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이직이란 진라면인 줄 알고 한 숟갈 떠먹으려던 나에게 핵불닭볶음면을 강제로 먹이는 것만 같은 큰 고통이었다. 쉬울 줄 알았는데. 지옥불같이 매운맛을 4개월간 맛보고 혀를 데며 눈물 콧물 짜댈 때, 도움이 됐던 플랫폼은 링크드인이었다.
“링크드인? 그거 그냥 이력서 올려놓는 데 아냐?”
“지금 이직할 마음도 없고 어중이떠중이들한테 연락 올까 봐 싫어. 그래서 난 가입하고 몇 자 적고 끝냈어.”
“그거 쓰는 사람 많지도 않잖아. 헤드헌터나 인사팀 정도만 쓰고, 구직자만 쓰는 플랫폼인데 나랑은 연관성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난 원래 해왔던 방식대로 이력서 집어넣고 지원하려고.”
다수의 한국 친구 및 싱가포리언은 링크드인을 써보았느냐,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질문에 심드렁한 답을 내놓는다. 링크드인은 비즈니스 중심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맞다. 이 플랫폼을 전통적인 앵글에서 보면 헤드헌터나 구직 중인 사람들에게만 매력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발상을 전환시키면 링크드인은 무궁무진한 기회를 품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링크드인을 구인·구직 사이트로 끝내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활용했던 방법들은 이러하다.
1. 관심 있는 회사 가늠해보기
회사만 입사자의 평판을 조회하는 시대는 끝났다. 관심 가는 회사에 아는 이가 없어 정보를 얻을 수 없을 때 링크드인으로 회사에 재직 중인 사람을 찾아 회사를 조회해보자.
아무 정보 없이 덥석 입사 후, 직속 상사나 회사의 분위기가 맞지 않으면 큰일이다. 회사는 몇 주 다녀보다 그냥 나가면 끝인 캠핑이 아니니까. 경력이 너무 필요해서 일단 아무 곳이나 가자, 하는 절박한 신입사원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내가 중점적으로 본 사항은,
- 재직자들이 얼마나 그 회사에 오래 재직 중인가: 일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만 많거나, 그 회사에 입사하고 빨리 퇴사한 사람의 비율이 많다면 오래 다니기 힘든 회사라는 점일 확률이 크다.
- 이 회사에 오기 전 어떤 회사·학교를 다녔는가: 같이 일할 동료들이 배울 점이 많고 다양하고 깊은 경험을 갖추었거나 똑똑하다면 그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배우는 것이 많아지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 외국인 직원들이 있는가: 싱가포르 직원들만 있는 회사는 다양성이 부족하다. 싱가포르 자체가 다인종 국가이긴 하지만, 대부분 중국계 싱가포리언들이 많기 때문에 외국인 직원이 없을 경우 내가 외국인 직원으로써 배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 다양성이 커질수록 회사는 다이내믹해지고, 창의성은 존중받고, 배려와 관용이 꽃핀다.
- 링크드인에 가입한 직원들의 수: 물론 회사 대다수의 직원들이 링크드인을 사용하지 않아 회사의 규모 및 직원들의 수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링크드인에 가입한 직원들의 수와 회사의 규모가 대체로 비례한다. 스타트업에서 일해와서 이번에는 큰 회사에 가고 싶었던 나는, 링크드인에서 직원들의 수도 훑어봤다.
2. 퇴사자에게 솔직한 회사/상사 관련 질문
직속 상사 및 조직 문화가 궁금했지만 링크드인에서 찾아낸 재직자에게 질문했다가 혹여나 이상한 소문이 돌거나 말이 잘못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염려되었다. 따라서 현 재직자 대신 퇴사한 사람 중 몇 명을 링크드인에서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일촌 신청을 먼저 건 뒤, 메시지를 보낼 때 최대한 프렌들리하고 예의 바른 톤을 유지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XXX입니다. 예전에 OO 님이 퇴사하셨던 회사에 관해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점이 있어 메시지 드립니다. 제가 그 회사에 현재 관심이 있고 곧 면접을 볼 수도 있어서요. 물론 바쁘실 줄 알지만, 딱 10분만 시간 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편한 시간에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귀찮아서 아무도 답장을 안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물어본 것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그 전 회사에 관해 연락을 하는 셈이니. 하지만 놀랍게도 5명 중 4명꼴로 상세하게 도움을 주었다. 한국인. 싱가포리언. 말레이시아인 등등.
전화로 알려주겠다는 사람, 연락을 한 지 이틀도 되지 않아 메시지로 일목요연하게 답장을 주는 사람, 카카오톡이나 왓츠앱으로 알려줄 테니 연락처를 달라는 사람 등. 본인의 경험은 지극히 개인적이니 일반화는 위험하다는 조심스러운 인트로는 공통적이었다. 이미 조직을 떠난 분들이니 예리하게 회사의 장단점, 조직 분위기, 상사에 관한 총평, 팀에서 근무했을 때 느꼈던 일화 등을 들려주었다.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입사를 결정하거나 미루는 데 좋은 도움닫기로 작용했다. 예상보다 사람들은 도움이 절박한 사람들의 1:1 요청을 쉽게 외면하지 않는구나, 하고 선의와 신뢰의 선순환에 관해 생각해본 계기기도 했다.
3. 업계 동향 및 네트워킹하기
일촌의 수가 어쩌다 보니 1,000명 정도 돼버린 나의 중견급(?) 링크드인. 처음에는 급하게 헤드헌터 및 같은 학교 출신의 사람들만 일촌을 맺다가, 점점 아는 사람들을 찾아 일촌을 걸고 업무를 함께 했던 이와도 관계를 맺다 보니 이제는 내가 먼저 일촌을 신청하지 않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루에도 2번씩 일촌 신청이 온다.
아직은 부끄럽고 자신이 없어 링크드인에 특정한 콘텐츠를 포스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 중인 일촌들, 싱가포르에서 근무 중인 한국인/외국인 일촌들, 미국 혹은 세계 각지에서 근무 중인 한국인/외국인 일촌들의 인사이트 가득한 포스팅들은 계속 내 피드에 올라온다. 콘텐츠들을 보며 새로운 시각을 갖거나 몰랐던 정보를 얻기도 한다.
더 알아보고 싶거나 궁금한 사항은 다이렉트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댓글을 달아서 새로운 사람들과 가볍게 소통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네트워킹이 강화되고, 업계의 동향이 궁금할 때 모르는 사람에게 콜드 이메일을 보내 가며 매달리기보다 직접 관심 가는 산업/업계/직무에 재직 중인 사람들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일례로 나는 헤드헌터 쪽 직무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한국 헤드헌터 일을 하던 분들, 미국에서 헤드헌팅 회사를 창업하신 분, 싱가포르에서 헤드헌터로 근무 중인 외국인들에게 한국어/영어로 동일한 질문을 던져 어떤 대답이 공통적으로 나오는지,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다른지 확인이 가능했다. 링크드인을 통해 질문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부분들을 알았다. 예를 들어,
- 싱가포르에서 헤드헌터 일을 하고 싶다면, 외/내국인 할 것 없이 싱가포르 정부에서 허가를 내주는 공식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점.
- 그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따로 공부 및 시험 응시가 필수적이고, 떨어지더라도 그 후에 또 시험을 칠 수 있는 점이 마치 우리나라의 기사 자격증과 비슷하다는 것.
- 반면 한국에서는 헤드헌터 자격증이 따로 필요 없지만, 링크드인이 아직 많이 활성화되지 않은 부분을 감안하고 온/오프라인의 네트워크를 넓혀서 독특한 방식으로 인재를 찾아내야한다는 법.
- 미국에는 오직 한인 기업 및 한인 구직자들만을 스페셜라이징해 사업을 꾸려나가는 헤드헌터들이 있다는 점.
- 어느 나라나 헤드헌팅 비즈니스는 치열하지만, 특히 싱가포르는 APAC 헤드쿼터, 전문직 고임금자가 몰리는 도시 국가의 특성, 동남아의 허브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랭귀지 배리어가 없는 영어권 국가라는 점에서 헤드헌팅 산업은 피 튀기는 전쟁터라는 점.
얼굴 맞대고 묻지 않아도, 오직 현직자들만 알 수 있는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든든한 플랫폼이다.
4. 면접 준비 중 산업 관련 질문 대비해 인사이트 얻기
죽을 것처럼 면접이 힘들었던 회사들이 있었다. 면접을 하도 많이 보고 다녀서 오히려 준비를 안 할수록 결과가 좋은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에게 얘기하던 나였지만, A사와 N사는 28년 평생 봤던 면접 중에서 극악의 난이도였다. 다대일로 영어로 면접을 보는 것도 버거운 데, 온갖 숫자와 도식이 난무하는 케이스 스터디를 완료해 특정 질문의 답을 영어로 프레젠테이션하라는 파이널 면접이었다.
케이스 스터디를 완료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대부분 1주일 남짓이었고, 업계에 관해 깊은 지식과 직접적인 경험(hands on experience)이 부족했던 나는 압박감에 울다 울다 못해 두뇌를 풀 가동했다. 이때도 링크드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선 내가 면접을 볼 회사와 비슷한 경쟁사, 같은 산업, 동일한 직무에 근무 중인 사람들을 전부 찾아냈다. 어느 정도 시니어 레벨인 것 같은 사람들 위주로, 나는 내가 수행해야 하는 면접의 인사이트를 얻기 시작했다. 어차피 대놓고 똑같은 면접 질문을 물어봐서 답변을 얻을 수도 없었다. 그만큼 애매하고 추상적인 케이스 스터디였기 때문에, 대신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지식을 겸허한 자세로 묻고 그들의 경험을 나눠달라고 부탁드렸다.
“a라는 이슈가 터졌을 때 대부분 b, c, d라는 해결책을 찾기 마련이다. 이때 ooo 님께서는 어떤 해결책을 내놓으시는지, 혹은 b, c, d 중에서 가장 적합해 보이는 솔루션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견해를 부탁드린다.”
“□□산업에 특별한 관심이 있고, 면접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XXX 경험이 일천해 이렇게 메시지를 드린다. □□산업 및 XXX 경험에 관해 이러저러한 점이 궁금해 여쭙고 싶으니 시간이 되실 때 답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경험이 많지 않고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주니어이다. 특정 산업 및 ㅇㅇ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는데 물어볼 곳이 전혀 없어 이렇게 연락을 드렸다. 바쁘시겠지만 한 두 가지 질문에 관해 알려주신다면 다음에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다.”
물론 그렇게 힘들게 준비했던 면접들은 모두 낙방해버렸다. 하지만 목 마른 자의 목구멍을 갖고 사방팔방 우물을 파 대니 안 될 일도 될 수밖에 없구나, 모르는 게 있으면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은 천지에 있으니 나를 낮추고 여쭤본다고 해가 될 건 없겠구나, 하는 큰 교훈은 얻을 수 있었다.
마치며
힘들었고 전혀 즐겁지 않았던 이직 및 구직 과정. 링크드인은 새로운 면접 기회를 갑자기 던져 주거나, 귀인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생각 외로 큰 도움을 주었던 플랫폼이었다. 쉽지는 않았으나 한 걸음 한 걸음 배움이 많았기에 나름대로 의미 있던 잡 헌팅의 여정이었다.
구직 중이거나 이직, 혹은 특정 산업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링크드인에 가입해서 새로운 기회와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원문: 가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