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 [한국 수학이 왜 문제인가] ① 과연 수능의 범위는 타당할까?
- [한국 수학이 왜 문제인가] ② 수능 수학이 어려운 이유
- [한국 수학이 왜 문제인가] ③ 대한민국 수학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 [한국 수학이 왜 문제인가] ④ 이렇게 만든 ‘볼드모트’는 누구인가
이제는 슬슬 이 글을 마무리해 볼까 한다. 제목과 같이 각자의 입장에 따른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조금 독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1. 국가 (혹은 교육부)의 전략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이다. 세상 어느 곳에서 좋다는 제도를 들고 와 봐야, 대한민국의 ‘볼드모트(※ 이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난 글 「볼드모트는 누구인가」를 참고할 것)’와 사교육 시장에서는 안 통한다.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인가를 바꾸면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다.
더구나, 올해 이런 문제가 밝혀졌으니 내년에는 이렇게 바꾼다는 식으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잦은 제도 변경은 결국 정보 불균형을 가져오고, 이러한 정보 불균형으로 인해 교육부와 학생 간의 불신을 키울 뿐이다. (그 와중에 아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아는 척만 하는 중계자, 즉 학원들만 돈을 번다)
우리나라 같은 구성에서는 개개인의 능력에 맞는 맞춤형 선별보다 중요한 것이 형평성이다. 그래서 이러한 형평성 면에서 논란의 여지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제시험(혹은 전체 시험)’이다. 그리고, 이 일제시험이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대입제도의 최선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수능이랑 뭐가 달라?
다르다. 내가 말하는 것은 8~90년대 학력고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하자면 선 지원 후 시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내신 반영비율은 20% 이하로 하면 좋다(혹은 아예 없애도 좋다). 이게 가장 깔끔하다. 현재 외시, 사시, 행시 모두 그렇게 진행되고 있고 그 제도가 여전히 먹힌다. 물론 이러한 제대로 가지는 폐해를 몰라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도 ‘획일적인 잣대’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90년대 이후 20년간 선진국과 비슷한 형태의 입시형태(수시전형 및 입학사정관 제도)로 변해 온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외적으로 제도가 선진국처럼 변한다 한들 당사자(= 볼드모트)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질서를 지키는 개념이 없는 사회에서 줄을 서는 것은 무의미한 것처럼 말이다.
대학입학제도가 선진국형으로 바뀌면서 생기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예전에는 학원의 비즈니스 모델이 ‘시험문제 잘 풀기’뿐이었다. 학원의 등급도 ‘문제의 적중률이 얼마나 높은가?’로 판단하는 지극히 간단한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요즘 학원들에는 소위 말하는 ‘진학 컨설턴트’들이 있다. 이들은 시험문제 자체의 분석보다는 학교별로 준비해야 할 문서, 준비해야 할 시험, 포트폴리오를 소위 ‘컨설팅’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시장이 어마무시하게 커졌다.
예전에는 이러한 컨설팅이 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에만 유효하게 작용했다. 소위 말하는 유학원들이 이 작용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국내 대학을 가는데도 이러한 컨설팅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볼드모트 들은 컨설턴트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경제학을 배우면 알겠지만 정보의 불균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 수요는 심해진다. 이렇게 되면 중계자가 더 많은 이익을 취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학원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또 하나, 대입 하나만 어떻게 바꾼다고 창조적인 학생들을 선별하고 경쟁력 있는 인재를 대학에서 키울 수는 없다. 이렇게 볼드모트가 득세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말이다. 그렇기에 국가가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이런 나라에서는….
- 이공계 상위 1%가 의사 내지는 법관이 되겠다고 하고
- 나머지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을 하겠다는 국가
- 의사, 변호사가 되는 데에는 10년 이상 공부하고 고시 시험도 합격해야 하는 제도에 수긍하면서
- 데이터·컴퓨터과학자의 기초가 되는 수학 범위는 어렵다고 줄여 버리는 국가
- 제대로 된 데이터·컴퓨터 과학자들을 몇 달 안에 속성으로 양성하겠다는 국가
에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인재를 제도적으로 키운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교육 상황이 국가, 혹은 교육부가 만든 문제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조를 악화시키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하다. 국가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뭘 더 키우려는 정책이 아니라, 그나마 의대·법대에 몰려있는 인재들이 다른 분야에서 빛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정책을 써야 한다. 그러나 어떤 정책을 써야 할지 확실하지 않다면
-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
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데이터전문가 양성 정책’이 얼마나 무책임한 정책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데이터 전문가(크게는 IT 전반의 제대로 된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를 오랫동안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만큼 배워야 하는 양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4년 과정과 대학원 석·박사 과정이 있는 것이다.
컴퓨터를 포함한 과학, 공학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분야인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이·공계에서 어떤 전공을 하든 중요한 것이 ‘생각하는 능력’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능력은 한두 달 속성으로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배우는 수학·물리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현시점의 한국에서 이러한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만약 제대로 된 데이터 과학자가 3개월~1년 속성 과정으로 양성된다면, 의사나 변호사, 고급 공무원들도 이렇게 속성과정으로 양성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의사나 변호사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데이터 과학자는 전문가가 아닌가? 어느 누구도 의사, 변호사, 공무원 시험제도 및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양성과정’을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공계(특히 IT 관련) 전문가들에 대해서는 걸핏하면 ‘양성과정’을 주장한다. SW 전문가, IT 전문가, 데이터전문가, 3D프린트 전문가, 비트코인 전문가, 드론 전문가…
특정 기술이 인기를 끈다 싶으면 여지없이 나오는 말이 ‘전문가 양성’이다. 그것도 국가 차원으로. 정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라!
2. 고3 입장에서의 전략
자, 이제는 고3 입장에서 보자.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전략은 대한민국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는 전제하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공부 잘 해야 한다. 시험 유형이 아무리 바뀌어도 실력 있는 학생들은 존재한다. 물론 만점을 받는 아이들이 모두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보통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 중 내 기준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말하자면, 만점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생판 처음 보는 문제를 심심치 않게 풀어내는 친구들이다. 학원에서 이미 풀어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잘하는 아이’는 그런 적도 없는데 문제를 잘 푸는 아이들을 의미한다. 이렇게 사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성적이 아니라 진짜 실력이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내가 해주는 이야기가 충분히 도움 될 것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냐’이다. 볼드모트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 내 이야기가 절대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면….
- 한국에서 학원에 퍼붓는 노력과 비용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대학을 가는 것이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몇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우선, 세상은 넓고 대학은 많다. 미국만 예를 들어 4천 개 이상의 학교가 있다. 그중에는 한국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의 웬만한 서울 소재 대학보다 좋은 대학도 월등하게 많다. 미국 유학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학비일 텐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물론 대도시에 있는 대학이나 한국인에게 많이 알려진 대학은 학비도 비싸고 생활비도 비싸다. 하지만 중소 도시에 있는 대학은 서울 소재 같은 수준의 대학보다 생활비도 싸고 학비도 저렴한 경우가 많다. 또한 미국의 주 별로도 다양한 대학이 있다. 한국인에게 많이 알려진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뉴욕(주), 워싱턴(주), 일리노이, 텍사스, 조지아 등은 대체로 학비도 비싸고 생활비도 많이 든다. 하지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주, 예를 들면 노스다코타, 와이오밍, 알래스카 등의 대학은 상대적으로 학비도 저렴하고 생활비도 많이 든다.
그렇다고 저렴한 주의 대학이 국내 대학보다 못하냐? 절대 그렇지 않다. 한국, 특히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서울로 유학을 생각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미국 쪽으로 학교를 고려하는 것이 장래를 위해 훨씬 유리하다. 그리고 원하는 전공에 따른 학교의 순위변동 또한 심각하다. 어떤 학교는 전자전기컴공(ECE)이 우수한 반면 어떤 학교는 기계가 강하고, 어떤 학교는 토목건축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원하는 전공이 정해져 있다면, 가장 좋은 전략은 이런 학교를 찾는 것이다.
-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당 전공은 강한 학교
다만, 이런 학교들은 유학원도 잘 모른다. 아니, 절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스스로 찾아야 한다.
한국 유학원들이 유학 컨설팅을 해준답시도 IB성적, SAT성적, 심지어 AP성적까지 받아야 한다고 난리를 치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학교들은 SAT성적 내지 IB성적 중 한 가지 성적표만 가지고도 지원 가능하고 합격도 가능하다. (물론 해당 시험 성적 외에 학교 성적 내지는 에세이 등의 다른 자료까지 포함해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시험만으로 합격 여부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심지어는 SAT 성적이 없는데도 합격한 아이들까지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국에서는 아이를 뽑을 때 ‘성적만’ 보지 않는다.
공학 쪽에 관심이 많다면 독일에도 서울의 대학보다 우수한 대학이 많다. 독일 유학의 가장 큰 장점은 학비가 무료(※ 최근에는 외국인에게 등록금을 받기로 했으나 여전히 매우 저렴함)라는 데 있다. 생활비 또한 저렴한 지역이 많다. 다만 독일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독어를 필수적으로 해야 하고, 공인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대학 공부가 가능하다.
북부 유럽, 즉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에 있는 대학도 외국인 유학 시스템이 잘 만들어져 있어 저렴한 학비와 생활비로 대학을 다닐 수 있다. 북부 유럽을 포함한 유럽 지역들의 대학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평준화’일 것이다.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몇몇 아주 유명한 대학을 제외하고는 수준이 비슷하다. 그래서 생소한 이름의 대학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평준화’된 수준의 대학들도 우리나라의 대학보다는 월등히 수준이 높다.
아시아에도 우수한 대학이 많다. 홍콩의 HKU(홍콩국립대), CityUHK(홍콩시립대), HKUST(홍콩과기대)라든지 싱가포르의 NUS(싱가포르 국립대), NTU(난양공대) 등은 랭킹만으로 봤을 때 Sky보다 훨씬 좋은 학교들이다. 이들은 미국과는 달리 인증 점수가 중요한 편이다. 미국식 인증인 SAT보다는 영국식(IB/A-Level)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이들 학교는 서울 소재 대학보다 다니기 어려울까? 물가는 비싼 편이지만 장학금 제도나 기숙사는 잘 되어있는 편이라 혜택을 보기 쉬운 편이다.
최근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 아이들이 국내 대학에 진학하려고 진학 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내가 아는 지인도 국내 대학에 원서를 넣기 위해 상담을 했지만 어마어마한 스펙의 자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이 친구도 학교 성적과 SAT 성적만으로 NTU(난양공대)에 합격했다. 혹시 난양공대를 들어본 적 없다면 QS랭킹을 확인해 보라. 난양공대는 QS랭킹이 2018년 기준 11위인 학교이다. 참고로 서울대가 36위다. (물론 QS랭킹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물론 SAT나 IB/A-Level을 국내에서 준비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내에서 준비한다면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학원에 가기 위해 노력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면, 더 가치 있는 쪽에 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마치면서
하지만, 이러한 전략을 쓰는데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본인이 원해서, 본인이 직접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정말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회를 찾고자 한다면 앞서 언급한 전략이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아래에 해당한다면 앞서 언급한 전략은 쓸모가 없다.
-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고
-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 것보다는 좋은 ‘간판’에 관심이 있고
- 졸업장은 ‘국내’에서 보다 나은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 남들보다 조금 더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게 목표
요즘 사회가 예전 같지는 않다. 하지만 예전보다 더 많은 기회가 열려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본인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삶을 살지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지, 제도를 탓할 일도 사회를 탓할 일도 아니다. 설령 볼드모트가 망쳐 놓은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당신, 즉 고3이라는 점을 잊지 말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원문: Amang Kim의 브런치