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회사에서 대학생 인턴 안 뽑나요?
어느 날 친한 동생이 갑자기 나를 ‘리스펙트’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가 외국계 기업을 다니면서 여러 좋은 환경에서 일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반면 〈미생〉 같은 드라마에서 비치는 국내 기업의 모습은 여전히 불합리한 일로 가득하니 그럴 법도 했다. 이 동생은 졸업하면 무조건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겠다면서 교환학생까지 다녀왔다.
외국계 기업은 그 이름 자체가 갖는 분위기가 있다. 가벼운 표현으로 ‘있어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많은 취준생과 이직러가 외국계 기업의 문을 두드린다. 내 경우 국내 기업에서 7년, 이후에 외국계 기업에서 7년을 일했으니 나름 균형감 있게 양쪽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 기업의 경우 곧 100주년이 되는 장수 회사이고, 외국계 기업은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글로벌 매출이 100조가 넘는 글로벌 기업이다. 2019년에 외국계 기업을 나오면서 언젠가는 그곳에서의 경험을 글로 써봐야지 생각했다. 이제야 외국계 기업이 갖는 명확한 한계와 확실한 장점에 관해 얘기하려 한다.
올해 7월 국내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설문 조사한 ‘취업 선호 기업 상위 5개 회사’는 카카오, NAVER, CJ제일제당, 삼성전자, 한국전력공사, 순이었다. 마찬가지로 3월에 조사한 ‘취업 선호 외국계 기업 상위 5개 회사’는 구글 코리아, 넷플릭스 코리아, 애플 코리아, 나이키 코리아, 스타벅스 코리아, 순이었다.
두 조사 결과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응답자들은 외국계 기업의 장점으로 다양한 복지 지원을 가장 많이 언급했고, 이어서 해외 근무 기회, 높은 연봉, 수평적인 기업문화, 기업의 인지도, 높은 워라밸 수준, 순이었다. 그런데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우선시하는 항목들도 살펴보면, 복지제도와 근무환경에 이어서 높은 연봉,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환경, 순이었다.
놀랍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는 누구나 복지 제도와 높은 연봉을 중요하게 여긴다. 국내 기업은 근무 환경이나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느냐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반해, 외국계 회사는 수평적인 기업 문화나 높은 워라밸 수준이 차별화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확실한 건 이런 조사 결과는 1년 후에도, 2년 후에도 거의 같을 거란 사실이다. 특히 응답자의 대부분이 외국계 기업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미디어나 지인들로부터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응답하기 때문에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외국계 기업의 실제를 들여다보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바로 ‘외국계 기업’이라는 표현이다. 주요 사전에서 ‘외국계 기업’을 치면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계열의 기업’이라고 알려준다. 가장 명료한 표현이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정리하면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 회사의 커다란 우산 아래에 있는 기업’이다.
이런 이유로 앞서 언급한 취업 선호 외국계 기업의 이름을 보면 모두가 뒤에 ‘코리아’가 붙는다. 외국 기업의 한국지사, 한국법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느 국내 기업이나 외국 기업과 구분하기 위해 ‘계’를 덧붙여 외국’계’ 기업이라고 부른다. 외국계 기업에서 핵심은 ‘계’라고 생각한다. 이 점이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100% 외국 기업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국내 기업도 아닌 그 중간 어디에 위치한 외국계 기업의 명확한 한계와 단점, 그리고 확실한 장점을 알아보자.
명확한 한계와 단점
첫째, 한국법인
외국계 기업은 한국법인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그 위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사가 있고, 그 위에 글로벌 본사가 있다. 기업의 핵심 활동은 모두 본사에서 단독으로 진행한다. 비전, 미션, 중장기 전략, 신사업 진출, 기업 문화, 프로세스 수립 등 모두 본사의 몫이다. 한국법인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서 취지가 흐려지지 않도록 적용할 뿐이다. 물론 한국 상황에 맞게 수정하는 것(localization)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중요한 역할은 본사가 도맡아 한다는 점은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다.
둘째, 영업조직
한국법인의 한계로 인해 외국계 기업은 영업조직이다. 심지어 규모가 작은 한국법인의 경우에는 재무, HR, 마케팅 같은 백 오피스(back office) 조직은 싱가포르나 시드니에 있는 지역 본사에서 커버하기도 한다. 글로벌 본사의 영업 목표가 있으면, 그것이 지역 본사로 할당되고, 또다시 나라별로 할당된다. 한국법인은 태생적으로 그 할당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된다. 그래서 영업 출신이 승진의 기회를 많이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이유로 비영업 출신은 근속 연수가 차면서 이직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장기근속의 달콤한 유혹
왜 장기근속이 단점이 될 수 있을까? 외국계 기업은 위에서 말한 태생적 한계로 인해서 일정 근속 연수가 지나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그 후로는 장기근속하면 할수록 본인의 경력이 정체된다. 쉽게 말해 이력서에 근속연수 숫자만 바뀔 뿐이다. 대부분 외국계 회사에서는 5년, 10년, 15년 등 근속 연수가 쌓여갈수록 혜택이 꽤 큰 편이다. 퇴직금 누진제, 보너스, 자사주 쉐어링 제도 등 다양하다. 그래서 고민이 깊어진다. 정체된 경력과 늘어나는 혜택 사이에서 적잖은 직원들은 현실과 타협한다.
넷째, 80% vs. 120%
본인의 실제 실력보다 부풀려 보이기 쉽다. 자신 또한 그런 착각에 빠지기가 쉽다. 자신은 사실 80% 정도 되는 사람인데, 회사의 인지도로 인해 120% 정도로 부풀려 보인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좋게 봐주고, 때로는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확실한 장점인 기업 문화나 복지 제도에 취해 있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본인의 실력을 놓치기 쉽다. 다른 국내 기업의 비슷한 나이 직원들과 비교했을 때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계 기업에는 의외로 어디로 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만년 부장님’이 많은 편이다.
다섯째, 국내 기업으로 이직 어려움
열의 아홉은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외국계 기업 문화에 익숙해지면 아직은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국내 기업으로 가는 것이 망설여진다. 특히 외국계 기업이 첫 회사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것을 단점으로 언급하는 이유는 국내 기업에도 좋은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도 유연해지고 복지도 더 좋은 곳도 있고 더 성장하는 곳도 많은데 그런 기회를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것은 꽤 아쉬운 부분이다.
확실한 장점
그럼에도 인기가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누군가 나에게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걸 추천하나요?’라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첫째, 인적 물적 교류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다른 나라 오피스에 좋은 친구가 많이 생긴 것이다. 수평적 조직 문화에서 그들은 내 위도 아래도 아닌 동료이기 때문에 진짜 친구처럼 지냈고, 오히려 한국 직원들보다 개인적인 얘기를 더 나눴다.
예를 들어, 도쿄 오피스에 있다가 본사로 파견됐던 일본 친구가 서울에 출장 온 적이 있었다. 저녁 식사 후 호텔까지 제법 거리가 되는데 택시를 잡지 않고 둘이 한참을 걸으며 얘기했다. 얘기는 끝날 줄 몰랐고, 호텔 로비 바가 문 닫을 때까지 얘기를 이어갔다. 이런 인적 교류뿐 아니라 우리나라와는 다른 환경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합리적이고 안정된 프로세스는 이후 어디서도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둘째, 수평적 조직 문화
물론 외국계 기업도 한국 사람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내 기업과 비교하면 확실히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가졌다. 그런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구성원이 대부분 한국 사람인데도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다음 세 가지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경험, 그리고 마인드다.
아무래도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 영어가 중요하다. 따라서 확률적으로 이미 직간접적으로 해외나 외국인, 외국 문화에 관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으로 ‘경험’이다. 어떤 경험이냐면 외국계 회사에 들어와서 다른 나라 오피스에 있는 친구들과의 경험이다. 이런 경험을 한번 하는 것이 수평적 조직 문화를 백 번 듣는 것보다 나은 학습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마인드다. 그냥 이런 거다. ‘나는 외국계 회사를 다닌다’는 마인드. 당시에는 이 마인드가 때로는 유치하다고 여겼는데, 돌이켜보면 모두가 이런 마인드를 가지면 그것이 곧 문화가 된다.
수평적 문화를 가장 확실하게 느꼈던 일화 하나. 2주간 교환 프로그램으로 호주를 방문했다. 첫 주는 멜버른, 둘째 주는 시드니 일정이었다. 멜버른 오피스는 시내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었는데, 마침내 숙소 근처에 사는 독일 친구가 매일 출퇴근할 때 카셰어링을 해줬다. 어느 날은 오후 4시에 치과 예약이라며, 퇴근할 때 못 태워다 줄 거라 했다. (멜버른 오피스에서는 병원 가야 할 일이 있으면, 아무 때나 가면 된다고 했다.)
교환 프로그램 담당자는 본인 차로 최대한 내 숙소 근처에 내려다 주려고 구글 맵을 PC 화면에 띄우고 알아봤다. 마침 호주 대표인 마이클(Michael)이 우리 뒤로 지나가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듣고는 자기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다운타운 쪽에 사는데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마이클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퇴근했다.
외국계가 진짜 외국계 기업이라고 느껴질 때가 바로 이렇게 해외 오피스에서 나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과 대화할 때다. 영어 호칭에는 직위가 빠진다. 호주 대표에게 나는 마크(Mark)고, 나에게 호주 대표는 마이클일 뿐이다. 영어로 대화를 하다 보니 누가 높고 낮고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차 안에서 가족 얘기, 살아온 얘기 등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이런 부분은 한국 법인들도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셋째, 글로벌 프로젝트
한때 외국계 회사의 한국법인은 국내 기업의 해외법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스페인 현지법인도, 스페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외국계 회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둘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큰 차이는 본사가 미국, 호주, 유럽 등에 있는 것과 한국에 있는 것이다. 국내 기업은 아무리 글로벌 기업이어도 인적 구성의 대다수가 한국 사람이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외국계 기업 특유의 모습을 느끼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로 글로벌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국내 회사들도 글로벌 프로젝트를 한다. 다만 대개 한국 본사에서 리딩을 하지만 현지법인이 잘 따르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와 달리 외국계 기업의 글로벌 프로젝트는 본사나 어느 한 나라, 한 부서, 한 사람이 리딩 하기보다는 모두 1/n 씩 담당한다. 그래서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그만큼 더 재미있고 무엇보다 자기 경력에 도움이 된다.
마치며
이처럼 명확한 한계와 확실한 장점이 있는 외국계 회사에 도전하는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한 번뿐인 인생의 경력에 꼭 한번 경험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물론 내 글이 절대 전부는 아니다. 유럽계와 미국계 기업이 다르고, 오래된 기업과 스타트업이 다르고,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서도 다르기 때문이다.
원문: Mark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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