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프랑스 몽펠리에에 산 지도 어언 3개월 반이 되었을 무렵, 희한한 인간 군상을 참 많이 만났다. 미친놈 보존 법칙은 어디나 적용된다고 한국에도 미친 자들이 있는 만큼 프랑스에도 정신세계가 특이한 사람들이 참 많다. 한국에서는 1년 동안 만났을 미친놈들을 외국에서는 일주일 만에 다 섭렵할 수 있으니 한국보다 외국에 오히려 더 많을지도.
각설하고, 외국 생활을 하면서 나를 가장 환장하게 한 사람은 길에서 대뜸 니하오라고 소리치거나 벤치에 앉아있는데 니하오 곤니찌와^^ 하면서 시비를 걸고 간다거나, 내가 남자친구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기랑 자자고 하는 종류의 미친놈들이 아니었다.
나를 가장 미치게 한 장본인들은 케이팝에 과몰입을 해버려서 한국에서 ‘안녕하세요 오빠’만 할 줄 알면 모든 일들이 해결될 거라고 믿으며, 자기들 시선으로는 아주 ‘스페셜’한 한국의 언니 오빠 누나형 호칭에 미쳐버려 한국인 남성을 볼 때마다 어릴 때 잃어버린 나이 많은 혈육을 찾은 양 오빠 타령을 그렇게 하고, 나아가 케이팝과 케이 드라마에 자아 의탁을 해버린 나머지 “I wanna have Korean namjachingu^^(boy friend라고 하지 않아야 한다! ‘yeoja chingu’나 ‘namja chingu’라고 해야 그들의 언어가 완성이 된다) Because I LOVE KPOP and every Korean guys are romantic like male leads of K-drama^^”라는 정신 나간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아시안 페티시, 코리아부(KoreaBoo)들이었다.
그들을 직접 겪지 않는다면 ‘외국인이 한국 문화랑 케이팝을 좋아해서 그런 거면 좋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몇 개월이 곤 시달려온 사람의 입장으로 맹세하건대 그들이 한국에 보내는 ‘사랑’의 시선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류의 호의만이 가득한 시선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문화를 자기네 입맛대로 해석하고 우긴다. 책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보다 딱 한 권 읽은 사람이 더 무식하다는 말이 있다.
서양 세계에서는 오리엔탈리즘, 즉 아시아에 대해 아는 것이 유식함의 척도로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아시아의 문화와 케이팝, 드라마 등 그들의 새로운 컬처에 박학다식한 나’라는 콘셉트에 과하게 몰입하여 자신이 케이팝과 드라마, 고작 한국의 예능에만 나온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는 그것이 한국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는 부류들이 아주 많다.
물론 내 경험들에 기반한 나의 생각이고, 외국에서 생활하는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이 모두 옐로 피버 미치광이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인간 대 인간에서 오는 호의, 친절함과 ‘아시아인’을 향한 호기심과 판타지로 점철된 선입견으로부터 비롯된 페티시즘은 정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글을 읽고 옐로 피버들을 미리 예방해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받는 상황으로부터 미리 피할 수 있으면 좋음 직도 하다.
혐오성 인종차별과 호의적 옐로 피버
만약 당신이 지금 외국에 산다면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인 ‘국적’으로 인한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많이 마주쳤을 것이다. 그중 가장 대립하는 게 혐오성 인종차별과 호의적 옐로 피버라고 생각한다. 옐로 피버도 인종차별의 범주 안에 포함되긴 한다. 동양인에 막무가내로 호의와 사랑을 느끼는 옐로 피버도 동양인 혐오(嫌惡)에서 비롯된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우리에 관한 얕은 지식과 지대한 선입견으로 비롯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옐로 피버들을 처음 만난 경우에는 그들의 편협한 사고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에는 고마움마저 느꼈다.
이유는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적대적인 인종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내가 한국인,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별별 혐오 발언들을 듣다 보면 정말 별생각이 다 든다. ‘내가 동양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한테서 무시를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나의 첫 번째 정체성인 국적 때문에 차별을 겪는 것 같아 정체성 혼란과 더불어 근본적인 자존감이 낮아진 적도 있었다.
이렇듯 ‘내 국적’으로 인한 부정적인 상황들만 맞닥뜨리다가 갑자기 나의 국적과 문화에 호의를 표하는 사람들을 보면 고맙고 호의적인 감정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처음으로 내 존재의 이유만으로만 받는 환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가 나로 태어났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유 모를 놀림을 받다가 나의 문화가 좋다는 사람들을 보면 반가울 수밖에.
너 한국인이야? 와 나 아시아인이랑 한국인 정말 좋아해~ 나는 케이팝도 좋아하고, 동양 문화는 다 좋아해~^^ 아시아인들은 다 귀엽잖아ㅎㅎ
한 번쯤은 저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거다.
만약 상대가 아시안을 만난 적이 별로 없어서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나갈지 잘 모르는 경우에도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순 있다. 우리도 친해지고 싶은 상대가 외국에서 왔다면 대화의 물꼬를 틀 방법이 별로 없으니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기 위해서 저런 식의 대화는 불가피하니까.
하지만 몇 번 만나고 충분히 친해져서 다른 개인적인 이야기, 친구 사이에 평범하게 나누는 진짜 잡담, 예를 들면 쇼핑 이야기나 가끔은 사회 이슈 등을 할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해도 계속 본인이 아시아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만 이야기하고 내 다른 정보를 물어보지 않는다면…?
통상적으로 우리가 아는 옐로 피버는 동양인 여성 판타지로부터 비롯된 섹슈얼적인 접근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앞서 말했듯 아시안, 특히 동양인 여자와 어떻게든 자보고 싶어서 안달 난 옐로 피버. 또 하나는 바로 케이팝에 미친 옐로 피버. 이들을 코리아부라고 한다는 것을 안 건 나중의 일이었다.
케이팝에 자아를 의탁해버린 옐로 피버들의 특징은 뭘까?
그들의 특징은 나보다 케이 문화를 더 잘 안다는 거다. 예를 들면 요즘 인기 많은 방탄소년단, 뉴이스트, 엑소 등. 심지어 슈퍼주니어나 동방신기 같은 10년도 더 된 그룹들까지 속속들이 안다.
그들만의 ‘한국인’ 놀이는 미디어에만 비친 한국인의 모습을 따라 하는 것이다. 아이돌들의 한국어 노래 가사는 물론 안무까지 섭렵하고 더 나아가서 유튜브에 떠도는 아이돌들의 예능 동영상이나 아이돌 멤버들끼리 찍은 비디오를 돌려보면서 거기에 나온 말들을 외워서 따라 하는 경우도 있다. 난 프랑스 케이팝 팬 세 명이 BTS 멤버 자기소개(?) 동영상을 돌려보면서 ‘안! 녕! 하세요! 저는 방탄소년단! 전정국! 입니다!’ 구절을 따라 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아예 한국에 미쳐버린 경우는 유튜브에 ‘Korean Boo’라는 서양인들이 한국인들 특징, 예를 들면 전화 받을 때 ‘어머, 진짜? 어~ 어~’ 따위를 따라 하는 콘텐츠를 보며 다시 한국인들을 따라 하기도 한다…
동경하는 아이돌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까진 괜찮다. 하지만 고작 아이돌의 자기소개 한 소절과 ‘안녕하세요 오빠’ 따위의 한국어만 구사하면서 모든 한국어를 섭렵하는 것처럼 으스대고, 자신은 이 두 구절만 알아도 서양인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문제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 문제다.
10년 전쯤에 일본 만화가 서양에 유행하면서 어눌한 영어 악센트로 일본어를 섞어 쓰며 ‘헤이~ 곤. 니. 취. 와~ you’re so Ka WA YEE ~☆’ 이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이 이젠 한국을 대상으로 같은 짓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직 케이팝에 자아 의탁을 하는 옐로 피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감이 안 서는 사람들을 위한 참고 사진을 가져와 봤다.
순수하게 한국에 관심이 많은 사람, 그냥 케이팝 팬, 그리고 ‘코리아부’를 어떻게 구분할까?
한국에 순수하게 관심이 많은 사람과 달리 옐로 피버/코리아 부는 모든 아시아, 특히 중국, 일본, 한국 문화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하며 동북아시아의 3개국을 같은 문화권이라고 생각한다. 즉 아시아의 문화는 모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예로, 이 유명한 남자가 있다.
해외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을 닮고 싶어서 수억 달러를 들려 성형을 했던 걸로 유명한 올리 런던(Oli London). 국내에서는 한국과 지민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지민 입간판과 결혼을 올린 사람으로 유명한데, 그가 낸 ‘Heart of Korea’라는 곡에서 무려 기. 모. 노. 를 입고 등장한다. 한국의 심장이라는 곡의 첫 장면부터 일본 옷인 기모노를 입고 등장하다니… 그의 머릿속에 있는 한국의 심장은 과연 한국에 있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뮤직비디오 첫 장면부터 기모노를 입고 일본풍 빨간 부채를 들고 등장하시는… 대체 어디가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문화를 존중한다고 하는 사람인지 눈곱만큼도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위의 이미지처럼 한국인임을 자처하며 ‘annyeonghaseyo~ oppa I sarang you~’를 부르짖는 코리아부들도 자기는 한국어를 구사한다면서 꼭 일본어인 ‘kawaii’를 붙여 말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 머릿속에서 한국은 적당히 중국, 일본이랑 퉁 치는 나라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한국과 한국 고유의 문화를 존중하고 사랑한다고 하는 게 가장 위선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해외 케이팝 팬들도 이런 옐로 피버들과 코리아부들을 오글거려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코리아부라고 생각하는 것에 억울해한다. 실제로 유튜브나 틱톡에서 아시아인, 외국인 케이팝 팬들이 코리아부들을 조롱하면서 그들을 까거나, ‘나는 코리아부가 아니야악!’이라며 억울해하는 영상들이 유행한다.
그러면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은 죄다 기피대상 1호인 코리아부인가요?
그건 절대 아니다. 만날 때마다 케이팝 댄스를 추자며 들이대던 코리아부들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케이팝을 좋아하는 프랑스인들, 외국인들은 모두 아이돌과 한국 드라마에 과몰입을 한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에 나온 패널들이나,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 교환학생들처럼 처럼 순수하게 한국과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도 많다. 따라서 케이팝이나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모든 외국인들을 상종 못 할 코리아부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이 글을 쓴 목적은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그들이 무조건 한국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아니며, 그렇게 말하는 목적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말함이다. K컬처의 해외 인지도가 점점 늘어나고 외국인들의 관심과 유입이 늘어나는 만큼,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와 한국에 선입견이 아니라 올바른 사고를 가지고 우리의 문화를 대하길 바라는 건 한국인으로서 바라는 타당한 태도다.
또한 한국, 케이팝, 한국 드라마가 좋다면서 정작 한국의 문화에 왜곡된 시선으로 그것들을 향유한다면 그것은 K컬처의 글로벌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와인, 바게트, 빅토르 위고가 같은 대륙의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의 문화가 아니라 온전히 프랑스의 것이라고 이해하듯이 한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최소한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와 문화들의 차이점은 정확하게 인식한 후 즐겨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