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8일 금요일, 급히 서울로 날아오는 날 아베 총리의 사임 소식이 속보를 타고 전파된다. 장모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코로나19 환란 속에 귀국하는 길이어서 그의 퇴진의 진위에 대해 곰곰이 되짚어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두 가지 점에서 분명하게 느낌이 오는 게 있었다. 우선 하나는 전에도 몇 차례 언급한 기억이 있지만, 아베 수상이 최근의 코로나 19로 인한 3무(무능, 무대책, 무책임)가 여실히 드러나 정치적 생명력이 고갈되는 상황에 처하면서, 스스로도 그렇고 자민당 내에서도 포스트 아베를 둘러싼 정국 운영에 새로운 시나리오를 그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베 수상이 퇴진을 하더라도 자신의 최장수 연속 재임 총리 기록이 달성되는 8월 24일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지난 6월 중순 이후 기자회견도 갖지 않고 수상의 동정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사퇴의 기운은 이미 감지되었다. 그러면서 지병의 악화설이 흘러나왔다. 이는 2007년 퇴임 때와 똑같은 시나리오다. 아베 수상이나 자민당에겐 이미 한번 써먹어 성공한 시나리오다.
2006년 52세의 전후 세대 첫 총리로 의기양양 정권을 잡은 아베 신조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정확히 불과 1년 만에 정권에서 내려왔다. 그것도 스스로 내려놓는 형식을 택했다.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악화로 공무수행이 불가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단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지병이 하나의 원인일 수는 있지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 보면, 아베 수상의 정국 운영 능력이 부족했음이 가장 큰 이유였다. 취임 후 이어지는 아베 내각 각료의 스캔들과 ‘국민연금’ 관리 부실이 드러나 정국이 요동을 치고, 과거 우정 해산 총선 때 고이즈미에 의해 버려진 일명 ‘저항세력’ 의 자민당 의원들의 복당을 허용하며 불거진 당내 갈등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그해 7월 여름에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가 이끄는 비자민 세력에게 133석에서 103석으로 30석을 빼앗기는 참패를 당했다. 이게 결정적인 퇴임 이유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제1당의 당수가 수상이 되므로 ‘선거’가 제일 중요하다. 극단적이지만 능력과 자질이 모자라더라도 선거의 얼굴로 선거에만 이기면 최고가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선거의 여왕이든 선거의 제왕이든, 선거에서 승리만 할 수 있다면 리더의 정치적 생명은 계속 담보되고 연장되는 것이다.
지병 악화는 단지 아름다운(?) 퇴장을 위한 연막에 불과한 것이었다. 물론 표면상의 이유가 지병 악화로 인한 공무수행 불가였기에 후일 2012년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최장수 재임 총리라는 레전드가 될 수 있었다. 이번 퇴임 시나리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인해 3무는 물론이고, 아베 장기정권의 최대 치적으로 널리 선전되어 온 아베노믹스가 코로나 환란 속에 사상누각이 되어 그 허상이 드러난 것이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그로 인해 지병의 악화를 초래했을 것이다.
따라서 지병의 악화로 인해 사퇴하는 것은 일정 부분 맞을지라도, 정작 지병 악화를 불러온 요인들이야말로 그의 정치가로서 또는 수상으로서의 능력과 실적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기에 물러나는 것뿐이며, 그러면서 포스트 아베와 자민당의 지속적인 집권을 위해 가장 베스트라 여기는 ‘지병 악화’ 시나리오를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생각한다. 이는 전술한 대로 2007년에 경험하여 재미를 본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또한 이 부분은 나의 추론에 근거한 뇌피셜이지만, 아베 신조 개인의 퍼스널리티로 봤을 때, 자신의 인생 목표이자 어려서부터 많은 핸디캡의 요인으로 작용했던 쟁쟁한 집안 어른들의 역사를 극복하고 추월했다는 만족스런 달성감과 동시에 급격한 허무감이 몰려와 정권 지속에 대한 의욕 상실이 왔을 것이다. 거기에 코로나 사태와 지병 악화가 더해진 것이라고 본다.
아베 수상 개인의 생각은 단지 추측을 할 뿐이지만, 문제는 정권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자민당의 구조적 생태이다. 추락하는 아베 정권에 대해 과거의 영화에 얽매여 언제까지나 의지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민당에 대한 신뢰 회복과 곧 치러야 할 해산 총선거에서 패배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현상 유지 내지는 승리를 할 시나리오를 그려야 한다. 그래서 그 교두보 역할을 해야 하는 계투 요원으로서의 포스트 아베가 중요하고 그 적임자를 가려내기 위한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가장 유효한 수법은 아베 총리의 퇴임이 코로나 정국을 비롯한 장기집권의 실패라는 인상을 주면 절대 안 되는 것이고, 그를 최소화 내지는 희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지병 악화’ 로 인한 공무 수행 불가능 시나리오다. 2007년과 똑같은 시나리오인데 한 가지 다른 점은 2007년에는 전격적인 발표로 세간을 놀라게 했지만, 이번에는 미리 지병 재발·악화라는 소문을 흘려가며 여론을 만들며 밑밥을 깔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작금의 현상에 대해 아베 정권과 자민당에 위기 의식이 고조되어 있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세습의원과 토무라이 선거
일본 정치문화 중 특징적인 것의 하나가 세습의원이 많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특히 자민당에 많다. 그런데 이런 세습의원들이 탄생하는 구조를 보면 거의가 선대의 사망이나 은퇴로 인한 선거구와 후원회 등을 상속(?) 받아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선대가 사망했을 때, 그 뒤를 잇는 자식은 대부분 압도적 승리로 선대를 잇게 되는데 이를 ‘토무라이 선거(弔い選挙)’ 라 한다. 선대의 사망이나 지병 악화 등에 대한 일종의 ‘동정’ 심리가 작용하고, 이를 이용한 세습의원의 선거전이 효력을 발휘하여 비교적 손쉽게 국회의원 직의 세습화가 이루어진다.
이미 야후재팬 등 포털을 보면 아베 수상의 퇴진을 타당하다 평가하는 여론이 약 80% 를 유지한다. 그 안에는 반아베 정서 여론도 적지 않겠지만, 일정 비율의 ‘동정’ 같은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일본 사회에는 ‘망자’ 나 ‘ 물러난 자’ 에 대해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는 책임 회피 정서가 강하다. 아베 수상으로서는 재판이 시작되고 있는 자신과 관련된 각종 스캔들과 사건에 대한 대응도 필요할 것이고, 자민당은 자민당 대로 해산 총선거를 의식한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음에 불과하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사상 최악을 기록하고 있던 상태에서 더 이상 아베 수상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자각하고 있었기에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봐야 한다.
추가로 난 야후 재팬에서 실시하는 차기 총재로 적합한 인물로는 ‘이 분’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사진 참조) 여러분들은 어떠신지 궁금하다. 또한 야후 재팬에서 실시한 포스트 아베로 적합한 인물로 고노 다로가 압도적 1위다. 한국에 널리 알려진 이시바 시게루는 상대가 안 된다.
이시바의 평가가 낮은 이유로 이시바가 되면 한국이나 중국에 이끌려 다니게 될 것인데, 고노 다로라면 아베처럼 소신을 갖고 강경 대응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야후 재팬에 댓글을 달며 활동하는 중심 부류들이 넷우익인 것을 감안하여 생각해 보면, 야후 재팬에서 평가가 낮은 인물이 한국에는 포스트 아베로 좀 더 적합한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원문: Hun-Mo Yi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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