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로 Les gilets jaunes, 영어로 Yellow Vest
그들이 입는 노란색 조끼 때문에 어디서나 ‘노란 조끼’로 불리는 그들은 처음엔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로 시작했다가 점점 규모가 커지고 과격해져 반정부 시위로 변했다……는 2019년 1월 중순까지의 이야기이고, 내가 몽펠리에를 떠나던 시점인 2019년 2월 초에는 반정부 시위에서 환경 보전 시위로 변해 있었다.
최근엔 다시 마크롱 탄핵 시위로 변했는데 코로나 여파와 시위가 처음 발발한 2018년 11월에서 시간이 꽤 지나서 시위의 열기가 예전보다는 수그러든 모양이다. (이것도 프랑스 기준으로 잠잠해졌다는 거지, 같은 시위를 거의 2년째 계속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꽤 길다.)
그런데 또 희한한 건 토요일에만 시위를 한다. 당시 다니던 어학원 선생님한테 이유를 물어보니 평일엔 일하고 일요일에는 쉬어야 해서 그런다는데 농담인지 진담인진 모르겠지만 정말 그게 이유라면 정말 시위도 합리적으로 하는 프랑스인들… 시위도 쉴 시간, 일해서 돈 벌 시간은 지켜가면서 하되 한 번 할 때는 목숨 걸면서 한다는 건가. ‘정말 프랑스답군.’
노란조끼의 날 토요일
처음 노란 조끼 시위, 그러니까 ‘유류세 반대 시위’에 대해 들었을 때는 프랑스 몽펠리에에 도착한 지 고작 1개월 뒤였던 2018년 11월 초였다. 어학원에서 그 주 토요일에 사람들이 유류세 인상 때문에 화가 나 도로를 폐쇄하고 시위를 할 예정이니 되도록이면 외출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고 개념도 겁도 없었을 때라 ‘오 역시 시위의 나라 프랑스야!’ 정도로만 생각하며 시위하는 걸 실제로 보고 싶다고 히히덕거렸다(그때만 해도 새해가 지나서까지도 시위를 할 줄은 몰랐다… 개선문을 때려 부술 줄도 몰랐고).
웬걸, 막상 그날이 되니 정말 도로를 폐쇄해서 차가 지나다니는 걸 막고 심지어 트램까지 지나가는 걸 방해하기도 했다. 학원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시위를 자주 하긴 해도 도로를 막은 적은 처음이라고 했고 실제로 노란 조끼 시위대의 도로 폐쇄 때문에 차로 한 시간 거리를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도착하기도 했다.
심지어 스페인-프랑스 간 국경을 막아서 스페인으로 수입해오는 식료품을 조달하는 차가 프랑스에 들어오지 못하기도 했고, 그 때문에 마트에 몇몇 음식이 부족하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의 호주 식료품점 휴지 코너가 동이 난 것처럼 물량이 죄다 털려있지는 않았지만, 시위 전이라면 10개가 채워져 있을 제품이 2–3개밖에 없었다.
그후 매주 토요일은 노란 조끼의 시위하는 날이 되었다. 그때 사귀었던 전 남자 친구는 어느 토요일 아침 9시에 시험이 있었는데 노란 조끼 때문에 트램을 타고 가는데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해도 뜨기 전인 7시에 집을 나섰다. ‘굳이 2시간이나 일찍 나갈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그도 그럴 게 시위대가 도로를 막을 뿐 아니라 몽펠리에의 대중교통인 트램 운행도 막았기 때문이다. 트램 선로 위를 천천히 걸어 다니거나 아예 길을 막아버려서 토요일마다 트램이 30분 넘게 지연되거나 선로 위에서 멈춰서 시위대가 길을 터주기만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트램 운행을 방해하기 위해 일부러 느리게 걷는 시위대 (욕설 죄송…)
그때는 F1 경주인 르망 24시로 유명한 도시인 ‘르망’에 있었는데 그곳도 트램만 있는 소도시라 트램 선로를 막는 게 치명적이었다. 선로를 막는다고 시위와 파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시위에 참여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시위가 있는 날’을 알리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르망에 있었을 때는 시위가 있는 날마다 선생님들이 걸어서 출근하느라 30분씩 지각을 하거나 수업이 취소되곤 했으니까. 참고로 시내에서 학교까지 트램으로도 20분이 걸리고, 고지대에 있어서 큰 언덕을 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시 노란조끼 이야기로 넘어와서. 몽펠리에에서 한 번은 토요일이 아닌데도 시위가 열린 적이 있었다. 2019년 1월의 화요일이었는데 몽펠리에 제3 대학교 기숙사에 사는 친구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기숙사로 가기 위해 트램 1호선을 타기 위해 꿰매디 광장으로 걸어가는데 기차역과 광장을 이어주는 큰길에 갑자기 노란 조끼들이 나와서 시위를 했다. 토요일이 아닌데 시위를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어서 길의 행인들, 트램 운전자 모두 어찌할 줄 몰랐다.
역주행하는 트램.
냅다 트램을 미는 시위대도 시위대지만, 좌우로 민다고 정말 쓰러질 기세로 세차게 흔들리던 트램도 기억에 남는다. 텅 빈 트램도 아니고 안에 사람들이 꽉 찬 트램이었는데도. 결국 그 트램은 HORS SERVICE (운행중단)를 전광판에 띄우고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하고 나서야 시위대들이 트램에서 물러섰다. 참고로 위 영상을 찍은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그 모습을 찍는 걸 들키면 나도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촬영하진 않았다.
2020년 3월. 4개월이 지났는데도 살벌한 기세로 시위한다.
화가 난 사람들
시위의 초기, 그들이 도로를 봉쇄했을 때 통행이 방해되는 것 때문에 일반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여론이 좋지는 않았다. ‘노란 조끼 때문에 차가 엄청 막혀서 짜증 나 죽겠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일이 잦아져 시위대를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노란 조끼를 입은 할머니에게 한 청년이 다가가 ‘시위댄데 오늘은 뭐 안 부수냐, 왜 조용히 길만 걸어 다니냐’며 코앞에 얼굴을 들이대며 한껏 비아냥과 적대심이 가득한 어조로 시비를 거는 것도 눈앞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그의 말도 딱히 틀린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시위와 프랑스의 시위는 규모와 시위대의 적극성(?)이 다르기 때문에 토요일만 지나면 시내의 가게 중 성한 곳이 없었다. 은행이나 가게의 유리창을 깨뜨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어서 나중엔 유리창에 나무판자를 덧대기도 했고, 시내에 위치한 대형 쇼핑센터는 토요일에는 아예 폐쇄했다. 몽펠리에 시내에 규모가 아주 큰 유니클로 매장이 있었는데, 토요일 오후 2시쯤이 되면 ‘곧 시위가 시작될 예정이니 그전에 가계를 폐쇄할 거라 빨리 쇼핑을 끝내고 나가길 바란다’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유리창만 깨는 건 차라리 양반이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대낮의 길거리에 최루탄을 발포하는 일도 흔했다. 찾아보니 최루탄은 시위 진압용으로 주로 사용한다는데 프랑스에서는 시위대들이 시위용으로도 많이들 사용했다. 난 길에서 최루탄을 맞아본 적은 없었지만 다른 한국인 친구들이 위 영상의 트램역, 몽펠리에에서 가장 규모가 큰 트램역인 코미디 광장 역에 있었을 때 사람들이 많은 틈을 타 시위대가 최루탄을 쏜 적도 있었다. 다행히 누군가 다치는 일은 없었지만,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선 광장 중앙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니 순간 얼마나 큰 혼란이 일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아예 GPA5스러운 일도 있었다. 당시 전 남자 친구의 본가가 파리라서 크리스마스 연휴에 가족끼리 차를 타고 파리 시내에 극장을 갔었다. 극장에서 연극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 남자친구의 아빠가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와서 나머지 가족들을 태우려 차 문을 연 찰나의 순간에, 시위대가 차에 따라 들어와서 자동차를 뺏으려 한 일도 있었다. 그 집 사람들이 호락호락하게 차 강도를 당할 인상은 아니어서 차에 침입한 시위대는 바로 쫓아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긴 했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시위대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프랑스 시위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는 기름값을 올린 걸로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작년, 르망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애초에 유류세 인상을 왜 그렇게 격렬히 반대했는지부터 유류세 인상을 통해 야기되는 프랑스의 사회, 경제적 문제 (주로 부유층이 아닌 사람 위주의)를 들으니 시위대의 취지에 어느 정도 공감은 갔다.
다음 글에서는 노란 조끼가 이렇게 과격하게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시위의 변천사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원문: 샤에바 Chaeva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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