 사람을 채용한다는 것은 회사로서도 모험이었다. 나는 어떻게 접근했을까? 우선 해당 포지션은 이미 사수인 부장이 있었고 신입사원을 뽑는 자리였다.
공채로 뽑는 상황에서 동기 중에 국문과처럼 해당 포지션에 딱 맞는 전공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동기들 누구에게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여기서 내가 어필했던 것은 대학 시절 스포츠 비평 사이트에서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던 것과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 페이퍼에서 스누피를 주제로 한 페이퍼를 발행했던 것 두 가지였다. 다들 고만고만한 상황에서는 이 정도의 재능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HR팀 담당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경력직으로 이직하는 경우에도 전혀 엉뚱한 포지션으로의 이동이 아니라면 본인의 경력에 재능을 더해서 어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했던 말하는 재능이 있지만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 재무 담당자의 경우, 스타트업에서 투자유치 활동인 IR(Investor Relations)을 담당하는 포지션으로 지원하면 좋다. 재무적인 경력도 필요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말을 해야 하는 포지션이라 본인의 재능을 200%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재능은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재능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 가치가 있다. 그리고 비슷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을 때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소통을 잘하는 재능이 있는 직원 A, 직원 B가 있다면 둘 중에 누가 더 소통을 잘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소통을 잘하는 재능이 있는 직원은 둘만으로도 부족하고 세 명, 네 명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직원이 여럿 있다는 것 자체로도 그 조직에는 굉장한 행운이다.
재능이 있는 직원들이 시너지를 낸다면 어떨까? 회사가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앞에서 말한 노력을 통해 직원들이 재능을 발견했다면 1+1=2가 아닌 1+1=3이 되게 하는 것은 회사의 몫이다.
회사에 디테일에 강한 재능이 있는 후배와 리딩 능력이 있는 후배가 있었다. 둘이 같은 프로젝트를 하게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완벽한 결과가 나왔다. 한 명이 큰 그림을 그리고 리딩하면, 다른 한 명이 빈 공간을 척척 채워갔다. 이처럼 회사가 재능 있는 직원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할 때 별빛이 내리는 것처럼 직장 생활이 신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재능도 써먹어야 강점이 된다
핵심은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써먹어야 자신의 강점이 된다는 것이다. 재능과 강점의 차이를 구분하자면 재능은 타고난 것이고, 강점은 타고난 것을 갈고닦아서 자기 것으로 만든 경우이다. 그래서 재능을 오랜 기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있었던 재능도 사라진다. 때문에 자신이 재능이라고 확신하는 능력이 있다면 자신이 그것을 발휘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구체적으로 추천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부캐(부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많은 직장인이 이미 부캐를 두었다. 일주일 전 리멤버가 직장인들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23%가 부캐를 두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66%는 아직 하진 않지만, 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내 부캐는 브런치 작가다. 낮에는 본업에 충실하게 8–9시간 정도 일을 하고, 이른 아침, 늦은 밤에 부캐로 2–3시간씩 글을 쓴다. 글쓰기의 재능이 있다는 것은 대학 시절 발견했다. 스스로 발견했다기보다는 글 쓰는 커뮤니티나 플랫폼에서 조금씩 인정을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그 재능을 살려 첫 회사에서 언론담당으로 7년간 글을 썼다. 교회에서도 20년 넘게 매주 주일 설교를 듣고 나서 느낀 점을 글로 써왔다. 이렇게 기회를 나 스스로 많이 갖다 보니 재능에서 강점으로 발전했다.
본인이 속한 곳에서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보길 권한다. 본인이 기획하는 재능이 있다면 외부 커뮤니티에서 행사가 있을 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역할을 해보자. 본인이 모임을 운영하는 재능이 있다면 같은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모임에서 운영자 역할을 맡아보자. 나 역시 영어를 아주 잘하는 건 아니지만 나보다 더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영어 토론 모임에서 운영자 역할을 맡았다. 영어를 잘하는 것과 운영을 잘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가만히 있으면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손을 높이 들어 기회를 잡자.
그리고 주변에 재능 있는 사람과 함께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시 말하지만 재능은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어서 재능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회사가 됐든, 커뮤니티가 됐든 성장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주변에 재능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재능을 혜택을 받아 보는 것도 본인에게 정말 도움이 된다. 거꾸로 본인이 재능이 있다면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해보자.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질 때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된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재능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과소평가한 본인 탓도 있지만 그 사람의 재능을 알려주지 않은 주변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 자, 주위에 재능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재능을 잘 써먹어 강점이 되도록 도와주자. 그리고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그 사람의 재능에 대해 이야기해주자. 당신의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것이다.
원문: Mark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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