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만 명이 넘는 도민과 15만 명이나 되는 공무원, 그리고 전체 예산 규모 15조 엔을 넘는 매머드 지자체이자 일본의 현존 1,788개 지자체의 최고봉에 있는 도쿄도지사 선거가 고이케 유리코 현 지사가 약 60% 가까운 366만 1,371표를 획득하는 압승으로 막을 내리며 재선을 확정했다. 애당초 코로나 팬데믹의 재난 속에서 임기 만료에 따른 선거이기에 열기를 기대하기 힘들었으나 예상대로 무풍 선거였다.
도쿄의 수장을 뽑는 선거치고는 열기도 바람도 불지 않았던, 말 그대로 심심하고 재미없는 선거였다. 이는 고이케 지사의 재선이 거의 확실하게 예상되는 가운데 펼쳐진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오늘은 선거 과정과 결과를 통해 나타난 특징과 현상을 검토하고, 그를 바탕으로 국정과 관련해 향후 고이케 도정(都政)의 향방에 대해서도 예상을 해본다.
첫째로 투표율이다. 최종 투표율은 55%로 지난 2016년 도지사 선거보다 4.73% 낮아졌으나 코로나 19의 영향을 고려한다면 그다지 낮은 투표율은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반 조금 넘는 유권자만이 투표하고 그중에 약 60%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결국 도쿄 유권자의 약 30% 정도의 지지로 당선됨을 뜻한다.
이는 비단 도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국정 선거와 지방선거의 특징 중의 하나인 저조한 투표율과 적은 득표로 선출된 대표의 정당성 문제로도 이어진다. 정치에 무관심한 민심이 저조한 투표율로 나타나며 이는 결국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둘째로 코로나 19로 인한 특수한 상황이 있었으나 지자체 선거에서 현직의 강점이 확인된 선거였다. 일본 지방선거의 경우 ‘현직 불패’라 불릴 정도로 선거에서 현직을 무너뜨리는 건 매우 힘들다. 더구나 코로나와 같은 재난이 겹친 상황에서는 현직의 강점이 최대한 활용된다. 이번 선거도 그랬다.
섣불리 행정 경험이 없는 후보자가 당선되었다가는 오히려 혼선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괘념과 함께 ‘변화’ 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민심이 크게 작용했다. 이른바 ‘생활 보수주의’ 의 확대 현상이다. 급진적인 개혁이나 변화보다는 잃어버린 30년이라 회자되며 장래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그래도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음에 만족하며 비록 적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소극적 지지로서 보수 정치가를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고이케 지사의 코로나에 대한 대응에 대해 약 60%의 도민이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이는 그대로 득표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 특히 도쿄의 코로나 대책이 한국의 방식과는 다르며 여러모로 미흡한 요소를 띠나, 정작 도쿄 도민은 이를 지지하고 신뢰한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셋째, 여전히 무력한 야권의 존재를 확인한 선거였다. 이번 도지사 선거에는 소위 야권의 두 주자가 서로의 표를 깎아 먹는 선거가 되었다. 물론 후보 단일화의 시도도 있었다고 하지만 결국 결렬되었으며 야당 지지표의 결집 현상도 매우 안이한 형태로 나타났다.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많은 사람이 고이케 지사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야권이 대동단결을 이루어도 힘겨운 싸움임에도 여전히 야권은 각자의 지지자들만을 바라보는 선거전을 치르며 만족한다. 내 생전 지자체 수장을 뽑는 선거에서 2위에 의미를 두고 치르는 선거는 이번에 처음 보았다. 선거전에 임하는 야권의 절실함이나 꼭 이기겠다는 절박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비단 도쿄도지사 선거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정 선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므로 자민당의 독주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넷째, 도쿄 도민의 전체적인 우경화, 보수화가 심화되었다. 고이케 지사의 정치적 기반은 일본회의 소속으로 보수 계층의 지지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우익적 성향을 띤다. 특히 한국 관련해서는 더욱더 그렇다. 그런 고이케를 도쿄 도민은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아울러 오사카를 거점으로 하는 일본 유신회 후보자도 60만 표를 넘었는데 이 역시 보수, 우익 성향의 표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지난 2016년 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약 11만 표를 얻은 사쿠라이 마코토라는 우익이 있다. 이자는 ‘재특회’라는 우익단체를 이끌며 혐한과 반한의 헤이트스피치를 주도하는 인물인데 이번에도 입후보했다. 득표는 지난번을 상회하는 약 18만 표를 얻었다. 4년 사이에 약 7만 명의 지지자를 확대한 셈이다.
투표율 55%에서 약 17만 명이라는 것은 도쿄 안에는 적어도 30만 명 정도의 혐한사상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쿄에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으로서 가장 꺼림칙한 일이다. 도쿄 도민의 보수화와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음이다.
다섯째, 미디어의 기능 부전이다. 이번 선거에서 고이케의 전략은 거리 유세를 비롯한 외부 선거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유튜브와 온라인을 통한 정견발표 등으로 선거전을 치렀다. 이는 선거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겠으나 고이케는 연일 저녁 황금시간을 이용해 코로나 보고와 대책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며 미디어 노출을 가장 유용하게 활용했다.
굳이 애써 힘든 거리 유세와 같은 선거 활동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선거 활동이 되는 특혜를 누렸다. TV를 비롯한 미디어는 이런 고이케의 기자회견은 라이브로 내보내지만 다른 후보자들의 선거 활동은 짤막한 단신 뉴스로 처리되는 정도였다. 또한 주요 후보자에 의한 TV 정책 토론 같은 것도 한번 열리지 않았다. 이는 결국 미디어도 고이케의 재선을 위한 선거 활동을 해준 셈이 된다. 미디어 본래의 기능이 사망 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고이케 지사는 실제로 유튜브를 통해 정견발표 등을 꾸준히 해왔으나 재생 수를 보면 몇천 번에 불과하다. 온라인과 유튜브 등은 아직 선거의 도구로서는 미약함을 드러냈으나 연일 TV에 등장하는 고이케 지사는 당연 기존 미디어의 특혜를 가장 많이 받은 결과가 되었다.
여섯째, 국정과의 관계가 요상하게 되어버렸다. 이번 선거 전에 자민당은 고이케를 지지하고자 했으나 고이케가 거부한 경위가 있다. 고이케는 명목상 무소속이지만 자민당과 공명당이 ‘자주 투표’라는 형식으로 사실상의 지지를 표명했다. 지난 2017년 총선에서 ‘희망의 당’을 창당해 국정 정당 판도를 바꾸려 했던 고이케가 ‘배제한다’는 실언과 함께 급속히 지지율이 하락해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면서 거듭되는 미디어 노출을 통해 3년 전 실추된 이미지 회복에 힘썼던 바인데, 이번에 압승을 거두면서 전부 회복된 셈이다. 이런 고이케의 존재는 앞으로 아베 자민당에는 껄끄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향후 아베 수상이 언제 해산 총선거를 결정할지 이번 도지사 선거를 통해 심증을 굳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보수, 우익 성향의 고이케에게 압도적 지지가 모인 점과 무엇보다도 무력한 야권의 지리멸렬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다. 기회는 이때다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따라서 내년 10월 임기 만료까지 기다릴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코로나 재난 중에 도지사 선거를 무사히 치렀다는 경험을 살려 야권이 전열을 정비하기 전에 기습적으로 해산 총선거를 치고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인다.
그러나 고이케 지사가 아베 정권이 코로나 대책으로 우왕좌왕하는 것과는 달리 표면적으로는 정부보다 앞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면모를 보였기에 평가를 받은 것에 비해 아베 정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아직 부정적이기 때문에 선뜻 결단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어쨌거나 아베 수상의 고민은 깊어만 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럼 고이케 지사는 앞으로 4년간 도쿄의 수장으로서 임기를 다할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이케 지사는 야망이 큰 여성 정치가다. 지금까지 정치 역정에서 드러나듯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에 매우 집착하는 습성을 보여왔다. 고이즈미 정권 때 환경 대신으로 첫 입각한 것을 시작으로 1차 아베 정권 때는 여성 첫 방위 대신, 그 후 여성 첫 자민당 총무회장, 여성 첫 도쿄도지사 등 지금까지 그녀의 정치 경력에는 ‘여성 최초’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뒤따른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으로 ‘여성 첫 총리’ 뿐이다.
이번 도지사 선거의 압승을 통해 3년 전에 실추된 명예와 이미지를 회복한 고이케 지사에겐 앞으로 언제 실시될지 모르는 해산 총선거에서 무슨 수를 쓰든 ‘키 우먼’ 역할을 하고 나설 것이다. 더구나 아베 내각의 지지율 급락으로 포스트 아베를 두고 암투를 벌이고 있는 자민당에게 고이케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시바 시게루에게 고스란히 정권을 넘겨줄 수 없는 자민당 주류 세력들과 고이케의 존재감이 어떻게 반영되고 수용되느냐에 따라 정국의 향방은 크게 바뀔 수 있다.
또한 고이케는 2기 임기와 함께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코로나 대책은 물론이고, 내년으로 연기한 도쿄올림픽 패럴림픽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큰 난관이 있다. 개최하자니 코로나를 비롯 여러모로 리스크가 크고 그렇다고 연기나 중지를 하자니 이 또한 그동안 투자에 대한 손실 등 타격도 만만치 않을 터이니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에 코로나 대책으로 도쿄도가 그동안 적립하고 있던 약 1조 엔에 달하는 재정조정기금을 재난 급부금 등으로 거의 다 탕진해버렸다. 재정적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도쿄의 곳간이 바닥나기 시작했으며 더구나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내년도 법인세를 비롯한 세수의 급감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 외에도 재해 대책과 저출산·고령화의 심화로 인한 각종 대책 마련 등의 난제가 산적해 있다.
이렇듯 고이케에게 재선은 기쁜 일이지만 도지사 2기는 매우 큰 부담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애초부터 도지사가 정치적 목표였던 사람이 아닌 바에야 이 자리에 연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저런 여러 정황을 살펴보더라도 고이케 지사는 반드시 다시 국정 무대에 그것도 주역으로 나서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고이케 지사와 아베 정권, 그리고 자민당의 권력 이동을 둘러싼 암투가 치열해질 것이다. 우리처럼 참정권이 없는 외국인들은 이런 권력투쟁 게임이라도 즐겁게 관람해야 한다. 언제나 모기장 밖에 놓여 있는 신세지만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고 있으면 우리가 내는 세금이 너무 아깝지 않겠는가. 그러니 즐겁게 관전해야 한다. 따라서 이왕이면 더 가열 차게 치고받고 물어뜯어 서로에게 큰 생채기를 남겨주는 싸움이면 더 재밌을 것 같다.
원문: Hun-Mo Yi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